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여 안녕, Ave Materia』을 관통하는 것은 단 하나의 동작이다. 파괴된 것을 밀어내지 않고, 그 위에 손을 얹는 것. 무너져가는 집, 곰팡이 슨 그림, 죽은 화가의 작업, 실패한 삶의 시도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고쳐서 원래대로 돌려놓는" 대신, 그 상처와 흔적을 재료 삼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물질에는 영혼이 있다. 낡은 나무의 결, 흙, 바닷물은 소재가 아니라 대화 상대다. 파리의 낡은 집 지하실에서 14년째 방치된 채 곰팡이가 슬어 있던, 이미 세상을 떠난 화가의 그림을 발견했을 때 그는 그것을 복원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손끝으로, 지문으로 그 위에 이어 그렸다. 물질 자체가 기억과 영혼을 품고 있기에 그와 손을 마주 잡고 대화를 이어 간다. 물질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와 함께. 그리하여 “망해버린 그림에도 이유가 따른다”는 현재를 살아내게 하는 주술처럼 가볍지만 무겁게 울린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들 앞에서 독자는 곧 이 책의 두 번째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완성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완성은 끝이 아니다. 부다페스트에서 24시간 동안 그린 그림은 완성되자마자 땅에 묻혔고, 두 달 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숟가락으로 흙을 파내 다시 꺼냈다. 프랑스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한 그림은 노르망디 바다에 그대로 흘려보냈다. “완성 = 소유”라는 통념을 뒤집는 이 행위들 속에서, 작품은 태어나고 흙과 물에 의해 변형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 순환의 과정 전체가 작품이 된다.
고통은 지워지지 않아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물질이나 예술이 아니라, 한 사람이 통과한 시간이다. 초월은 고통의 소멸이 아니라, 고통과의 공존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의 좌절과 방황, 그가 “죽는소리”라 부르던 시절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구덩이에서 덩굴이 자라듯, 지금의 창작이 거기서 자라났다. 이것은 극복의 서사가 아니다. 상처를 이겨내고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를 곁에 둔 채로 계속 살아가고 계속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곰팡이 슨 캔버스, 땅에 묻힌 그림, 바다로 떠나보낸 마지막 작업. 이 낯선 장면들이 결국 가리키는 곳은 지극히 익숙한 자리다. 무너졌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물질과 손끝으로 나눈 10년의 대화 끝에서, 이 책은 그 사실 하나를 조용히, 오래 남는 방식으로 증명한다.


사진 @hahahee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