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기자 상담실 -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
가메오카 어린이 신문 지음, 요시타케 신스케 그림, 정인영 옮김 / 샘터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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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쩜 이렇게 유쾌하고 재밌는 책이 있을까. 가볍게 읽을만한 책으로 웃어넘겼는데, 보는 내내 맞장구를 치다, 옆에 앉은 지인에게 이 대답 좀 보라며 말을 건네기도 하며, 단숨에 마지막 장까지 읽어갔다.


「어린이 기자 상담실」는 일본 교토에 위치한 가메오카라는 동네에서 발행되는 가메오카 어린이 신문에 실린 상담 코너의 내용을 모아 만든 책이라고 한다. 가메오카 어린이 신문의 재미를 책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주기 위해 장의 마지막마다 재밌는 코너가 소개되는데, 숨어있는 10마리의 거북이 찾기라는 과제부터 다소 낯선 가메오카라는 마을 소개와 가메오카 어린이 신문의 실제 모습, 그리고 어린이 기자들이 취재를 하는 모습과 어린이 기자라 벌어지는 에피소드까지 다양하게 접할 수가 있었다.

모든 답변이 주옥같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답변은 <여자친구가 결혼을 빨리하자고 보채서 고민입니다.>, <이성에게 인기를 얻는 비결을 가르쳐 주세요.>, <부부의 사랑이란 뭘까요?>, <아들이 제 말을 못 들은 척해요.>, <어떻게 해야 꾸준히 계속할 수 있을까요?>, <요즘 젊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였다.


요즘은 남편이 집안일을 도맡아도 이상한 게 아니에요! 그런 모습이야말로 요즘 대세라고요. 열심히 집안일을 해서 '남자 주부' 유행을 따르면 되는 거 아니에요?

여자친구가 결혼을 빨리하자고 보채서 고민입니다, 답변 中


그 답변들이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어서가 이었다. 아이들의 답변 속에 어른들이 내뱉는 가장 기본적인 믿음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 나는 종종 아이들의 옳은 답변을 들으며 어른인 내가 놓친 것이라며, 내가 외면했던 옳음에 대한 변명을 해온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에게 들은 옳은 답변을, 어른들에게 그대로 돌려줬던 어린이 기자들, 가메오카 마을뿐만 아니라, 국내에도 어린이 기자를 꿈꿀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짠, 쓰기만 해도 고민이 사라지는 <어린이 기자 상담실> 위클리 플래너.

귀여운 일러스트가 줄지어 있고, 칸이 넓어 어떤 용도로 사용하면 좋을까, 하고 후보를 꼽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역시 독서 플래너인데, 쓰임이 확정되면 나중에 다이어리 관련 포스팅이랑 같이 올려봐야지.










* 본 리뷰는 샘터 물방울 서평단 14기 활동의 기록으로 샘터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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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20.2 - 지령 600호 기념호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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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추억을 자극하는 잡지들이 있다. 어린 시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미스터 케이와 와와 109였다. 잡지가 나올 때면 잔심부름을 도맡아가며, 부모님에게 나에게 이 잡지를 사줘야 함을 피력하곤 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브로마인드와 같은 연예계 잡지나 윙크, 이슈와 같은 만화 잡지를 좋아했다. 그리고 잠시 과학도의 열정이 불타올라 과학동아나 Newton을 사곤 했는데, 입고 날짜마다 단골 서점을 기웃거리고, 조금이라도 입고가 늦어지면 연락처를 남기며 꼭꼭 연락을 달라 당부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어른이 돼서도 나는 여전히 잡지를 구독하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공연 전문 매거진인 더 뮤지컬을 구독했고, 정기 구독을 아니지만, 우먼카인드나 문학잡지를 산다.


수많은 잡지들 속에서 「샘터」는 가장 쉽게, 가장 보통의 사람들의 추억을 즐길 수 있는 잡지였다. 은행이나 미용실, 도서관에 늘 비치가 되어있었다. 어릴 때는 가장 보통의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가장 멀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궁금해했기에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집어 들었다 번번이 내려놓고는 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보며 터져버렸다 믿는 꿈을 키운다. 전문 기자와 칼럼니스트들의 글로 가득 채워진 내 추억 속 잡지와 달리, 샘터를 통해 만날 수 있는 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내 주변 사람들이다. 조금씩 다른 경험과 감정이 묻어나는 친숙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울컥 차오른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빛나고 있지만, 가장 공감이 많이 됐던 건 내 인생의 황금기라는 특집이었다. '철의 연인'이었던 대학시절을 추억하는 분의 글을 시작으로, 유튜버 엄마의 보람찬 하루, 청각장애인 마술사가 꿈꾸는 행복까지. 어쩜 이야기 하나하나가 요즘 내가 스쳐 지나갔던 감정들을 조금씩 조금씩 담고 있는지ㅡ!


