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편소설인 <日蝕>은 평소 소설책을 잘 사보지 않던 내가 근 3년만에 사본 소설책이었다. 대체로 책을 사서 읽기 때문에 3년만에 읽어본 소설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 있어서, 그의 글을 나는 찬찬히 음미하면서 읽어보려고 했다. 매일 전공책이 찌들려살다가 잠시의 외도를 여유롭게 즐겨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웬걸! 그의 소설은 <금각사>나 <雪國>과 같은 일본 소설의 분위기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하룻밤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소설을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흥미로운 책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사게된 직접적인 동기는 일간지마다 광고를 무수하게 내었기 때문이다. 교토 대학 법학부(우리의 서울대학교 법대와 같은 위압감을 준다)에 스물 세 살의 청년, 갈색 머리에 은빛 귀걸이...
흔히 그렇듯이 광고지는 소설가를 상품으로 만들었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독자들이 책을 사도록 이끄는 유인들을 거의 다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120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도 그런 의미에서 좋은 유인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많이 팔리긴 했다. 하지만, 나는 소설을 그런 식으로 팔려고 하는 것에 염증이 난다. 이미 영화예고편과 같은 것에서 그런 속임수를 많이 당했기 때문이다.
교토 대학교 법학부에 다닌다거나 그의 외모나 이미지가 어떻다는 것은 그의 소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오해를 주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나는 그런 광고가 싫었다. 그러나 일본의 소설을 즐겨 읽었었던 나는 이 책을 읽고 현대일본의 젊은 작가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조금은 살펴볼 수 있었다. 물론, 히라노 게이치로만의 독특한 부분도 있겠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다.
책의 주요내용에 대해서는 미리 말하면 재미가 없지만, 모든 내용은 안드로규노스 에로 집약된다. 그것은 兩性의 괴물이다. 솔직히 이런 괴물을 등장시키는 것은 추리소설 중 가장 저급한 사건해결 방식이다. 그러나, 게이치로는 서구의 중세 라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중세라면 그러한 이야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이 소설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게이치로의 문체가 주는 효과도 이런 중세를 배경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배가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법학부 특유의 한자어 사용도 한몫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 이 소설의 미궁은 안드로규노스에 있지만,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 이 소설의 한계이기도 하다. 책이 적어도 추리소설의 형태를 띤다면 독자들 중 몇몇은 수수께끼를 풀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 못하다. 다만, 의외의 결말이 신기하게 다가올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히라노 게이치로가 일본문학계에 등장한 것이 이 소설에서 안드로규노스가 등장한 것과 왠지 닮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