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행복하라 - 법정 스님 열반 10주기 특별판, 샘터 50주년 지령 600호 기념판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종교를 가지지 않은 이에게 종교와 관련된 서적은 무겁게 다가온다. 유명 인사 중 한 분인 법정 스님 역시 내게는 낯선 타인으로, 「스스로 행복하라」라는 에세이집을 접하기 전까지 그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영향력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작가의 생각을 문장으로 옮긴 에세이에서 작가에 대해 모른다는 건, 어떤 글을 만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안과 흥분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양가적인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에세이는 크게 서문과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아직까지 무언가를 비우기보다는 끊임없이 열망하는 세대라 무소유를 다루는 1장 행복과 4장 나눔에선 쉬이 공감할 수 없었지만, 나와 가장 먼 2장 자연과 가장 가까운 3장 책은 꽤 속도감 있게 읽어 나갔다.


반복적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수행을 한 이의 글은 단지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풍경을 꿈꿀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어, 비슷한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내심 차오르는 부러움을 지게 만들 수는 없었다. 겨울 산의 적막을 새소리가 없기 때문이라 표현하며 새소리를 조화와 화음에 비유하거나(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이나, 옅은 이내를 통해 해와 달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석양의 시간을 다루는 방식(달 같은 해, 해 같은 달)이 마음에 남아,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3장 책은 저자가 깊은 마음을 주었던 책, 그리고 주변의 추천을 받아 읽었던 책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감상문이 이어졌는데, 익숙한 책과 주인공의 이름에 반가워하기도 하고, 읽어본 적 없는 책의 제목을 다시 한번 곱씹고는 했다. 현재 내가 생각하고 있는바와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던 이의 이름은 파블로 카살스로, 아래의 두 문단은 에세이에서 인용한 「첼리스트 카살스, 나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의 내용이다.


우리의 음악은 제한된 청중(여유 있고 유복한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간다고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은 연주회 입장권을 살 수가 없었다. 간신히 돈을 모은 소수의 사람들은 맨 꼭대기 층의 가장 싼 좌석에 앉았다. 나는, 그들이 호사스러운 정면의 일등석이나 로열 박스에 앉은 상류 계층의 사람들을 내려다볼 때 음악과는 전연 무관한 다른 생각에 잠길 것 같았다.


나는 먼저 한 인간입니다. 예술가는 그다음입니다. 인간으로서 나의 첫 번째 의무는 나와 같은 인간들의 안녕과 평화입니다. 음악은 언어와 정치와 국경을 초월하므로 나는 하느님이 내게 주신 이 방법으로 내 의무를 수행하고자 합니다. 세계 평화에 내가 기여하는 바는 미약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성스럽게 생각하는 이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습니다.


파블로 카살스, 책  「첼리스트 카살스, 나의 기쁨과 슬픔」


스스로를 예술가라 칭할 수는 없지만, 삶의 마지막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에세이집을 통해 좋은 책을 알게 되어 기쁘다. 소설은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를 통해 세상을 보게 만든다면, 에세이는 내가 살아가면서 놓칠 수 있는 것들을 바로잡아준다는 점에서 나와는 맞지 않다 여기는 이의 언어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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