초등학교 운동장에 찾아가 타임캡슐을 찾아낸다면 잃었던 호기심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내 인생의 황금기 - 말괄량이로 돌아가고 싶은 날 / 권기영 中


아이와 노는 모습을 유튜브에 올리며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영상을 찍고 편집해 업로드하는 시간은 나만의 전문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내 인생의 황금기 - 유투버 엄마의 보람찬 하루 / 김의선 中


이처럼 이번 600호는 「샘터」가 가지고 있는 가장 보통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긴 시간 이 잡지를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몽글몽글 묻어난다.


개인적으로 크로스오버 첼리스트 홍진호의 인터뷰 <크로스오버 첼리스트의 깊은 사랑>, 다시 읽는 반세기 샘터로 소개된 <담배 적금, 술 적금>도 재밌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이번 「2020년 02월 샘터 _ 지령 600호 기념호」를 놓치지 마시길.












* 본 리뷰는 샘터 물방울 서평단 14기 활동의 기록으로 샘터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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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우름 42
김경일 지음 / 샘터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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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등학교 내내 급변하는 교육 과정을 온몸을 맞으며, 창의을 갖춘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사람들이 말하는 창의 인재란,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천재였다. 나는 천재가 아니었고, 사회가 창의 인재를 위해 제공했던 수많은 혜택들을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 학교는 아이들 개개인이 가진 창의 사고를 꺼내 발전시킬 수 있는 장이라기보다는 창의 인재가 될만한 재목을 고르고, 그 재목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끔찍한 차별은 과학반에 관한 기억이다. 내가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를 선택했던 유일한 이유였던 과학 동아리는 내가 입학하기 바로 직전 어른들의 비리로 학교 내 동아리 폐지라는 끔찍한 사단을 이유로 사라졌다. 나는 우리 학교에 동아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고 성적을 올리면서 나는 지금까지 보통 학생들에게 숨겨졌던 과학반의 비밀을 알게 됐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만 뽑아 운영되는 과학반, 그들은 일반 학생들에게는 참가 기회조차 알려지지 못한 수많은 과학 대회에 최우선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1학년 때 과학논술 대회를 직접 찾아보고, 참여를 위해서는 담당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말에 과학부를 찾아가 겨우 선생님 이름만 빌릴 수 있었던 나와는 전혀 다른 기회. 내가 조금만 더 용감하고 정의로웠다면 그들을 고발했겠지만, 그때 나는 그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 배웠다. 더 많은 걸 누리고 싶다면 당연히 성적이 좋아야 한다고. 그런 차별 속에서 나는 내가 창의력이 없는 사람이라 믿게 됐고, 내가 용기를 낸다면 도전했을 수많은 기회를 잃었다.


어른이 되고 인권에 대해 배우며, 그때 내가 당했던 것이 차별임을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종종 창의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변명처럼 늘어놓곤 했는데,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작가의 「창의성이 없는 게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것입니다」을 읽으면서 창의성이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마다 꺼내놓는 방법을 아는지, 모르는지의 차이라 생각이 단순히 앎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닫혀있던 편견이라는 문을 열고 마음 한가운데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됐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지 알고 있어요. 걸을 때 창의적인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창의적인 생각이 필요할 때 일단 무작정 걷겠죠? 목욕을 할 때 창의적인 생각이 샘솟는 사람은 목욕부터 할 거예요. 이처럼 창의력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조성하는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창의적인 사람은 없다, 창의적인 상황이 있을 뿐


내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은 어떤 환경일까, 지금까지 내가 써온 수많은 글들, 그리고 그 글들이 쓰인 장소와 시간을 되짚어보며 훗날 내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나는 창의성이 떨어지는, 혹은 창의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책했던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지금까지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잘못 알고 있던 사람들을 위해, 개개인의 자신의 숨어있는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쉬운 예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오랜만에 앉은 자리에서 읽을 만큼 얇고 가볍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설명을 위해 다양한 예시 중에 저자와 딸아이의 만 사천 원짜리 풍선 에피소드가 가장 강렬하게 기억 남는데, 아무래도 사회의 때가 묻은 이라면 누구든 씁쓸한 공감을 할 에피소드라 그런가 보다. 하늘을 향해 날아가던 만 사천 원짜리 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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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행복하라 - 법정 스님 열반 10주기 특별판, 샘터 50주년 지령 600호 기념판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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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를 가지지 않은 이에게 종교와 관련된 서적은 무겁게 다가온다. 유명 인사 중 한 분인 법정 스님 역시 내게는 낯선 타인으로, 「스스로 행복하라」라는 에세이집을 접하기 전까지 그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영향력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작가의 생각을 문장으로 옮긴 에세이에서 작가에 대해 모른다는 건, 어떤 글을 만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안과 흥분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양가적인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에세이는 크게 서문과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아직까지 무언가를 비우기보다는 끊임없이 열망하는 세대라 무소유를 다루는 1장 행복과 4장 나눔에선 쉬이 공감할 수 없었지만, 나와 가장 먼 2장 자연과 가장 가까운 3장 책은 꽤 속도감 있게 읽어 나갔다.


