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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 - 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하인후 옮김 / 무블출판사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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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분열의 이탈리아 잔혹사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가 국내 최초 번역본으로 출간되었다. 마키아벨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저서는 그의 초기작인 <군주론>이다. 제목 그대로 군주제의 속성을 파헤친 군주론이 14년이나 재임했던 피렌체 공직에서 쫓겨나 가난과 익명의 삶을 푸념하며 독기를 품고 쓴 저서라면 피렌체사는 마키아벨리 생애 마지막 통찰력을 쏟아부은 지혜의 보고요, 역작이다. 무릇 한 인물에 대해 우리가 평가하고 이해한다고 주장할 땐 그가 남긴 저서 및 작품들의 초기작뿐 아니라 마지막 작품까지 고루 들여다봐야 그나마 온전히 그를, 그의 삶을 이해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피렌체사는 국내 최초 번역본으로 드디어 '마키아벨리'라는 한 인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작품으로서도 그 의미가 굉장히 크다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초기작이자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저서인 군주론은 당시 군주제의 실체였던 메디치 가문에게 바치는 권력 유지를 위한 일종의 비책이었다면 중기 작품 중 하나인 <로마사 논고>는 평민들의 자유를 추구했던 로마 공화정 시대의 영광을 분석한 작품이다. 군주제와 공화정, 정체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두 작품은 상반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군주론에 등장하는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사를 논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메디치 가문은 15~17세기 실질적으로 피렌체를 지배했던 가문으로 1530년부터 1569년까지 피렌체 공작의 지위를 세습하였고, 1569년부터 1737년까지는 토스카나 대공의 지위를 세습해 통치하였다.
조반니 때엔 피렌체를 지배하는 가문으로 세력이 커졌고, 메디치 은행을 설립했으며, 코시모의 손자인 로렌초(1449~1492) 때에 이르러 메디치 가문은 황금기를 맞이했다. 일전에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프로그램에서 메디치 가문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룬 편을 보았었는데 꽤 흥미진진했던 기억이 난다. 마키아벨리의 마지막 작품인 <피렌체사>는 초기작과 중기작에서 보여주었던 군주제와 공화제 사이의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정체적인 입장을 초월해 제3자로서의 담담한 시선을 담고 있다. 그러나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공화정 시대의 자유를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난 다음에 자유를 추구하라고 경고했고, 군주제의 실체였던 메디치 가문을 향해선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라는 날선 말도 서슴지 않았다. 마키아벨리 개인적으론 공화정 쪽에 좀 더 기울어져 있었을지 몰라도 정체적인 이념을 벗어나 그가 가장 바랐던 것은 자신의 조국 번영이자 부흥이었을 것이다. 말년의 저서인 <피렌체사>의 첫 시작이 과거 영광스러웠던 로마제국의 몰락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로마와 피렌체는 변방의 소도시로 시작은 같았으나 로마는 제국으로 피렌체는 도시국가로 남았다. 피렌체사를 들여다보면 분열의 역사 그 자체였다. 도시국가로의 분열, 귀족과 귀족의 분열, 평민과 평민의 분열, 집단과 집단의 분열, 교황의 분열 (메디치 가문 집권기 교황이 2명이 생긴 일도 있었음) 등 끊임없는 분열과 갈등 속에 이념과 사상은 갈라지고, 광기와 탐욕만 남았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마키아벨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물론 갈등과 분열이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인 물은 썩 기 마련이다. 흐르기 위해선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단,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대의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커다란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자의 몫이자 비르투(=역량)일 것이다. 군주론의 군주 역시 포르투나(=행운)가 아닌 비르투를 가진 군주, 공화정을 이끌어가는 자들에게도 그런 비르투가 필요하다. 피렌체사에서도 볼 수 있듯 비르투가 없는 집단은 결국 파멸의 길뿐이다. 이를 통해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계 역시 (국민들의 이익은 뒤로 한 체 = 갖춰야 할 비르투는 잊은 체) 정치보복이란 굴레의 악순환과 포퓰리즘에 빠져있진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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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