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영화 ― 존재를 위하여 2025, 불란서 책방』
김성태의 『영화 ― 존재를 위하여』는 제목에서부터 철학적이다. 저자는 “영화가 존재한다”는 단순한 명제를 다시 묻는다. 그 물음은 영화가 여전히 존재하는가, 혹은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중층의 질문으로 확장된다. 우리가 극장에서 보던 영화는 점점 사라지고, 스크린은 스마트폰의 창으로 흩어졌다. 영화가 사라지는 시대에 ‘존재를 위하여’라는 말은 아이러니처럼 들린다. 그러나 김성태는 바로 그 ‘사라짐’의 지점에서 영화의 존재론을 다시 열어젖힌다.
그에게 영화는 단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가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이다. 즉, 영화는 사유의 도구이자 존재의 현현이다. 이 책은 영화를 산업으로서도, 예술로서도, 텍스트로서도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규정을 유예한 채, 영화가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이는 들뢰즈의 이미지철학, 하이데거의 존재사유, 그리고 베르그송의 지속 개념을 배경으로 하며, 영화의 시간을 ‘존재의 시간’으로 읽는 시도이다.
김성태가 말하는 ‘존재로서의 영화’는 미학이 아니라 철학이다. 그에게 영화는 감각과 언어 사이, 현실과 재현 사이에 놓인 틈이다. 그 틈에서 세계는 새롭게 드러난다. 즉, 영화는 단순히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비추는 장(場)을 형성한다.
그는 영화의 본질을 ‘이미지’에서 찾는다. 그러나 이 이미지란 재현된 시각적 형상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운동과 지속이 시간 속에서 포착된 존재의 흔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는 기록이 아니라 발생이며, 서사가 아니라 현현이다.
이러한 접근은 들뢰즈의 『시네마 1·2』와 깊이 맞닿아 있다. 들뢰즈가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를 통해 영화의 사유 능력을 논했다면, 김성태는 그것을 한층 더 확장해 ‘존재-이미지’라는 개념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존재를 드러내는 매체이자, 존재가 자신을 감각적으로 발화하는 장치다.
그에게 영화의 목적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느껴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영화가 예술이자 철학이 되는 방식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오즈 야스지로의 정지된 컷, 베르톨루치의 붉은 사막, 김기덕의 무언의 인물들 속에서 우리는 ‘사람이 아닌 세계’의 시선을 경험한다. 그것이 곧 존재의 이미지다.
김성태는 기존 영화이론의 실증주의적 태도를 비판한다. 통계, 구조분석, 장르 분류, 산업 연구 등은 영화의 외피만을 다룬다는 것이다. 그는 영화 연구가 언제부턴가 ‘영화를 통해 사회를 설명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영화의 존재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그의 비판은 단순한 형식논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묻는다. “영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존재는 인간의 인식 이전에 있는가, 이후에 있는가?” 이러한 물음은 영화의 존재론을 넘어, 이미지의 존재론으로 확장된다. 즉, 영화란 인간의 눈을 거치지 않고도 존재하는 세계의 움직임이며, 인간의 감각이 그 세계를 포착하는 하나의 양식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는 “영화는 인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넘어서 세계를 사유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때 영화는 더 이상 사회적 거울이 아니라 존재의 거울이 된다. 사회적 의미와 미학적 가치의 외피를 벗긴 영화는 그 자체로 철학이 된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존재를 논하면서도, 그 존재가 더 이상 극장 스크린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인식에 있다. 디지털과 스트리밍의 시대, 영화는 사라지는 대신 흩어지고, 분화되고, 변형된 존재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김성태는 이것을 ‘존재의 다중적 현현’이라 부른다.
이 대목은 플랫폼 시대의 영상문화와 깊게 연결된다. 넷플릭스나 유튜브의 이미지 역시 영화의 한 변형으로 볼 수 있다. 김성태의 관점에서 보면, OTT가 영화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영화적 존재 방식이 다른 형식으로 이행한 것이다. 즉, 영화의 존재는 매체 기술에 종속되지 않는다. 영상이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 그것이 바로 ‘영화’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블루스>나 <더 글로리>, <스크린 속 AI 캐릭터> 역시 영화의 존재론적 장면으로 읽힐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는 사라졌는가? 김성태의 대답은 “아니오”다. 영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중이다. 존재는 형식보다 앞서고, 영화는 형식을 초월해 존재한다.
이 책이 단지 철학적 선언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김성태가 영화의 존재를 윤리와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존재를 사유하는 것은 곧 타자를 사유하는 일이다.” 영화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야기가 아니라, 타자의 존재를 감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의 존재론은 곧 타자 윤리학으로 이어진다. 그는 영화가 우리를 세계의 고통과 타자의 얼굴 앞에 세우는 장치라고 본다. 카메라의 시선은 단지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마주보는 윤리적 행위’다.
