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뱃속
미셸 옹프레 지음, 이아름 옮김 / 불란서책방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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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뱃속>에서, 인간은 곧 그가 먹는 것이다. 삶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 최초의 미식 평론가 브리야 사바랭에 따르면 먹는 것으로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디오게네스, 루소, 칸트, 푸리에, 니체, 마리네티, 사르트르의 식생활과 취향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데카르트와 헤겔, 스피노자, 사드 등 여러 철학자의 식습관도 짤막하게 소개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철학자들의 숨겨진 면, 그들이 실제 무얼 먹었는지 등에 관심을 둔 가벼운 에세이는 아니다. 서구 철학의 주요한 철학자들의 철학과 삶의 태도가 일상에서 어떻게 관철되고 또 어떻게 엇나가는지 관찰한다. 음식에 대한 태도와 그들의 철학적 삶 사이의 조화와 부조화, 식생활과 관념,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실제적 삶 속에서의 철학의 지위를 다시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서구 철학사의 다양한 논쟁, ‘본질주의자’와 ‘실존주의자’, ‘쾌락주의자와 경건주의자’, ‘형이상학자와 과학자’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음식과 식생활의 취향을 통해 들려주기에 자연스레 서구 철학의 역사를 일별할 수 있다.


불과 문명에 대한 절대 거부 속에 고독하게 미식을 즐긴 잡식의 대가, 디오게네스는 자신의 식생활 취향과 삶을 완벽하게 일치시킨 인물이다. ‘인간에게 최초의 양식은 우유’라 주장한 루소는 기본적으로 채식 동물의 구강과 위장 구조를 갖고 태어난 인간이 문명의 발달을 통해 변화해 가는 과정을 짧지만 장대하게 보여준다. ‘인류의 구원은 무엇을 먹느냐에 달려 있다’고 설파한 니체는 정작 자신의 관념과 식생활을 조화시키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


어마어마한 술꾼이었던 칸트는 말년에야 조화를 되찾고, 푸리에는 음식을 사회변혁의 도구로 삼는다. 마리네티는 취향의 예술을 위해 음식에 대해 가능한 실험을 극단으로 밀고 간다. 최악의 인물은 사르트르, 그는 도대체 먹지도 씻지도 않는 인물로 그려지면서 언제나 몇몇 음식에 대한 거부와 혐오 속에서 인생을 공포로 떨었던 인물로 묘사된다.


행위와 사유의 분리가 불가능한 본질적 개념으로서의 삶을 현실 너머에서 사유하지 않고, 상황과 환경의 압박에도 순응하지 않는 삶,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살아보며 배운다. 그러나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뭔가 거창하고 거대한 일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일상적 삶의 경험이 바로 우리 삶의 영역이듯, 일상의 작은 행위들이야말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리고 세계에 대해서도 진정한 정치적 행위가 되지 않을까.


<철학자의 뱃속>은 의심 많은 철학자가 선배 철학자들의 위장을 조사한 책이다. 구체적 일상을 철학의 주요한 화두로 삼는 이 철학자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들로 가득한 형이상학적 성찰과 뱃속의 행복을 별개로 분리하지 않는다. 이 철학자는 바로 공격적인 성향의 논쟁가 미셸 옹프레. 반항적 기질로 논쟁을 통해 미디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그는 일상과 현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철학을 주장하며 마르크스, 프로이트, 사르트르, 푸코, 들뢰즈를 일종의 환상이자 사기꾼으로 격렬하게 비난한 바 있다. 반면 에피큐로스는 아버지로 니체나 푸르동은 스승으로 여긴다. 그가 보기에 마르크스보다는 서민적인 푸르동이 진실에 더 가깝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지식인들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노란 조끼] 운동에 그 누구보다 먼저 지지 의사를 밝힌 사람은 프랑스 서민 대중의 삶, 그 삶의 조건을 현실적으로 변화시키려 2002년에 프랑스 최초로 문을 연 [캉 시민 대학]의 설립자 옹프레였다. 일상에 밀접한 정치, 예술, 철학, 음악, 미식 등을 주제로 컨퍼런스를 열고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곳이다. 2006년엔 [미식 대학]의 문을 열면서 먹는 것에서 인간의 삶이 시작되고 끝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 <철학자의 뱃속>은 그의 첫 책으로 1984년에 쓰였다. 당시로서는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베스트셀러였고 이 책을 통해 옹프레는 대중이 주목하는 철학자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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