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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포비
다니엘 보릴로.카롤린 메카리 지음, 김영신 옮김 / 불란서책방 / 2023년 6월
평점 :
<대니쉬 걸>이란 영화를 본 후였는지, 저 유명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본 후였는지, 그도 아니면 <본즈 앤 올>을 본 후였는지는 모르겠다. 뜬금없이, 왜, 미워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한 것은.
우리는 대부분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기에, 미워하는 건 이해는 하겠는데, 이처럼 지독하고 집요하게 한결같이 역사적으로 미워하고 있는 이 인간의 행위란 도대체 무얼까,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이내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접기로 했다. 내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것이니까.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하는 것. 때론 지루하고 뻔한 일 아닌가. 누구나 이미 본 '아주 오래된 연극'이란 것.
동성애가 대체 뭐야, 라고 묻는 순간 덫에 걸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다달았다. 그럼 남은 건, 도대체 왜, 그렇게 집요하게 미워하는 걸까였다. 이런 저런 책을 찾던 중에 발견한 책이 <호모포비>였다. 미워함의 역사적 기원과 양태를 알아가다보니 결국은 동성애자란 가부장제와 출산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일 뿐인데, 가부장제와 출산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나 같은 이성애자도 동성애자 처럼 미워함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아니, 확실히 난 미움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갇힌 동성애자는 분홍 삼각형 표식이 주어졌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수용소에서 풀려난 사람들에게는 미국으로 갈 수도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동성애자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더우기 그들은 2017년이 되어서야 수용소의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당연한 인간적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것, 이 책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었다. 왜 미워하는가가 아니라 왜 권리를 주지 않는가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질문 일것이다.
책은 고대 성서시대와 그리스 로마, 기독교 시대를 거쳐 중세와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입장과 관점에서 동성애를 다루는 양태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근대에 들어, 과학과 의학, 이데올로기와 관료체제, 그리고 부르주아 시민사회가 형태를 달리하며 교묘하게 권리를제한하고 소외시키며 혐오를 조장하는 매커니즘을 볼 수 있다.
어떤 독자분의 혜안이 머리에 남는다. "<호모포비>는 동성애 혐오에 대해 이야기 하는 데 그건 곧 인간의 행위를 집요하게 부정하고 배격하는 또 다른 인간에 대한 이야기" 라는 구절.
그리고 서점 직원의 다음과 같은 말도 인상적이다. "책을 읽다 보면 결국 동성애 혐오는 이성애 기준에서 다른 수많은 혐오와 차별들과 유기되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예를 들면, 성차별, 인종차별과 같이 말이다. 혐오는 혐오를 낳고 더욱이 여성과 아이, 약자로 흘러가는 매커니즘을 가진다. 특정 무언가를 옹호하는 글이 아니다. 혐오는 우리 모두에게 있기에 누구나 마주해야 하는 진실임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독을 권한다."
인류의 생물학적 진화가 동성애와 이성애의 구분조차 무의미한 쪽을 향해, 생각보다 빨리 달려가고 있다. 혐오를 멈추고, 정당한 권리를 인정하고, 무관심해지는 것. 내가 다른 이성애자에게 그들의 성애에 무관심한 것 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