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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 -상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ㅣ 21세기총서 3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 새물결 / 2005년 12월
평점 :
피에르 부르디외가 점차 관심을 끌어가고 있는 점은, 소위 '언어공산주의'라고 부른 것에 대한 비판 속에서 촘스키와 소쉬르의 언어이론이 역사적 조건의 문제를 도외시했으며 그 결과 주체의 문제를 생략할 수 밖에 없었다는 강력한 비판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는 언어이론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실천에 관한 일반적인 이론'을 구성하려 했다는 식으로만 요약할 수 있는 박학다식과 면밀하고도 날카로운 사유방식을 지녔으며, 그에 못지 않게 그 자신이 실천적인 지식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비판의 예에서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듯이 그는 (포스트) 구조주의의 '주체의 죽음' 앞에 주관주의는 죽어야 하지만 주체성마저도 사멸해서는 안된다는, 어떻게 보면 고답적인 문제제기를 던지면서, 또 어떻게 보면 이제는 '동일성의 제국주의 요새'라고 비난받고 있는 '변증법적 종합'을 강력하게 주창하면서 구조/행위 간의 이분법적 대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갈구해 온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열어준다.
그러나 그의 종합은 결코 진부함이나, 비일관성, 혹은 단순한 절충주의로 귀결되지 않는다. 물론 교육.언어.종교.이데올로기.취미(taste) 등 다양한 문화의 영역을 분석하는 부르디외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사회구조와 상징 구조 사이의 상응관계를 전제로 지식과 사회적 인식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을 시도하였던 뒤르켐의 관심을 직접 계승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뒤르켐이 합의와 통합을 강조했던 반면에 그는 상징구조를 투쟁과 지배의 관계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또 이 관계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경제적인 자본만이 아니라 상징자본, 문화자본, 교육 자본 등의 무수한 자본의 관계 망을 통해서 분석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오히려 맑스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또 1950년대에 레비-스트로스의 영향력 하에 인류학을 연구하면서 구조주의적 관점을 수용했으나 60년대 중반 이후 '지식활동에 의하여 구성된 객체에 불과한 구조를 역사적 행위의 주체나 실천을 구속할 수 있는 힘으로 취급'한다고 구조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가장 잘 알려진 개념인 아비투스와 장(champ)은 바로 이런 종합을 행하기 위한 그의 중심적인 개념이다. 물론 이 개념들에 못지 않게 중요하면서 이 개념들을 보충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상징권력, (상징권력과 물질적 권력을 위한) 전략과 투쟁, (경제적, 문화적, 상징적 자본 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자본 등의 개념이다.
우리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그 모색의 실천방안을 고심하고 있을 때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고 변형하고 창안해 내며 이를 실증성의 수준에서 검색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의 실천적 자양분을 위해서 그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이런 점에 있어서 부르디외의 '구별'은 좋은 책이다. 게다가 여타 프랑스 지식인들보다 덜 사변적이고 더 실천적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유독 '문화'와 관련한 것이 가장 잘 팔리고 있는 대학이라는 장, 지식이 생산되고 소비되고 분배되는 이 장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재 상황에서 그의 연구 작업은 우리의 새로운 사유, 새로운 실천을 구가하는데 마땅히 좋은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