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의식의 분석 ㅣ 홍신사상신서 41
칼 구스타프 융 외 지음 / 홍신문화사 / 1991년 11월
평점 :
품절
칼 융은 취리히에 있는 부르크헬츨리 정신 병원의 의사였으며, 신경증보다 더 심한 정신 질환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방법을 최초로 시험해 본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콤플렉스라는 그 유명한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으며, 진단을 위한 단어 연상 시험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그러나 융은 그의 스승인 프로이트와 결별한다. 그는 프로이트를 존경했지만, 자신이 그를 방어하고 있다고 믿었다. 어떤 이들은 프로이트의 학설에 대한 그의 비판이 너무 심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의 비판은 대체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쾌락을 얻으려는 것이 곧 성욕은 아니다', '리비도를 성적인 것으로 규정하면 안된다', '육아 성욕이라는 개념은 타당성이 약하다' 등으로 프로이트가 어린 시절과 신경증의 성적 원인에 대해 발견해 낸 학설의 근본개념을 공격했다. 프로이트는 그와 같은 융의 '독립'을, 무의식에 대한 저항이며 아버지를 없애고 싶어하는 소망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무의식에 관한 이론은 프로이트와 융에 의해 두 개의 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프로이트와 융이 서로의 이론에 관해 많은 질의를 가했고, 거기에 대해 서로 답변하기가 난해했다는 점에 근거한다. 여기서 나는 융의 학설에 몇가지 개별적이고 일반적인 의문을 제시하고자 한다. 모든 의문을 다 적을수는 없기 때문에 하나만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융에게 있어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관한 의문이다. 사고는 자아라는 상위범주를 가진다. 그래서 오성에 의해 의식이든지 무의식이든지 동일한 범주에 속한 사실[의미]들은 제3의 생성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의미]들은 그 억압과 정화에 따라 의식과 무의식을 옮겨가며 생성할 수 있는 것일까?
무의식에도 superego와 ego가 있는데, 이 요소들은 전의식과 의식에도 있는 요소들이다. 그렇다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유동적인 것이 아닐까? 본능 또한 무의식만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이성과 육체의 본능이라는 측면에서 의식의 상태에서도 나타난다고 본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유동적이라면 과연 순수한 무의식은 있는 것일까? 무의식의 요소는 모두 前의식에 다름 아닌것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라는 라캉의 주장은 무의식과 주체의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