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세계사 시인선 65
박상순 지음 / 세계사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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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순의 詩를 읽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즐겁다. 그것은 그의 시세계가 여타의 시인들과 많이 다르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 공부를 하던 가운데, 불쑥 박상순씨가 낯설고 또한 화려하게 등단했던 것을 기억한다. 더욱이 나는 1991년 『작가세계』에서 그의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 등의 시를 직접 마주했디 때문이다.

당시 그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게 적어도 '아, 이렇게 시를 쓸수도 있구나'와 같은 감탄과 더불어, 내가 쓰고자 했던 시의 방향을 짐짓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박상순씨가 펴낸 첫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를 잘 읽었으며, 곁에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두 번째 시집으로 손을 가져가게 되었다.

이 시집에는 해설이 없다. 그것은 시인에게 해설을 써줄만한 이가 없어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예컨데, 「양 세 마리」와 같은 시를 읽으면 그런 의혹을 더 짙게 하는데, 이 시가 보여주는 다분히 회화적인 이마쥬 때문이다. 전 시집에서는 박상순 시인은 그림을 첨가해서 시를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는데, 이번 시집은 굳이 그림을 그리지 않고 언어로서도 그림그리기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발전적으로 보인다.

이 시를 가만히 읽고 있으면, 시가 갈라지는 큰 두가지의 방향도 읽게 된다. 시에는 메시지가 있는 시가 있고, 메시지가 없는 시가 있는데 박상순 시인은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메시지가 없는 시는 그 시가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의도가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순전한 언어의 투명성만으로도 시는 읽히고, 의미는 살아난다. 그것이 시의 매력이 아니던가! 마치 김춘수 시인이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왔듯이...

그런 점에 있어서 박상순의 시는 시인의 감성에 시인의 감성으로 다가가는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시를 쓰지 않는 독자들에게도 이러한 전율이 느껴진다면 이미 당신은 또 하나의 세계, 즉 우리가 보지 못하고 사는 또 하나의 사고세계 혹은 감각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된다. 당신을 기꺼이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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