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고발 - 착한 남자, 안전한 결혼, 나쁜 가부장제
사월날씨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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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언니는 현재 연애하고 있음을 밝혔지만, 자신은 결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때부터 현모양처를 꿈꿨던 언니의 발언은 어른들에게는 우스갯소리였고,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반대로 결혼한지 두 달도 되지 않아 이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던 언니는 지금 결혼 2년 차가 됐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결혼을 선택했고, 동시에 나를 비롯해 또 적지 않은 사람이 비혼을 선택했다. 비혼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바이섹슈얼이라는 내 정체성을 비추었을 때,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가부장 사회 안으로의 진입을 의미했고,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국내법으로 허용되지 않는 일이기에 가능한 선언이었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이에 대한 책을 읽고 미디어를 접하면서 내가 겪고 있는 불만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이야기했지만, 나와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선 가부장 제도 속의 결혼이라는 건 그저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며느리뿐만 아니라,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 속한 자녀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결혼에 대한 사고를 넓히고, 결혼을 옹호하거나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결혼 고발」을 읽었지만, 정작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내가 보거나 겪은 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제도 안에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는 공감하고 누군가는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 이 책을 접하기 전 막연히 그럼 결혼을 왜 해?라고 물었던 나의 무신경한 대답의 답을 에필로그를 통해 찾을 수 있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내가 잘하면 괜찮을 거라고, 무턱대고 낙관할 뿐 굳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기혼 여성이 겪는 온갖 놀랍고 기막힌 사례들을 접하면서도 내게는 해당하지 않으리라 여겼다. 나는 그런 남편을 고르지도, 그런 시가를 만나지ㅐ도 않을 거라고 막연히 장담했다. 그러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가부장제를 맞닥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가부장제는 애초에 며느리에게 예비해놓은 고통이었다는 것을.

198p


나는 그동안 비혼을 택한 나에게는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며, 집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하소연을 할 뿐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남자친구나 혹은 남편에 대한 불만을 토하는 사람에게 공감보다는 오히려 그러니 왜 했어,라는 태도를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만나게 된 「결혼 고발」은 단순히 가부장 제도 아래에 있는 결혼을 고발하는 데 그치고, 비혼주의를 더욱 탄탄하게 해주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비혼을 선택한 사람도, 결혼을 하고 가부장제의 불만과 불편을 토로하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소통의 창구가 되어 줄 수 있으며, 미디어와 가부장제를 통해 편함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불어넣은 환상과 낭만 속에서 조금 더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동시에 또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번 기회에 친척 언니의 비혼 선언을 우습게 여기며 넘겼던 친가 거실에도 이 책을 한 권 두고 올 생각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내가 잘하면 괜찮을 거라고, 무턱대고 낙관할 뿐 굳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기혼 여성이 겪는 온갖 놀랍고 기막힌 사례들을 접하면서도 내게는 해당하지 않으리라 여겼다. 나는 그런 남편을 고르지도, 그런 시가를 만나지ㅐ도 않을 거라고 막연히 장담했다. 그러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가부장제를 맞닥뜨리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가부장제는 애초에 며느리에게 예비해놓은 고통이었다는 것을.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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