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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 - 마음주치의 정혜신의 나를 응원하는 심리처방전
정혜신.이명수 지음, 전용성 그림 / 해냄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홀가분' 입안에서 굴러가는 발음이 참 기분 좋다. 마음주치의 정혜승의 나를 응원하는 심리처방전, 이라는 부제도 기대감을 부풀렸다. 아마도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몇가지 이야기들이 마음을 건들지만 사실 기대만큼의 홀가분은 경험하지 못해 조금 아쉬운 마음이다. 그러고보니 요즘 부쩍 심리치료나 위로에 대한 에세이가 많아진 느낌이다.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절대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마음은 그 풍요로움을 따라가지 못하니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빈곤을 혼자서는 제대로 감당해내기 어려운 탓일거다. 그렇게 나도 책에서 얻는 위로가 더 없이 살갑고 고맙다.

이야기 내내 저자 정혜승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자신을 잘 알고, 보살펴 사랑해야 진정한 '홀가분'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p.49 살면서 무엇보다 먼저 시정되어야 할 것은, 자기를 잘 보듬지 못하고 귀히 여기지 못 하는, 자기애와 관련된 나태함이라고 저는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자신을 향한 사랑은 자못 이기주의, 로 와전되어 인식될 수도 있으나 자신을 진정 사랑하고 귀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타인의 가치도 존중할 수 있음이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흩어져 있는 삶의 시선을 우선은 나에게도 거두어 와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p.66 마음의 영역에서도 이런 순환의 법칙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옥의 광 같은 허드레 공간이 있어야 인간의 마음은 정상적으로 순환됩니다. 나 자신이 세운 날카로운 기준에 베여 여기저기 상처로 곪을대로 곪아버린 안타까운 내 마음을 살짝 들여다 본다. 미안하고, 안쓰럽다. p.35자기 마음을 바라볼 때도 그러면 됩니다. 때로 본인이 생각해도 괜한 짓이라 느껴지는 경우가 있겠지요. 그러면 어떤가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기다리면 되지요. 타인에게도 그렇지만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일은 쉽지 않다 

모르는 것은 아니다. 누누히 들어온 자신을 사랑하라, 자신을 믿어라,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이제 신선함을 잃고 식상하기까지 하다. 수없이 들어도 변하지 못하면 그뿐이고, <홀가분>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명쾌한 심리처방전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전용성 화백의 무심한 듯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그림들이 어떤 페이지에서는 글자보다 더 많은 위로를 건넨다. 기교가 뛰어나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삶을 충분히 살아내고 누린 사람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깊이가 담겨 있다. 보태거나 과하게 꾸미지 않아도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듯이. p.165 나희덕 시인의 절창(絶唱)처럼, '산다는 일은 더 놓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p.229 어떤 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 편안해집니다. 예전에 읽었던 공지영 님의 책에서 그런 구절을 보았다. 이제껏 불행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과거의 불행때문에 나의 오늘이 불행해지는 것은 내 탓이라고 말한다. 그 불행의 원인이 어디에서 온 것이든 그 불행에 발목 잡혀 모든 날들을 불행의 먹물로 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꾸짖는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바라보고 있을까. 불행까지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아량이 생기려면 삶을 얼마나 더 살아내야 하는걸까. 어떠한 값진 이야기든 내것으로 삼지 않으면 소용없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고 - 요즘, 내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생각만 있는대로 가지를 뻗치고 아무것도 행동에 옮기지 못하니 이런 나를 바라봄이 답답하기 떄문일거다 -  이 책을 자극제 삼아 조금 더디더라도 미약할지라도 변화의 첫걸음으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p.223

울건 웃건 아기가 존재 그 자체로 빛나는 가치가 있는 것처럼

흐리든 화창하든 나에겐 '나'그.자.체.로.가 그대로 쓸. 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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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할 것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
신현림 지음 / 흐름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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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개인적으로 아픈 가슴을 콕콕 찍어내어 눈물을 떨어트리는 이런 책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글이 어떠한 찬사를 받는 특히나 '엄마'라는 존재를 이야기하는 책에 나는 무턱대고 커다란 반감을 들어내는데 아마도 그것은 사춘기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탓이 아닐까 해요.

고등학교 입학 당시 이혼을 하신 부모님 때문에 나는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습니다. 겨우 중학생이 된 동생에게도 엄한 누나였고, 모든 일을 혼자서 척척 해내는 기특한 큰딸이어야 했습니다. 혹시라도 엄마 없는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을까 반듯한 틀안에 나를 가둬 두었습니다. 그렇게 십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 시간에 누려야 했을 상실감과 슬픔을 온전히 겪어내지 못해서 제대로 어른이 되지 못했습니다. 웃고 싶을 때 웃고, 눈물이 나는 날엔 실컷 울어 두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그때는 몰랐지요.

