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중 철학자(이 용어가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표현을 philosophes actuels라고 하니)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가 1989년에 발표한 『철학자의 뱃속(Le Ventre des philosophes)』, 원제는 철학자들의 배, 위장, 대략 그런 의미다. 이와 비슷한 책은 거의 없을 정도다. 당시에도 상당히 도발적이란 평가를 받았는데, 등장하는 철학자들에 대한 평가 측면에서 그런 듯하다. 어떻든 '미식 철학(Gastrosophie)' 서적이라고 정의해본다.
"먹는 것이 곧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
옹프레는 이 책에서 프랑스 현대 철학이 그랬든,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무시해온 '신체'와 '음식'을 철학의 중심부로 끌어들인다. 그는 철학자의 사상이 단순히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소화하며, 어떤 식습관을 가졌는지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 언뜻 하나마나한 이야기 같지만 먹는대로 생각한다는 거 이거 쉽지 않은 거다. 다른 말로하면 또 역으로 "식습관이 곧 형이상학이다"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등장하는 철학자들은 대략 이렇다. 주요하게 한 챕터씩 차지한 철학자 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사드 등등. 옹프레는 꽤 치밀하게 조사한 철학자들의 사례를 통해 그들의 식탁과 사상의 상관 관계를 분석한다.
거칠게나마 소개하면, 좀 정형적인 소개이긴 하나 덧붙인다.
디오게네스: 날것의 철학. 날것(문명에 대한 거부)을 먹음으로써 사회적 관습을 타파하려 했던 견유학파의 철학을 소개하며 생각하는 것과 먹는 것의 완벽한 일치의 예를 선보인다.
루소: 우유와 채소의 순결주의. 채식과 유제품을 선호했던 그의 식단이 어떻게 자연주의적이고 도덕적인 순결주의로 이어졌는지 분석.
칸트: 규칙과 대화의 식탁. 그러나 젊은 시절 칸트는 완전 주당으로 밤거리에서 집으로 엎혀온 사람사람. 점점 엄격한 식사 시간과 절제된 식단, 그리고 식탁에서의 대화를 중시했던 모습이 그의 체계적이고 의무 중심적인 비판 철학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고찰하고 있다.
니체: 소화불량과 초인의 식단. 위장 장애로 고생하며 식단 조절에 집착했던 니체의 개인적 고통이 그의 허무주의 극복과 초인 사상에 어떤 생리학적 배경이 되었는지 탐구. 어머니가 뭐 좀해먹으라고 독일제 식료품과 특히, 주방기구까지 바리바리 싸 보냄. 근데 식욕부진과 식욕 사이에서 분열증.
푸리에: 공상적 사회주의자인 푸리에가 꿈꾼 '미식적 유토피아'를 통해 욕망의 해방을 논한다. 어마어마한 상상력, 직접 확인해보시길, 음식으로 이런 정치사회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예는 없었지 않나 한다.
마리네티 (미래주의자): 요리도 예술처럼 파괴적이고 혁신적이어야 한다고 주장, '파스타 폐지론'을 펼쳤던 인물. 마리네티 미래파 선언에 관련된 내용을 참고할 수 있음.
사르트르: 갑각류 혐오와 통조림 실존주의. 옹프레는 사르트르의 식습관을 '점성에 대한 공포'와 연결 지어 설명한다. 갑각류에 대한 혐오라 표현했는데 게나 바닷가재 같은 갑각류를 극도로 혐오했다. 옹프레는 이를 사르트르가 가진 '속이 비어 있지 않고 꽉 찬 존재', 혹은 '끈적거리는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거부감으로 해석한다. 사르트르는 자연 상태의 음식보다 통조림이나 소시지처럼 인간에 의해 완전히 가공되고 형태가 변한 음식을 선호했다. 이는 자연(즉자)에 의해 압도당하지 않으려는 자유로운 인간(대자)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것일 수도 있다. 사르트르의 '게'에 대한 공포는 그의 철학적 개념인 '구토'와도 긴밀하게 연결되는 지점이라 옹프레의 분석 중에서도 특히 백미로 꼽힙니다. 잘 먹지도 않고 씻지도 않았던 사람.
사르트르 외에도 옹프레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을 짧게 다루며 자신의 논리를 보강한다.
에피쿠로스: 미셸 옹프레 철학의 근간인 쾌락주의의 아버지. 흔히 '쾌락주의'로 오해받지만, 사실은 빵과 물만으로도 충분한 '최소한의 쾌락'을 추구했던 철학자.
사드 후작: 미셸 옹프레는 이 책에서 그를 '감옥 속의 미식가'이자, 음식을 철저하게 '권력과 통제의 도구'로 사용한 인물로 조명한다. 옹프레가 분석한 사드의 미식 철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인생의 오랜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사드는 외부에서 들여오는 음식에 병적으로 집착했습니다. 옹프레는 사드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들을 분석하며, 그가 요구했던 구체적인 요리 목록(특히 초콜릿과 단 음식들)이 단순한 식욕이 아니라 박탈당한 자유를 회복하려는 의지였다고 본다.사드에게 음식은 성적 욕망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옹프레는 사드의 문학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연회들이 어떻게 미식적 쾌락을 넘어 타자를 지배하고 파괴하는 소모적인 축제로 변질되는지 설명.( 미식과 에로티시즘의 결합) 특히 사드는 초콜릿에 집착했는데, 옹프레는 이를 그의 어둡고 무거운 욕망을 상징하는 검은색의 연금술적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초콜릿에 대한 갈망) 사드 후작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인간의 욕망이 가장 극단적인 상황(감옥)에서 어떻게 '미식'이라는 형태로 표출되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대목.
철학자의 뱃속을 통해서 본 저자 미셸 옹프레의 철학은 반(反)형이상학이라 할 수 있다. 이성이나 영혼 같은 추상적인 개념만 숭상하던 기존 철학의 권위를 해체하는 대신 '입, 위장, 항문'으로 이어지는 신체적 과정을 통해 철학을 다시 읽어낸다(프랑스 철학 전통에서 멀지 않다). 인간을 먹고 마시는 생물학적 존재로 규정하며, 사상 또한 생리적 현상의 연장선에 있음을 강조하는 유물론적 관점으로 음식과 요리를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 방식을 결정짓는 중요한 철학적 주제로 격상시키면서 철학적 미식학의 진정한 시초를 알렸다는 평가.
『철학자의 뱃속』
이 책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사실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엄숙하고 딱딱한 철학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신체의 철학'을 맛보고 싶은 독자에게 매우 흥미로운 작품.
미셸 옹프레는 철학자들의 '신체적 욕망'을 통해 사상을 해부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책으로 1989년 'Prix de l'Union des éditeurs de langue française'(프랑스어 출판 연합상)를 수상하며 철학계에 화려하게 데뷔. 옹프레는 1959년생이니(2026년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되었으니...시끄러운 사람..), 만 30세가 되던 해에 이 책을 출간한 셈입니다. 당시 이 책은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그들의 식탁을 통해 해부한다"는 접근법으로 대중과 비평가 모두에게 큰 찬사를 받았다는데 당시 판매량 40만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