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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씨앗들 - 우리를 매혹시킨 치명적인 식물들
카티아 아스타피에프 지음, 권지현 옮김 / 돌배나무 / 202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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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과 관련된 책에 관심이 많아 구매를 하거나, 도서관에서 대출을 하거나,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식물 관련 신간이 나오면 꼭 담아두는 편이다. 일단 '식물'이 주는 이미지는 선량하다. 초록빛 싱그러운 나뭇잎에서 느껴지는 청량감과 마음의 평온함과 힐링... 또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는 시기엔 공기정화 식물이 주는 고마움도 선량한 이미지에 한몫을 한다. 그런데, 나쁜 씨앗을 읽고 '식물'에 대한 나의 무조건적인 '선량함'에 대한 생각은 와장창~ 깨 저버리고 말았다. 여기 '나쁜 씨앗들'에는 매우 위험하고, 독하고, 때론 매혹적일 정도로 치명적인 식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책의 앞부분에는 선명한 컬러판으로 식물의 사진이 여러 가지 실려있는데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악명 높은(?) 식물도 보여 내심 반갑기도 했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시체꽃'과 거대한 꽃인 '라플레시아'와 '앉은 부채'가 그렇다. 일단 비주얼부터가 범상치 않다. 그런데 그 외 다른 식물들은 어? 이 식물들이 그렇게 위험한 식물인가? 싶을 만큼 평범하게 생겼다. 단, 이런 생각으로 식물 자체에 접근했다가는 자칫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읽고 알았다. 후덜덜......
'히포마네 망키넬라'라고 불리는 나무가 있는데, 짐피짐피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연쇄살인범 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히포마네 망키넬라(이름도 어려워 ㄷㄷㄷ)는 지독히도 자극적인 유액을 내뿜는데, 열매를 먹으면 통증이 극심하고, 나무의 유액이 살에 닿으면 강한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고 한다. 짐피짐피 역시 호주 지역에 서식하는 나무로 가시가 유리섬유로 되어 있는데 이 가시가 박혀 부러지면서 독성물질이 흘러나오는데 그 고통은 뜨거운 산으로 태우는 것 같고 감전사하는 것 같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식물들과는 절대 마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몇 번씩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앞부분에선 컬러판 실사 사진이 실려있지만 책 중간중간에는 흑백의 삽화가 실려있어 나름대로 식물의 생김새를 관찰할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또 각 식물을 연구한 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나, 이런 무시무시한 식물들을 최초로 접한 탐험가들의 이야기, 혹은 여러 문학 작품 속 악명 높은 식물들이 나오는 부분을 발췌하여 본문에 수록한 것도 꽤 흥미로웠다. '나쁜 씨앗들'이라는 제목이 독자로 하여금 호기심과 관심을 갖게 한 것은 분명하지만, 책 속에 등장한 식물들 입장에서 본다면 꽤 억울한 제목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자유롭게 이동 할 수가 없다. 이것이 생존에 가장 큰 핸디캡이겠지. 적으로부터 도망갈 수도, 숨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끔찍하다', '무섭다', '위험하다', '치명적이다'라고 표현하는 것들에 대한 식물의 방식은 (독, 꽃가루, 냄새 등등) 식물의 생존방식 중 하나인 방어기제일 뿐인 것이다. 가장 큰 꽃인 '라플레시아'의 지독한 냄새는 (인간은 인상을 쓰겠지만) 화분을 옮겨주는 매개체인 파리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다. 즉 살기 위한, 살아가기 위한 그들만의 삶의 방식인 것이다. 모든 식물이 인간을 위해 아름답거나, 좋은 향기를 풍길 의무는 없다. 만약 식물에게 그런 것만을 요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끔찍하고, 무섭고, 위험한 인간의 지독한 이기심일 것이다. 다만, 이런 식물들이 있구나~ 알아가고, 조심하고, 공존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또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식물 세계의 수많은 비밀을 밝혀내어 인류와 식물 세계 모두에 도움이 되는 훈훈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 역시 인류의 숙제이자 중요한 일일 것이다. 물론 나와 같은 범인은 할 수 없겠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인간에게 위험할 수 있는 식물들을 연구하기 위해 현장에서 몸과 마음을 쏟아붓고 있는 많은 연구자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짧은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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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