내 잘못이 아니였음에도 숨기고 숨겼던 그 상처는 안에서 곪을대로 곪아 이제는 아픈 줄도 모르는 그대로 내가 되어서 나는 한살배기도 표현하는 싫고, 좋음에도 서투른 어른 아이로 스물아홉이 되어 버렸습니다. 십년이 지나도 아직 '엄마'라는 단어가 시큰거리는 것을 보면 나에겐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가 봅니다. 큰 호흡을 몇 번이나 몰아쉬며 겨우 겨우 읽어냈습니다. 내게는 조금 버거운 시간이라서 이런 책을 선정해 준 알라딘, 을 살짝 원망도 해봅니다.

p. 226
'미안해'라는 말을 굴욕으로 생각지 않으며, 미안한 일이 생겼을 때 반드시 인사할 것. 무엇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고맙다'는 말. 사랑의 꿀이 가득묻은 이 말을 입 속에 맴돌게 할 것. 그만큼 감사하는 마음은 관계를 단단하게 만든다. 관계의 성장과 성공을 위한 필수 비타민이다.

책에 가득 베인 신현림 작가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사실 나는 온전히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나도 그녀처럼 마음껏 엄마라는 존재를 그리워하고 싶지만 내겐 그리움도 사치입니다. 백마디 말보다 본인의 생활에서 부지런하며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희생했고 불의에 굴하지 않으며 어려운 처치의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던, 딸의 손을 잡고 서점에 가던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그리움의 대상이 될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p.207
"우연히 엄마 젊을 때 사진을 봤는데, 세상에 롱치마에 하이힐 샌들을 신고 있는 거예요. '이게 우리 엄마 맞아?' 시퓨었어요. 엄마도 유행하는 좋은 옷만 입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참 신선했어요. 그땐 참 고우셨는데, 지금은 할머니나 입는 몸배 같은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오천 원짜리 시장표 가방을 매고 다니지를 않나, 마음이 짠했어요."

그래도 나이가 한살 한살 먹다보니 '엄마' 이전에 한 여자로서의 삶을 조금은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행복하기를 욕심 냈던 여자로서의 삶을 나의 '엄마'라고 해서 비난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마음은 온전히 해내지 못한 이해를 머리로 서툴게 되뇌어 새깁니다.

얼마 전 신형림님의 <딸아, 외로울 때는시를 읽으렴>이라는 시집을 읽었습니다. 주옥같은 시들이 가득 담긴 그 책에서도 말합니다. 누구나 다 외로운 것이라고, 삶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순간도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모든 시간들이 찬란히 빛날 우리의 삶에 영양분 가득한 밑거름이 되어 줄거라고 말이죠. 딸이 엄마에게, 그리고 엄마가 되어 딸에게 그 깊고 진득한 관계 맺음에서 우리는 살아감에 가득한 힘을 얻습니다. 내가 당신께 해 줄 것은 아마도 당신 그대로의 삶을 축복하는 일, 그것뿐일 것 같습니다.  

 

p.92

나무와 풀은 비와 바람으로, 햇빛으로 생명을 이어가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넘나든다.  

사람살이도 그렇게 말없이 넘나들며 마음을 전하는 것일 게다.

우리의 생명은 늘 햇빛 찬란한 나날이 아니라

쓰나미와 지진 같은 슬픔과 아픔 속에서 흔들리며 사는 것임을  

엄마가 키우던 꽃과 나무에게서 나는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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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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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부끄럽지만 나는 여태껏 대통령 선거를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 하나도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날들에 국가나 정치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고 핑계해 봅니다. 전 노무현 대통령 서거, 나는 그날에도 진실은 모르겠습니다. 손녀딸과 동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모습을 보니 콧날이 시큰대서 하늘을 봅니다. 누구의 자잘못을 떠나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회가 괜찮은걸까요?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눈 감고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물론 나 한사람 고쳐먹은 마음이야 티도 나지 않겠지만 그렇게 모인 크고 작은 마음들이 사회를 이루는 거겠지 하구요.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25인의 인터뷰이와 김제동과의 편안하고 즐거운, 그러나 이야기를 잃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한동안 맘을 머물던 정호승님의 <수선화에게>라는 시를 김제동님도 좋아하셨다니 괜스레 반가움이 가득합니다.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p.224