이 윤리적 관점은 최근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재현의 폭력’이 논의되는 흐름과 맞닿는다. 타자의 고통을 소비하는 영상, 트라우마를 재현하면서 오히려 상처를 반복시키는 콘텐츠는 김성태의 영화론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는 영화가 존재를 드러내되, 존재를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영화의 윤리다.
김성태의 영화관은 시간의 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베르그송의 ‘지속(durée)’ 개념을 차용하여, 영화의 시간을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쌓여가는 시간’으로 본다. 영화는 한 순간의 이미지가 아니라,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이때 영화는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매체가 아니라, 존재의 흔적을 보존하고 생성하는 기억의 장치가 된다. 따라서 김성태에게 영화는 기록된 과거가 아니라 지속 중인 현재이다. 영화는 사라진 순간을 다시 불러오되,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존재를 새롭게 창조한다.
이 관점은 ‘집단기억과 텔레비전 드라마’라는 당신의 연구 주제와도 직접 연결된다. 김성태의 영화론을 드라마로 확장하면, 드라마의 장면 또한 존재의 이미지로 읽을 수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려낸 1990년대의 시간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집단이 스스로의 존재를 재구성하는 시간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적 시간의 사회적 버전이다.
김성태는 영화의 언어를 ‘비언어적 언어’라 부른다. 즉, 영화는 말이 아니라 보이는 것의 언어로 존재한다. 그는 “언어가 사유를 제한할 때, 이미지는 사유를 확장한다”고 말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 시간, 관계가 영화 속 이미지로 드러날 때, 우리는 비로소 존재를 ‘느낀다’.
그렇기에 그는 영화이론이 언어 중심적 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여주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깊은 사유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철학을 이미지로 번역하는 예술이며, 존재가 언어 이전에 발화하는 순간이다.
8. ‘존재를 위한 영화’와 ‘영화를 위한 존재’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김성태는 영화와 존재의 상호성을 말한다. “영화는 존재를 위하여 있지만, 동시에 존재는 영화를 위하여 있다.” 이는 단순한 수사적 대칭이 아니다. 그는 영화를 인간 존재의 확장으로 본다. 우리가 영화를 통해 세계를 본다면, 세계 또한 우리를 통해 영화를 본다.
그는 이를 ‘공명’이라 부른다. 영화와 인간, 이미지와 존재가 서로의 울림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공명의 감각은 결국 예술의 근원적 역할을 다시 일깨운다. 영화는 단지 현실을 재현하는 기술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반추하는 미학적 행위다.
따라서 김성태의 영화론은 기술 중심의 미디어 담론에 대한 대안적 제안으로 읽힌다. 디지털 이미지와 AI 영상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존재의 문제를 묻는 영화철학은 더 절실해진다.
그러나 이 책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저자의 사유는 지나치게 고도로 추상화되어 있어, 구체적 영화 사례나 현대 영상 환경에 대한 분석은 부족하다. 예를 들어, AI 이미지 생성이나 플랫폼 알고리즘이 ‘존재의 방식’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다. 또한, ‘존재론적 사유’라는 이름 아래 영화의 사회적 조건, 노동, 젠더, 재현의 문제를 다소 외면하는 측면도 있다. 영화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어떤 존재가, 누구의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가라는 질문이 뒤따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영화 ― 존재를 위하여』는 하나의 출발점이다. 철학적 사유로서 영화론의 가능성을 열었지만, 그 사유를 현대 영상 현실 속으로 다시 끌어내리는 작업은 독자의 몫이다. 당신이 그 연장선에서 OTT 드라마와 기억, 알고리즘과 감정의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면, 바로 이 책이 그 이론적 뼈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10. 결론 ― 존재를 위하여, 다시 영화를 위하여
『영화 ― 존재를 위하여』는 한국 영화이론서 중 드물게 존재론적 깊이를 견지한 저작이다. 산업·정책·장르 연구에 치우친 한국 영화 담론 속에서, 김성태는 영화가 다시 철학의 언어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영화는 인간이 만든 이미지의 집합이 아니라, 세계가 스스로를 보여주는 현상학적 장면이다. 그 장면 속에서 우리는 타자를 만나고, 시간을 느끼며, 존재의 근원을 묻는다.
따라서 영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는 달라질지언정, 존재를 사유하는 이미지로서 계속 남는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철저하게, 그리고 고요하게 증명한다.
오늘날 인공지능이 영화를 만들고, 알고리즘이 장르를 결정하는 시대에, 김성태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는 존재하는가?” 그 물음은 곧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존재로 영화를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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