반복적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수행을 한 이의 글은 단지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풍경을 꿈꿀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어, 비슷한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내심 차오르는 부러움을 지게 만들 수는 없었다. 겨울 산의 적막을 새소리가 없기 때문이라 표현하며 새소리를 조화와 화음에 비유하거나(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이나, 옅은 이내를 통해 해와 달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석양의 시간을 다루는 방식(달 같은 해, 해 같은 달)이 마음에 남아,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3장 책은 저자가 깊은 마음을 주었던 책, 그리고 주변의 추천을 받아 읽었던 책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감상문이 이어졌는데, 익숙한 책과 주인공의 이름에 반가워하기도 하고, 읽어본 적 없는 책의 제목을 다시 한번 곱씹고는 했다. 현재 내가 생각하고 있는바와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던 이의 이름은 파블로 카살스로, 아래의 두 문단은 에세이에서 인용한 「첼리스트 카살스, 나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의 내용이다.


우리의 음악은 제한된 청중(여유 있고 유복한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간다고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은 연주회 입장권을 살 수가 없었다. 간신히 돈을 모은 소수의 사람들은 맨 꼭대기 층의 가장 싼 좌석에 앉았다. 나는, 그들이 호사스러운 정면의 일등석이나 로열 박스에 앉은 상류 계층의 사람들을 내려다볼 때 음악과는 전연 무관한 다른 생각에 잠길 것 같았다.


나는 먼저 한 인간입니다. 예술가는 그다음입니다. 인간으로서 나의 첫 번째 의무는 나와 같은 인간들의 안녕과 평화입니다. 음악은 언어와 정치와 국경을 초월하므로 나는 하느님이 내게 주신 이 방법으로 내 의무를 수행하고자 합니다. 세계 평화에 내가 기여하는 바는 미약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성스럽게 생각하는 이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습니다.


파블로 카살스, 책  「첼리스트 카살스, 나의 기쁨과 슬픔」


스스로를 예술가라 칭할 수는 없지만, 삶의 마지막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에세이집을 통해 좋은 책을 알게 되어 기쁘다. 소설은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를 통해 세상을 보게 만든다면, 에세이는 내가 살아가면서 놓칠 수 있는 것들을 바로잡아준다는 점에서 나와는 맞지 않다 여기는 이의 언어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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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고발 - 착한 남자, 안전한 결혼, 나쁜 가부장제
사월날씨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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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언니는 현재 연애하고 있음을 밝혔지만, 자신은 결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때부터 현모양처를 꿈꿨던 언니의 발언은 어른들에게는 우스갯소리였고,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반대로 결혼한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이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던 언니는 지금 결혼 2년 차가 됐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결혼을 선택했고, 동시에 나를 비롯해 또 적지 않은 사람이 비혼을 선택했다. 비혼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바이섹슈얼이라는 내 정체성을 비추었을 때,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가부장 사회 안으로의 진입을 의미했고,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국내법으로 허용되지 않는 일이기에 가능한 선언이었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이에 대한 책을 읽고 미디어를 접하면서 내가 겪고 있는 불만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이야기했지만, 나와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선 가부장 제도 속의 결혼이라는 건 그저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며느리뿐만 아니라,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 속한 자녀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결혼에 대한 사고를 넓히고, 결혼을 옹호하거나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결혼 고발」을 읽었지만, 정작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내가 보거나 겪은 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제도 안에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는 공감하고 누군가는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 이 책을 접하기 전 막연히 그럼 결혼을 왜 해?라고 물었던 나의 무신경한 대답의 답을 에필로그를 통해 찾을 수 있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내가 잘하면 괜찮을 거라고, 무턱대고 낙관할 뿐 굳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기혼 여성이 겪는 온갖 놀랍고 기막힌 사례들을 접하면서도 내게는 해당하지 않으리라 여겼다. 나는 그런 남편을 고르지도, 그런 시가를 만나지ㅐ도 않을 거라고 막연히 장담했다. 그러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가부장제를 맞닥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가부장제는 애초에 며느리에게 예비해놓은 고통이었다는 것을.

198p


나는 그동안 비혼을 택한 나에게는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며, 집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하소연을 할 뿐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남자친구나 혹은 남편에 대한 불만을 토하는 사람에게 공감보다는 오히려 그러니 왜 했어,라는 태도를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만나게 된 「결혼 고발」은 단순히 가부장 제도 아래에 있는 결혼을 고발하는 데 그치고, 비혼주의를 더욱 탄탄하게 해주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비혼을 선택한 사람도, 결혼을 하고 가부장제의 불만과 불편을 토로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소통의 창구가 되어 줄 수 있으며, 미디어와 가부장제를 통해 편함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불어넣은 환상과 낭만 속에서 조금 더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동시에 또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번 기회에 친척 언니의 비혼 선언을 우습게 여기며 넘겼던 친가 거실에도 이 책을 한 권 두고 올 생각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내가 잘하면 괜찮을 거라고, 무턱대고 낙관할 뿐 굳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기혼 여성이 겪는 온갖 놀랍고 기막힌 사례들을 접하면서도 내게는 해당하지 않으리라 여겼다. 나는 그런 남편을 고르지도, 그런 시가를 만나지ㅐ도 않을 거라고 막연히 장담했다. 그러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가부장제를 맞닥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가부장제는 애초에 며느리에게 예비해놓은 고통이었다는 것을.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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