● 그 속에서 갈등이 일어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떨 땐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느껴지다가도 어떨 땐 그런 믿음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느껴지더라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시대를 열심히 살아야죠.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리면 안 돼요. 믿음을 버리면 지구가 사라질껄요? 전 70년대에 20대를 살았잖아요. 그때 어둠 때문에 완전히 호떡처럼 눌려서 살았다고 해야 할까.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면 어둠이 존재해요. 먼 역사를 봐도. 우리 현대사를 봐도 다 어둠의 순간이 있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 왜 어둠이 있느냐면 밝음을 위해서죠. 별을 지향하지만 별은 어둠이 존재해야 빛나요. 한 신부님이 하신 말씀인데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증오도 필요하다'는 거죠. 아마 2020년, 2030년을 사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밝아진 시대를 살지 않을까요?

<정호승 편>

밝음을 위해 존재한다는 어둠을, 열심히 살아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저처럼 이렇게 아둔한 사람에게도 고개 돌려 외면하던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고, 더 이상 눈을 감고 모른 척 해서는 안된다고 말이죠. 문득 아니 더욱 더 분명하게 김제동님이 부러워집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삶과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은 정말 축복인 것 같습니다. 혹여 책에 실리지 않은 더 진득한 이야기가 있지는 않을까, 억측하며 삶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터뷰이들의 이야기에 빠져 듭니다. 

p.103

● 사실 나는 그게 아닌데 사람들이 나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 말예요, 그게 나를 옥죌 때가 있어요. 정말 싫어요.

그게 답답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 것, 그게 다 내가 한 일이고 나에게서 나온 거야. 내가 한 행동에 대해 그들이 판단하는 건 그들의 자유야. 남들의 생각까지 내 의도대로 맞추겠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권력욕이지. 내가 주장한 건 핑크였는데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검정이 될 때가 있지. 그 간극을 줄이겠다고 나서는 것은 잔류형 인간이야.

<고현정 편>

얼마 전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비쳐지던 타인의 시선 속에 나 때문에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배려'라는 이름을 붙인 그 행동이 '무관심'으로 개명[改名]하여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경험하면서 사실은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할 지 몰라 안절부절했었습니다. 새침떼기일 줄 알았던 고현정님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조금 수월해 짐을 느낍니다.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은 온전의 그의 몫으로 내어주기로 했습니다.

요즘 부쩍 제게 되묻습니다.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뭐지?' '재미있니?'라고. 사실은 요즘 나의 삶이 풍랑을 만난 돛단배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직업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은,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몫이니까,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을거야.' 라고 멈출 줄 모르고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 봅니다. p.65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산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박원순 편> 하지만, 나는 아직 용기가 부족합니다. 

p.59
● 결국 산을 좋아한 것이 바탕이 된 거네요. 10억 원 줄 테니까 에베레스트 정상 올라갔다 오라고 해서 선뜻 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목숨 걸어야 하는 일인데.

돈 밝히고, 이런 거 저런 거 따지다보면 아무것도 안 됐겠죠. 초심을 잃지 않고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는 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어요.

<엄홍길 편> 

p.170

은퇴 경기는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 9회에서 땅볼을 치고도 끝까지 1루로 전력 질주하던 형의 모습. 그건 형의 야구인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 모습이었다. 또 그건 양준혁을 기억하는 야구팬들에겐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쉽움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p.178

후배들한테 잔소리를 마이 하는데 결국은 본인이 느껴야지. 마지막 공 하나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땅볼로 날아간다고 뛰다 말고 돌아오는 거, 나는 인정 안해. 안타가 아니더라도 전력을 다하면 송구 에러가 나고 그게 안타를 만들거든. 그게 진정한 프로지. 내가 나를 돕고 최선을 다해야 남도 나를 돕고 기회가 생기는 이치지. 야구뿐 아니라 인생이 그렇다 아이가.

<양준혁 편> 
 

자신의 삶을 쓰는 사람들의 유쾌하나 가볍지 않게, 무겁지만 어둡지 않게 한 권에 가득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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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 음악과 함께 떠나는 유럽 문화 여행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정태남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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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큰 호흡을 몰아 쉽니다. 빨리 읽고 서평을 써야한다는 부담감과 어그러진 컨디션, 조각 시간을 채워가며 넘긴 책장은 늘 동경의 대상이였던 유렵의 아름다운 풍경과 클래식 음악을 무딘 감흥으로 발목을 잡았습니다. 책읽기는 늘 즐거워야한다고 고집하는 내게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는 음악사를 공부하는 것처럼 사실은 조금 버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저자 정태남님의 깊은 학식(學識)에 감탄을 거듭했습니다.

