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고래는 매년 최대 2만 킬로미터까지 이동합니다.
늦가을에는 번식을 위해 남쪽으로 헤엄쳐 가고, 봄이면 다시
북쪽 먹이장으로 향합니다.
이 여정은 포유류의 연간 이동 거리 중 가장 길지요.
이 장대한 여행을 어린 고래가 엄마와 함께 지금 시작합니다.
- 아기 고래의 첫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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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색체의 그림책들이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가운데 조금은 독특한 색채의 책 한권을 만났어요.
조 위버 작가님의 목탄화로 그려진 <아기 고래의 첫 여행>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엄마 고래를 따라 머나 먼 거리를
여행해야하는 아기 고래의 긴 여정이 더욱더 따뜻하고, 신비롭고, 경이로워 보입니다.
엄마 고래와 아기 고래는 먹이가 풍부한 북쪽 바다로 떠나야 합니다.
이미 다른 가족들은 북쪽 바다로 떠나고 없지요.
"날 따라오렴."
아기 고래는 엄마 고개를 따라 바닷속을 유영합니다.
거대한 수초 숲도 만나고, 반짝이며 빛나는 산호초 군락도 만납니다.
아기 고래 눈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고, 또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엄마 고래에게 물어 봅니다.
"이제 다 와 가나요?."
하지만 엄마 고래는 묵묵히 깊고 푸른 바닷속을 헤엄쳐 갈 뿐입니다.
따뜻했던 남쪽 바다와는 달리 북쪽 바다로 헤엄쳐 갈 수록 바다는 더 깊어지고 더 어두워집니다.
이제 보이는 거라곤 엄마 고래 뿐이죠.
그렇게 얼마나 헤엄쳐 갔을까요?
순식간에 범고래 떼가 아기 고래와 엄마 고래를 둘러쌉니다.
두려움을 느낀 아기 고래에게 엄마 고래는 따뜻한 말을 건넵니다.
"네 곁에는 항상 내가 있단다, 자, 가자!."
그리고 오랜 여정에 지쳤을 아기 고래를 엄마는 등에 태우고 헤엄쳐 갑니다.
드디어! 엄마 고래와 아기 고래는 다른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북쪽 바다에 도착합니다.
안도감에 아기 고래는 엄마 품에서 살포시 잠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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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도 그림을 보여주고, 책을 읽어 주었지요.
화려한 색체가 아닌, 모노톤의 그림이라 아들도 처음에는 낯설어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며칠 간격을 두고 조금씩 읽어주니 아기 고래를 향해
"아기, 아기"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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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고래의 첫 여행>은 엄마 고래와 아기 고래가 북쪽 바다를 향해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부드럽고, 따뜻한 그림책입니다. 책을 읽다보니 우리의 인생도 이와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일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들.
때론 신기하고, 놀랍고, 어쩔 땐 두렵기까지 하지요.
그런데, 내 옆에 나를 끝까지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고, 엄마가 곁에 있습니다.
그래서 두렵지 않아요. 힘들 땐 가끔 엄마 품에 안겨 쉴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성장한 후 언젠가 우리들도, 아기 고래도
부모가 되겠지요. 엄마가 되겠지요.
예전에 나를 이끌어 주었던 나의 부모님, 나의 엄마.
이제는 내가 부모가 되어, 엄마가 되어 나의 아이와 함께
재미있고, 즐겁지만 때론 험하기도 한 인생의 길목을 걸어 갑니다.
아아의 손을 잡고, 아이를 품에 안고
내 엄마가 나를 그렇게 인도하고, 키웠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아이를 인도하고, 키워 갑니다.
차갑고, 어둡고, 앞이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닷속과
같은 인생이란 길목에서 내 아이는 나의 등을 보며
안심할 수 있을 겁니다.
저 역시 오래 전
엄마의 따뜻한 등을 보며 힘들어도, 인생이란 한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으니까요.
사랑해요.
엄마. 하늘 나라에서도 언제나 나를 지켜봐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