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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읽는 시간 - 도슨트 정우철과 거니는 한국의 미술관 7선
정우철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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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좋아하고 어렸을 적 꿈이 화가였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받는 상은 못 받았지만, 교내 미술대회에선 많은 상도 받았더랬죠. 그러던 어느 날 아빠 때문에 엄청 화가 난 적이 있었는데, 보란 듯이 제가 받은 상들을 전부 찢어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아깝 ㅠㅠ) 그 모습을 보고 아빠가 좀 충격을 받기를 바랐던 것이죠. 그런데 당시 아빠는 그것조차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대학 진학도 미대를 가고 싶어 했으나 미술 나부랭이 하면 피죽도 못 끓여 먹는다는 강한 압박에 결국 공대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적성에도 안 맞는 공대 생활은 뭐 알파벳 F와의 조우... 결과는 학사경고 ㅋㅋㅋ. 에효 지금이야 그냥 웃어넘기지만 당시는 참 고민도 많았고 힘들었었습니다. 그런데 또 제 자신에 대해 느껴졌던 패배감은 여전하더라고요.
아무리 부모가 반대를 하고 지원을 해주지 않았더라도, 그림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뜨거웠다면 어떻게 해서든 네 힘으로 뭐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니었냐고 말이죠. 변명이라면 변명이겠지만 당시 IMF의 거센 바람에 K장녀였던 저는 꿈이고 뭐고 그냥 돈을 벌어야 했죠. 생계를 위해 휴학을 2번이나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여전히 남아있는 내 안의 그림에 대한 열망과 그러지 못했던 변명과 패배감이 남아있습니다. 더욱이 오늘과 같이 이런 책을 읽으면 더 그렇습니다. 여기 책 속의 화가분들은 전쟁, 가난, 고난 등... 저보다 더 험하고 힘든 역경과 과정 속에서도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오직 '그림', '미술'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때론 집착과 신념으로 그림을 그려내고 작품을 남기고, 위대한 이름을 남겼으니까요.

그래서 뭐랄까? 주눅이 들기도 하면서, 이런 게 바로 '예술 혼'이구나. 차마 나 같은 범인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 뭐 그런 양가감정이 충돌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나는 이루지 못한 꿈 한 조각을 여기 책 속 작가님들은 이루었으니까요. 그렇게 감정이입이 된 것일까요?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을 참 많이도 흘렸습니다. 나는 극복하지 못한 것들을 극복한 위대한 그들의 숨 막히는 열정 때문에, 혹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안타까움에, 자신의 모든 것을 화폭 하나에 건 그들의 숭고하기까지 한 그 삶 때문에...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양 미술사>, <서양 화가>들에 대해선 많이 알고 있을 거예요. 저 역시 그렇고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위대한 예술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참 많이 부끄럽더라고요. 덕분에 한국에도 서양 못지않게 위대한 예술가분들이 계셨구나. 알게 된 기쁨도 얻게 되었습니다. <미술관 읽는 시간>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7개 미술관을 테마로 생전 화가들의 삶과 그림을 그리기까지의 과정 등 굴곡진 삶 속에서 꽃처럼 환하게 피어난 작품 세계 및 작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환기미술관>,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나혜석 기념홀>, <이응노미술관> 제가 가본 곳은 박수근 미술관 한 곳뿐이네요. 추후 기회가 된다면 책에 나와있는 미술관을 다 가봐야겠습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감정도, 감각도 고착되고 무뎌질 수 있습니다. 가끔 산책하듯 가까운 미술관을 찾아가 작품 앞에 섰을 때 느껴질 신선한 충격과 감동은 일상의 무뎌지고 고착된 감정을 새롭게 일깨워 줄 것입니다. 저 역시 다양한 전시회나 공연을 보며 일상을 환기하곤 하거든요. 책에 소개된 미술관을 찾기 전, 이 책을 먼저 읽고 작품과 작가의 생을 바라본다면 못 보던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니까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새로운 감각과 경험이 미술관에 있습니다. 미술관에 가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서는 기분을, 전에 없던 감각을 느끼려 그곳에 가는 것이기도 할 겁니다. - 책 속 들어가며
또한 책은 사철 제본(누드제본)이라 180도 펼침이 가능하기 때문에 읽기 굉장히 편하더라고요. 미술관을 방문하기 전 책을 통해 먼저 깊어가는 가을 미술관 산책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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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