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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 앤드 엔솔러지
이서수 외 지음 / &(앤드) / 2025년 6월
평점 :
[도서협찬] 서로를 부르던 그 이름에서 삶의 결을 읽어내는 책
책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목차]
어느 한 시절 • 이서수
그 언니, 사랑과 야망 • 한정현
둘 중에 하나 • 박서련
순영, 일월 육일 어때 • 이주혜
나를 다문화라 불렀다 • 아밀


진희 언니의 카페가 문을 닫았던 날, 우리는 온종일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반추하려 했으나 반나절이 지나자 막을 수 없는 하품이 나왔다. -어느 한 시절
특종이다. 이건 진짜 특종이라고. -그 언니, 사랑과 야망
여기에는 여름이 안 올 것 같아. 처마 끝에서 자라난 고드름들을 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둘 중에 하나
오전 8시. 알람이 울렸고, 동시에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까마득한 어디에서 세계가 무너졌다. 세계는 오후 5시 무렵 한 번 더 무너질 것이다. -순영, 일월 육일 어때
현주는 현서의 소설에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굳이 찾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다문화라 불렀다


언니로 태어나고 싶었던 적은 없다. 그런데도 나는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가 되어야 했다. 부모님은 언제나 나를 먼저 불렀고, 내 선택과 무관하게 동생보다 앞선 사람이 되어야 했다. "네가 언니잖아." 그 말은 칭찬보다 훈계에 가까웠고, 지독한 책임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K-장녀가 되었고, 성장할수록 사회에서도 자연스레 ‘언니’로 불리게 되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른이라는 역할도 덤으로 따라왔다.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를 처음 접했을 때, 그래서 궁금했다. 나에게 언니는 다정함보다는 의무의 상징이었는데, 이 책은 '언니'라는 단어에 어떤 온도와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다섯 명의 여성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언니’의 얼굴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언니가 될 수 있고, 꼭 다정하지 않아도 언니로 기억된다는 사실. 언니란 단어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어떤 ‘시간’을 함께 건넌 존재에게만 가능한 호칭이었다.
요즘 단편소설을 쓰다 보니,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이름을 바꿔 살았던 친구, 가부장제 안에서 격동의 시간을 살아낸 여성들, 사랑이자 질투였던 자매. 현실보다 더 생생한 감정의 결들이 한 줄 한 줄 스며든다.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는 여성에게 ‘언니’라는 호칭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동시에, 앞으로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언니는, 우리가 서로를 지칭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연대의 말인지도 모른다. 피로했던 언니라는 말이,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안식처로 기억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