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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하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평점 :
<장미의 이름>은 1968년 움베르토 에코가 1842년 빠리의 라 수르스 수도원 출판부가 펴낸, 「마비용 수도사의 편집본을 바탕으로 불역佛譯한 멜크 수도원 출신의 수도사 아드송의 수기」를 우연히 손에 넣게 됨으로서 쓰여진 소설이다. 역사적 전거가 확실치 않은 이 책을 바탕으로 에코는 추리형식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출판했는데, 그가 이 일을 감행할 수 있었던 힘은 위의 수기가 가져다 준 미묘한 애정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 자신의 학문적 지식과 배경이 바로 그 수도원에서 너무 집약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중세철학의 전반적인 의미와 그 한계, 그리고 소설의 화두인 '장미의 이름'이 어떻게 현대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많이 생각해보았다. 저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의 서문에서 이 글이 현대성을 띄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것은 역설이다. 왜냐하면 중세의 철학과 신앙을 문제로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이 현재성을 띄지 않는다면, 중세철학은 철학사에서 홀로 자족할 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즉 중세는 희랍철학의 문제들을 계승, 나름대로 해결했다는 의미이며 근대에 철학사적 문제들을 남기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보편논쟁과 현대 기호논리학의 관계, 데카르트, 영국경험론과 대륙합리론이 가진 문제와 해결들을 볼 때는 물론이며, 철학이 가진 문제사問題史가 완전한 해결은 가진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므로 에코가 말하는 <장미의 이름>의 '현재성'은 역설적 의미를 띌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E. 질송의 <중세의 이성과 계시>(E. Gilson, Reason and Revelation in the Middle Ages, New York, 1966)과 같은 책을 읽고서 <장미의 이름>을 읽는다면 더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세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바로 에코이고, 그의 이런 박식함 속에서 이 소설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울러 나에게 이 책은 무게중심이 중세철학의 이성과 신앙, 그리고 양자의 조화를 알아보는데 있으며 중세의 '기독교적 권위'라는 패러다임paradigm을 깨트리려는 데 있다고 느껴졌다. 윌리엄 수도사의 의미와 그 역할이 너무 큰 것이 불만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 소설은 치밀한 논리로 쓰여진 아주 흥미진진한 소설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