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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철학사 1
루치아노 데 크레센초 지음 / 리브로 / 1998년 3월
평점 :
품절
크레센초의 그리스철학사를 읽는다는 것은, 철학 전공자인 나에겐 한편으론 재미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론 난감한 것이었다. 물론, 이 책을 추천한 시오노 나나미나 역자는 철학을 교양으로 습득하면서 또한 지루하지 않고 어렵지 않은 책이라는 점에서 크레센초의 책을 칭찬한다. 나 역시 여기에 어느 정도는 동감한다.
그러나, 쉽게 쓰여졌다고 해서, 깊이까지 얕아지면 곤란하다. 더욱이, 크레센초처럼 가상의 철학자들을 곳곳이 삽입하는 등, 그의 주관이 많이 투여된 책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점에 있어서, 이 책은 몇가지 미덕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책이라 판단된다.
특히, 저자는 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하여 고등학교 때 철학을 공부하면서 요약을 많이 하였는데, 예컨데 '탈레스=물'과 같은 암기를 넘어서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즉, 탈레스에 대한 주변 이야기나 그때의 정세를 곁들임으로써 그의 사상을 맥락적으로 알려고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 의도에는 십분 찬성한다. 그러나, 전공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저자 자신이 희랍철학사를 너무 어지럽게 적어놓은 것 같다.
글을 너무 쉽게 썼다는 것이 오히려 독자가 알아듣기 쉽게 썼다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쓰기 쉽게 서술했다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니 더욱 그러하다. 그 결과, 책을 아무리 읽어도 '탈레스=물' 이상의 무엇을 얻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나의 생각으로는 차라리 코플스톤의 철학사를 읽는 것이 더 나아보인다. 그것은 고전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하고 있지만, 크레센초의 철학은 너무나 흥미와 가십거리 위주이다.
이렇게 하여서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으로서의 학문의 깊이를 보여주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입문자가 입문을 하기 위해 잠시 참고할 책 이상이 아니다. 그가 정말로 철학을 공부하고 그 학문에 매료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책을 같이 읽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인문학이 위기인데, 이렇게 학문 자체가 희화화되고 속화된다면 이 위기를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 판단되어 작은 제언을 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