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 - 이데아총서 64 현대사상의 모험 28
미셸 세르 지음, 이규현 옮김 / 민음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의 철학자들이 후기구조주의의 바람을 타고 국내에 많이 소개되었다. 그 가운데 이렇게 미셀 세르의 <헤르메스>도 포함되었다니 감회가 새롭다. 헤르메스는 잘 알다시피 신들의 소통을 맡았던 전령이다. 그가 말하는 소통은 다방면의 지식을 소통하고 상호 간섭하는 것으로, 과학과 철학 및 철학과 문학 등을 가로지르며 이루는 방법의 전이이다. 그것은 관계들에 관한 이론이다.

결국, 세르는 이와 같은 근접화와 상호 접근의 작용소에 헤르메스라는 이름을 붙인다. 과학 시간에 배웠다시피, 간섭 은 원래 물이나 빛의 상호작용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물이나 빛은 각 학문의 영역들이다. 그러니까 세르는 학문 내의 지식의 경계를 다시 의문시하고 그 분절에 소통을 내자고 주장한다. 즉, 학제성을 문제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에 박혀 있는 근거없는 분절에 다시금 성찰과 반성을 꾀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각 학문의 자기-준거성이라든지 그 정체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세르에게서 과학 개념이 많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것은 다 이와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미셀 세르를 후기구조주의의 담론 속에 포함시키는 것은 당여하다 하겠다. 그야말로 차이 를 사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간적인 파악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세르의 주체 개념도 특별하다. 즉, 사유 주체로 전제된 인간을 간섭공간의 일부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세르에게서는 사유주체가 상호주관성의 망에서 일시적인 선별 가능성, 의미와 잡음을 여과할 순수한 가능성, 발신과 수신의 매듭이 열혀진 입체교차로이다. 결국, 관계와 관계지어진 대상과 사건들의 분포를 이해하는 것이 세르의 사유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다시말해, 그에게서 이 세계의 분절지워진 질서는 무질서가 퍼져 있는 가운데 나타나는 희귀한 조직화일 뿐이다. 그래서 그의 시야는 방대하고, 통찰은 깊다. 가장 있음직한 것은 무질서와 혼돈이다. 이를 그 시초부터 사유하는 세르의 저작이 헤르메스 이다. 비록 일부분이 번역되어 나왔지만, 차차 번역이 완성되리라 기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후기구조주의의 또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개념들과 사유를 하루빨리 더 만나보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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