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지음 / 새길아카데미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철학을 전공하면서 많은 입문서를 읽었었다. 여타의 학문들이 그렇겠지만, 철학은 특히 그 학문 저변에 많은 관심층을 확보하고 있지만, 막상 학문에로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철학 내부에서 쓰이는 개념들에 익숙해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철학 입문서들은 철학사를 통해서 개념의 변화를 살피는 방법을 주로 쓴다. 그런데, 이런 책들이 주로 영국이나 독일, 일본의 철학자들에 의해 많이 씌여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았다.

이진경 선생의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그런 점에 있어서 반가움을 주는 책이다. 국내의 학자가 우리의 사고방식으로 철학입문서를 썼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가 이전에도 많은 철학 입문서를 썼다는 점에 있어서 신뢰를 가지고 첫장을 펼칠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사회학을 전공하기는 하였지만, 책을 50페이지만 읽어도 그가 근대 이후의 철학에 얼마나 깊이있는 공부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중세 이전의 철학에 대해서는 개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 책은 많은 철학자들의 중요한 사상을 건드린다. 딱히 공평한 입장을 보여주지 못했다 할지라도, 현재 논의되고 있는 철학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의 입장으로서 이 정도의 글을 손으로 써낼려면 상당한 내공을 쌓아야 한다. 근대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내가 정확한 언급을 할 수 없지만, 스피노자를 위시해 데카르트, 그리고 경험주의자들을 거쳐 헤겔에로 이르는 일단의 철학에 대한 서술은 상당히 매끄럽다. 그것은 이진경 선생이 그만큼 중요한 문제들을 빠짐없이 언급하고 있음을 뜻한다.

단, 이 책의 전반에 깔린 러셀 역설(혹은 거짓말쟁이 역설)의 구도에 따른 진리의 자기정합성의 논의를 밑바탕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주의해둬야 할 것이다. 두 명의 굴뚝청소부가 누구의 얼굴이 더러운지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 철학의 주객일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진리가 어떻게 상호 일치하여 소통되는지를 연구하려는 관심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어떤 일정한 방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진경 선생은 책의 에필로그에서 이 책의 주장을 의심하라고 권고한다는 점에 있어서 이 또한 책의 미덕이라 하겠다. 철학은 다름아니 주체적으로 반성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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