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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 - 40년 동안 숲우듬지에 오른 여성 과학자 이야기
마거릿 D. 로우먼 지음, 김주희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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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 우뚝 솟아 있는 나무와 대지를 향해 팔을 벌린 풀들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거릿 D. 로우먼의 <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는 제목부터 뭔가 가슴 한쪽이 아릿해져오는 느낌을 받은 책입니다. 예전에 호프 자런의 <랩 걸>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 책도 뭔가 저에게 많은 영감과 수많은 감정들을 불러오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의 겉표지를 보면 40년 동안 숲 우듬지에 오른 여성 과학자 이야기라는 부제목이 있습니다. '우듬지란 나무의 맨 꼭대기 줄기'란 뜻으로 결국 맨 꼭대기 줄기 위에 올랐다는 뜻인데요. 이 문장이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큽니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나무 하층부만 관찰하며 숲 건강을 추론하던 과학계에서 나무의 95퍼센트에 해당하는 나무 상층부, 숲 우듬지를 연구하기 시작한 최초의 여성 과학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즉, 늘 발밑만 쳐다봤던 과학계의 새로운 지각변동이었던 것이죠. 그녀는 우듬지로 오르기 위해 다양한 장비들을 고안해 냈고, 성공했습니다. 우듬지에 올라 바라본 생태계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녀에게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나무가 건강해야 숲이 건강하고 숲이 건강해야 지구가 건강하고 결국, 인간의 삶이 건강하게 되는 것인데. 너무나도 당연한 이 진리를 인간은, 가끔 망각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지구 건강이 숲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새삼스럽지 않다. 숲 우듬지는 산소를 생산하고, 담수를 여과하고, 햇빛을 당분으로 전환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공기를 정화하며, 무엇보다 이곳에는 지구에 발을 딛고 사는 모든 생물의 유전자 도서관이 자리한다. 전기 배전망이나 정수장과 달리 지구 건강을 지키는 이 복잡한 삼림 기계를 유지하는 과정에는 막대한 세금이나 자금이 소요되지 않는다. 다만 이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인간의 파괴 행위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16page
<랩 걸>의 호프 자런도 어렸을 적 아버지의 실험실을 놀이터 삼아 놀았던 것처럼 <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의 저자 마거릿 D. 로우먼 역시 숲을 놀이터 삼아 놀았습니다. 향후 그녀에게 많은 영감을 전해 줄 진귀한 보물들이 숲엔 가득했으니까요. 오감을 활용해 만지고, 느끼고, 표본을 만들기도 하고. 숲은 그녀의 세상이자 사랑이었습니다. 대학을 진학하고, 대학원생이 되어 연구를 하며 소수의 여성 과학자들에게 많은 조언과 영감을 주기도 했지요.
첫째는 '한 사람의 힘'이라는 교훈으로, 나는 대개 혼자서 자연을 관찰해 지역 야생화는 물론 새알에 관해서도 아마추어 전문가가 되었으며, 그 시절 내디딘 걸음마가 현장 생물학 전문가가 되는 길로 이어졌다.
둘째는 '지역에서 출발해 세계로 나가라'라는 교훈으로, 처음에 뒤뜰에서 자연을 배우고 나중에 지구 생태계로 시야를 넓힌 덕택에 나는 한층 더 유능한 현장 생물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43page
단, 과학자 앞에 '여성'이라는 성은 남성 위주의 권위적인 과학계에 그녀가 겪어야 할 많은 차별과 어려움을 안고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유리 천장 깨기. 결혼 후 시어머니와의 갈등 또한 여성으로서 견뎌내야 할 고난과 어려움이었습니다. (육아 및 살림도 일 외에 그녀가 해야 할 것들이었죠. 왜! 여성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것인지!) 그러나 여성이기 때문에 그녀는 더 단단해졌습니다. 풍성한 숲은 초목 하나하나를 품고 있는 우리 어머니들의 따뜻한 품을 닮았지요. 그런 닮은 마음으로 저자는 더욱더 따뜻하게, 섬세하게, 사랑으로 나무를 연구하고, 돌보고, 결국 (처음에는) 그녀 한 사람의 힘으로 파괴되어가고 있는 살림의 생태계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숲을 지켜내자고 호소할 수 있는 힘도 생겼습니다.
나는 평등을 추구하는 새로운 세대의 여성이었지만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기 위해 퇴근을 허락받기 두려웠고, 교수 회의에서 커피를 타 달라고 부탁받았을 때 감히 거절하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빨래하고, 저녁 차리고, 아들 숙제를 돕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믿었지만 많은 남성 동료는 죄책감 없이 늦게까지 일하고, 술집에서 동창들과 어울려 인맥을 쌓고, 승진을 목적으로 골프를 쳤다. 나와 여성 동료들이 현장 생물학 분야를 선도한 것은 맞지만 우리는 예상에서 벗어나는 지점에 도달할 때마다 유리 천장에 부딪혀 멍 들었고, 그래서 나는 멍이 든다는 걸 예상하고 더욱 부당한 일도 참게 되었다. 동료들이 상기시켜주었듯 '멍'이라는 말은 너무 순화한 단어이며 실제로는 '베일 상처'였다. 과학계 여성들이 결국 '유리 우듬지'를 산산조각 낸 결과는 혁신적이었지만 우리는 그 깨진 유리 조각에 베여 피를 흘렸고 여성은 그런 고통을 가볍게 여기도록 훈련받았다.- 226page
오로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나무처럼 그 자리, 그곳에서 자신의 신념과 목표만을 위해 외길 인생을 걸어온 과학자 (이젠 앞에 여성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으리라.)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 발밑 땅속에서 나무가 되길 소망하며 움트고 있을 작은 씨앗들의 무한한 가능성에 귀를 기울여 보리라. <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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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