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업으로 삼지 않은 사람의 인생이 영화로 구성되었다면 믿으시겠는가. 말 그대로 영화와 함께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다. 30여 년 동안 오직 극장에 오가며 영화를 본 것이 그의 유일한 일이자 삶이었다. 이 책은 우연한 계기로 영화에 빠져든 저자가 삶과 영화 사이에서 방황하며 써 내려간 일생의 기록이자 그로 인해 치러야 했던 삶의 대가 또한 뼈저린 회한으로 털어놓는 고백록이다.

 

영화와 한 개인의 실존이 이렇게 만나는 책은 보기 드물다. 영화와 한 몸으로 살아온 저자의 글은 우리 삶에서 영화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영화에 매혹되는가? 이미지의 힘은 무엇인가에 대해 별다른 이론의 도움이 없이도 한 사람의 삶을 통해 깊은 숙고로 인도한다. 그렇게 이 책은 영화의 위기라 불리는 지금, 순수하게 관객이 영화를 본다는 것의 본질적인 체험을 전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이러한 체험과 자각이야말로 영화의 존재 이유라는 것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영화를 통해 인생의 여러 절망과 슬픔을 겪기도 했지만 놀랍게도 또한 영화를 통해 구원받는다. 그러므로 이 저자의 여정 자체가 지금 우리에게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할 것이다.

 

이 책의 구성 대략 저자의 인생 여정을 닮았다. 영화와 열렬한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순간으로 시작해서 가장 강렬했던 영화 체험과 잊을 수 없는 영화들, 그리고 저자와 영화, 그리고 가족이라는 삼각관계에서 일어난 애잔한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마지막에는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구원하려는 필사의 노력으로 글을 끝맺고 있다.

독자는 한 사람이 영화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으며 어떤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다. 영화와 삶 사이에서 고민해온 저자의 진솔한 감정들이 전편에 잘 묻어있듯 저자의 이 진정성이야말로 이 책의 최대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1극장전은 극장이라는 공간을 삶의 일상적 공간으로 살아온 저자가 극장을 중심으로 겪었던 감정이나 여러 관계와 사건들을 담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들과의 만남, 홍상수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 등과의 인연 등 자연스럽게 영화인들과 만나게 된 일화들을 전하며 영화와 영화예술가들에 대한 깊은 흠모와 애정을 고백한다. 2미치광이 같은 사랑에는 저자가 유독 애착을 갖는 영화 중에서 그동안 매체에 기고했던 영화 리뷰와 영화에 관한 생각을 담은 글이 실려있다. 특히 저자가 자신과 동일시하다시피 하는 영화와 인물인 히치콕의 <현기증>스코티’, 그리고 저자의 인생 영화인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저자의 삶으로 분석된다. 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근래 세상을 떠난 배우들과 감독을 위한 추모의 글로 채웠다. 알랭 들롱, 지나 롤랜즈 등 기라성 같은 배우와 오시마 나기사, 데이빗 린치 같은 독보적인 감독들을 위한 존경과 감사를 담았다. 가장 밀도 있고, 또 저자의 진솔함이 묻어나는 4어느 가족은 영화를 주제로 삼은 글 중에서 독보적이라 할 만큼 독자의 심금을 울릴만한 글을 모았다. 영화와 저자의 삶이 가족사 안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평생 소원했던 아버지와의 첫 화해,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순간마저 영화로 기록되는 놀라운 광경, 그리운 어머니와의 애틋한 사연도 영화와 함께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자신을 구원했다고 말하는 한 편의 영화 <벌새>를 통해 자신의 청년기를 먹먹하게 바라본다.

 

시네필이라 불리는 영화매니아들 뿐만 아니라 한때 영화에 열광했던 세대에게도 특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고 달랠 것이다. 자연스럽게 영화와 삶이 밀착된 관객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영화학계의 연구자나 전공자, 평론가와 영화저널리스트에게도 영화와 관객의 상호관계성을 탐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할 것이다.

 

 

 

책 속에서


영화에 미쳐 살기 시작한 지 대략 30년이 지나 뒤돌아 보니 영화에 대한 열정은 나의 맹렬한 짝사랑이었다. 그것도 어쩌면 병적인 사랑. 나름 분석을 해보자면, 사람들로 부터 얻고 싶었던 사랑을 결코 얻을 수 없었던 나는 영화에 대한 짝사랑을 통해서라도 그 결핍을 채우려고 했다.

영화와 함께 살아왔지만 정작 영화로부터 그 어떤 보답도 받지 못한 것 같다. 한때 나와 함께 영화를 보던 사람 중 에는 현재 평론가나 감독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 도 많다.

반면에 나는 조금의 진전은 있었을지 몰라도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짝사랑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영화가 나를 사랑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 나는 영 화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했다. 이것은 또다시 실패를 의미 한다. 사랑은 상호적일 때 온전히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짝사랑하는 것은 타인과 소통하는 것보다 나에게 행복한 일이었다. 적어도 나는 영화로부터는 사람만큼 상처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나는 영화에 대한 병적인 사랑을 버릴 수 없었다.

나는 한때 타인과 소통할 수 없고 신앙적인 고민을 해결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스크린 속에서 영원한 죽음을 꿈꾼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었다. 내가 살아있는 한 그런 형태의 죽음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스크린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오려고 했으나 그 또 한 쉽지 않았다. 마치 문명 세계에 적응하지 못했던 늑대 소년처럼 사람들과의 소통은 더 어려워졌다. 어느 순간 영화에서 현실로 돌아왔으나 다시 상처받고 영화로 돌아가고, 다시 필사적으로 현실로 돌아오려고 했으나, 또다시 상처받고 영화로 돌아가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그런 가운데 부모님 모두 돌아가셨고 나는 더욱더 사람들과 멀어지고 내 삶은 점점 망가져 갔다.


https://www.aladin.co.kr/m/bookfund/view.aspx?pid=2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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