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없는 삶이 가능한가 하는 것은 여전히 내겐 주요한 질문거리이다. 가만히 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듯 지난 세월을 상기하면, 평생을 흔들리고 흔들리면서 살아온 시간만 떠올라서 묵직하고 깊은 중심을 갖는다는 게 애초에 내게는 불허된 것 같았다. (...) 산은 못돼도 바위 비슷한 것은 되고 싶었는데, 큰 나무는 못돼도 갈대처럼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작은 돌멩이고 강아지풀이었다. (..) 자신을 감당하기도 힘들어하면서 어떻게 타인을 감당해 내겠는가."(스미는 목소리 247쪽)

#한정선 작가는 제주도에서 타인과 사회를 지원하는 활동가이자 작가이기도 하지만, #조울증 과 #불안장애, #수면장애 #메니에르 등 다양한 증상을 겪고 있는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질병인으로서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그러나 조금은 다를 수밖에 없는 일상의 어려움과 즐거움, 소소한 기쁨과 외로움 등을 풀어냅니다. 일상에 침투해 들어오는 사소하지만 날카로운 순간의 경험, 하루의 절망과 하루의 희망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자신만의 감정과 호흡, 의식 세계에 깊이 몰입하는 작가는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산문으로 자기 탐색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기록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돌보는 이야기는 《#스미는목소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쩌면 불안을 달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딱히 질환이 아니어도 말이죠. 또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저런 심리적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많습니다. 나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배울 부분이 많은 책입니다.
"자신에게만 침잠하고 골몰하며 바라본 세상을 써내기도 했고 때로는 세상에서 수합되는 사건들을 살피고 고민하고 드러낸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 골몰하는 나도 관찰하는 나도 모두 세상과 내가 관통하는 순간에 이뤄진 고통과 기적의 순간이었다. 관통하는 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관통한 틈으로 캄캄한 어둠이 밀려 나오고 나면 비로소 거기에 빛이 스며든다. 바로 기적의 순간이 있다. 캄캄한 어둠이 반짝이는 그 틈을 헤집고 벌리고 바라본다. 이 책은 이런 기록을 담아내고 싶었다."

"누군가의 시선에는 성에 차지 않고 어떨 때는 누군가의 온정에 기대어 버텨온 세월 내내, 정말로 나는, 망가지고 엉망인 모습인 그대로 ‘최선’이었다."
"두려웠다. 흩어져 있던 글을 묶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과정은 여전히 낯설고 이상한 감각을 길어 올렸다. 이 글이 너무 사적이지 않나, 내 병증을 지나치게 드러낸 건 아닌가,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F코드-정신과 코드- 낙인이 찍힌 채, 어떤 행동이나 무엇을 해도 이 병증 때문이라고 재단 당하고 비난받거나 동정받게 되지 않을까, 나아가 현재 직장 생활을 유지할 수는 있을까 하는 구체적 두려움이 가슴을 파고들어 헤집어 놓았다.
용기를 내어보아도,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내겠다고 덜컥 약속했는지 자신조차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날이 섰을 때, 내 글에 자신이 다시 상처받아서 웅크리고 할퀴기만 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을 때, 바닥에 쏟아진 물처럼 주워 담지 못할 것 같은 상태에서, 마치 물로 만들어진 인형처럼 일어나 작업을 이어갔다. 울어도 눈물이 티가 나지 않아 다행인 물 인형으로 다시금 글을 마주할 수 있었다."
흔들림 없는 삶이 가능한가 하는 것은 여전히 내겐 주요한 질문거리이다. 가만히 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듯 지난 세월을 상기하면, 평생을 흔들리고 흔들리면서 살아온 시간만 떠올라서 묵직하고 깊은 중심을 갖는다는 게 애초에 내게는 불허된 것 같았다. (...) 산은 못돼도 바위 비슷한 것은 되고 싶었는데, 큰 나무는 못돼도 갈대처럼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작은 돌멩이고 강아지풀이었다. (..) 자신을 감당하기도 힘들어하면서 어떻게 타인을 감당해 내겠는가. - P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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