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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쓰는 줄거리
어느 날, 3년 사귄 인도인 애인
알리바바가 살림도구를 모두 들고 날랐다.
나는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어젯밤 창구에서 심야 고속 버스표를 사려고 할 때, 아니
주인에게 열쇠를 돌려주러 갔을 때, 아니 실은, 허물로 남은 방의 문을 연 순간부터.
내 목소리가 투명해져 있다는
것을.
간단히 말하면 정신적 충격에서 오는 일종의 히스테리
증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게 아니라 목소리만 내 몸의 조직 속에서 쏙 빠져나간
것이다. 라디오 음량을 0으로 한 것처럼. 음악과 소리는 나오고 있는데 밖으로 들리지 않는다.
나는 목소리를 잃었다.
조금 놀랐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아프지도 가렵지도 힘들지도
않다. 그저 그만큼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이제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게만 들리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려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꼭.
p17 - p18
린코는 이제 집도 잃고, 모아둔 가게
자금도 잃고, 사랑도 잃고, 목소리마저 잃어버린 채, 겨우 할머니의 유품인 겨된장야채절임이 든 항아리 하나만 소중하게 품에 안고 10년 전
고향을 떠났을 때 탔던 심야버스를 타고 다시 고향으로 향한다.
10년 만에 만난 엄마와 린코와의 재회는
아무런 감동도 없이 흘러간다.
엄마의 비상금을 훔치려 밭으로 향한 딸과,
그런 딸을 도둑으로 오인해 번쩍 낫을 들고 뛰어나온 엄마.
목소리를 잃어버린 딸을 엄마는 나무라지도,
그녀를 대신해 화를 내지도 않는다. 대신 높은 이자를 받고 가게 자금을 빌려주고.
린코는 아버지같던 구마씨의 도움을 받아
<달팽이 식당>을 개업한다.
<달팽이 식당>은 조금
독특하다.
정해진 메뉴도 없고, 받는 손님도 하루에
단 한 팀 뿐. 게다가 손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손님에게 맞는 요리를 내놓는 작고 작은 식당.
하지만, 그 곳에서 마치 기적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도망간 아르헨티나 부인을 그리워하는
구마씨도, 사별 후 상복만 입고 살던 할머니도, 서로 좋아하지만 연인으로 발전하지 못해 끙끙대던 모모양과 사토루군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린코가 내오는 따뜻한 음식들에 위로받고, 조금 더 따뜻해진 삶을 살게 된다.
소설은 약간의 헤프닝을 안고 차분하게
흘러간다.
린코는 여전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엄마와도, 엄마의 애인 네오콘과도 여전히 서먹하다.
약간의 크리스털 로제의 힘을 빌어 엄마가
아직도 고등학교 첫사랑을 잊지못한 순정파라는 것도, 아직 처녀라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된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엄마는 암에
걸렸고, 암을 진단받은 병원에서 고등학교 첫사랑인 슈이치 선배와 만나 뒤늦은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엄마의 죽음을 앞에 둔 린코는
엘메스(엄마의 애완용 돼지)로 요리를 해달라는 엄마의 부탁을 받고, 엘메스를 도축하여 정성스럽게 결혼식 파티상에 올린다.
린코는 여전히 그랬다.
엄마와의 앙금같은 감정이 사라져도, 엄마의
결혼식이 진행되도, 엄마가 죽는 그 극적인 순간에도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의 죽음 이후, 우연히
냉장고에서 엄마의 진심이 담긴 편지를 읽어내려간 린코는 살아있는 생명을 먹지 않는다. 마치 린코의 시간이 멈춘 듯 서서히
쳐져간다.
그런 린코를 향해 들비둘기 한 마리가
창문에 떨어져 죽는다.
린코는 그 들비둘기로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고, 잃었던 목소리를 찾는다.
다시
쓰는 이야기
<달팽이 식당>은 제목처럼
느릿느릿하게 흘러간다.
단조로운 일상같은 시간들이 활자를 통해
느릿느릿.
가슴 따뜻한 음식과 가슴 따뜻한 이들의
사연들이 모여, 마치 한 줄기 빛과 같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린코는, 달팽이 식당은 사람들에게,
매개체였다.
따뜻해질 수 있는 무언가가 따듯하게 빛을
낼 수 있게 하는 매개체.
다른 사람에게 따뜻함을 전해주던 린코는 그
따뜻함을 이어받아 서먹하던 주변 사람들과도 관계를 풀어나간다.
엄마의 애인인 네오콘과, 그리고 10년
동안 얼굴 한 번 맞대지 않고 연하장으로만 인사하던 엄마와.
* * *
요리에 관련 된 만화가, 드라마가,
소설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남기고, 무언가 꽉 찬 느낌을 주는 것은.
우리 안에 정의 된 요리가 따뜻함과 이어져
있기 떄문이 아닐까요.
엄마와 잔뜩 다투고, 심한 말로 서로의
가슴에 날카로운 바늘을 꽂아도.
같은 자리에 앉아, 하아-얀 김이 나오는
식사를 하다보면 어느새 꽁꽁 얼었던 마음이 녹아.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도 마는 그런
기억들처럼.
색다른 음식과, 뭔가 도키도키한 이야기들이
나열되어 있어서 읽는 동안 아, 그런 곳을 찾고 싶다, 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집 근처에는 아, 맛이 괜찮다, 하는
음식점 하면 급하게 먹고 나와야 할 것처럼 사람들이 복작복작하고.
좀 여유있게 앉아있을만 하다하면 생각보다
인공적인 맛이 많이나서 슬프고.
그래도 자주가던 북카페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찾으니 다른 음식점으로 바뀌어서 더 우울하고.
그래도, 왠지 읽고 있다보면 마치 내가
린코가 되서, 음식을 만들고, 내가 손님이 되서, 먹으면서 행복해지는 듯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오가와 이토씨 소설은 처음인데, 참 글을
예쁘게 쓰는 작가인 것 같아요.
일본어 원문으로도 읽고
싶네요.
* 아아, 석류 카레가
먹고싶습니다.
* 영화가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