저자 정태남은 실로 감탄을 자아내는 분이셨습니다. 중앙고, 서울대를 졸업한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도이, 로마대학에서 건축부문 학위(dottore in architettura)를 받았고, 현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의 파트너(해외지사장)로 일하며, 유럽에 대한 동경과 열망으로 30년 이상 이탈리아 로마에서 지내오고 있으며 2007년에는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건축 분야 외에도 역사, 음악, 미술, 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그는 80년대 중반 해외필자로서 음악전문 월간지 <음악동아>에 칼럼을 5년 이상 연재했으며, 스페인에서 클래식기타 독주회를 가졌고, 로마에서는 독일, 프랑스, 스칸디나비아 합창단에서 활동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이 주관한 코소보 난민을 위한 자선 오페라 공연을 기획·제작하고 연출에 관여했고, 세계식량기구FAO 본부에는 그의 미술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기도 합니다. (알라딘 제공) <음악동악> 칼럼을 연재하고, 클래식기타 독주회를 열만큼 클래식에 대한 조예(造詣)가 깊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유렵의 구석구석 명소와 더불어 조금 더 가까이 예술가들의 삶과 음악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p.236 고속열차가 서서히 역을 떠나기 시작할 때 나는 라벨의 <볼레로>를 듣기 위해 MP3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귓속에는 드럼 소리와 현악기의 이치카토 소리가 아주 약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아라비아 마술사의 피리소리 같은 플루트 선율이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는 드럼의 리듬 위에 올라탄다. 내가 탄 TGV는 마치 <볼레로>의 리듬에 맞추려는 듯 천천히 달린다. 나도 그를 따라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합니다. 클래식이라고 하면 사실 고상하고 점잖아서 내 몫이 아닌듯 조금은 거북스러웠던 것이 사실인데, 생각보다 귀에 익은 음악이 많아 콧노래를 흥얼이기도 합니다. 단조롭고 밋밋하던 활자가 생동감을 찾아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읽는 동안 내내 박성일님의 <노르딕라운지>가 떠오릅니다. QR코드를 책에 삽입해 책읽기를 도와주었던 그 마음을 되짚어 감사해봅니다. 하나하나 음악을 찾으며 듣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언제나 가장 가고 싶은 나라로 스페인을 꼽아던 내게, 그 이유를 한가지 더 보태주었습니다. '지중해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환상의 섬 마요르카에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님의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p. 229 팔마 데 마요르카의 해변에는 '안익태 거리'가 있다. 지중해의 파도 소리가 들리고 남국의 꽃향기가 그윽한 이곳에는 호텔과 조용한 주택지가 몰려 있다. 여기에는 스페인어 거리 표지판 위에 한글로 된 화강석의 거리표지판도 있다. 이에 대해 레오노르는 "일신그룹의 김영호 회장님이 만들어 이곳까지 손수 들고 왔습니다. 마요르카에서 다른 나라 문자로 표시된 도로 명은 이것이 최초이며 또 유일합니다." 하면서 흡족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애국가를 불러 본 것이 언제였더라, 하고 되짚어 보니 정말 까마득합니다.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고, 음악적으로 뛰어나지 않다고 비판하며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일본의 작곡가 단 이쿠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가는 한국의 애국가'라고 말했으며, 2002년 월드컵 스페인의 아나운서도 우리 나라의 국가가 멋지다고 감탄했습니다. 물론 몇사람의 생각으로 전체를 논하는 것에는 일반화 오류의 위험이 커다랗지만 이렇게 타국인의 부러움을 사는 애국가에 우리는 아니, 나는 얼만큼의 애정을 갖고 있었을까요? 부끄러움이 저만치 앞서 버립니다.  

저자는 머릿말에서 " 이 책은 여행에 관한 것이지만 여행정보 서적은 아니며, 또 음악에 관한 것이지만 음악해설서나 명반해설서는 아닙니다. 또 내가 건축가라고 해서 이 책에서 음악과 건축과의 관계에 대한 학술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이 책에서 나는 오로지 유럽 여행을 꿈꾸고 또 음악을 가까이하는 독자들과 함께 여행과 음악이 주는 삶의 기쁨과 앎의 기쁨을 나누려고 할 뿐입니다." 라고 겸손히 말합니다. 하지만 M. 레제리 전 주한 이탈리아 대사가 " 사실 그는 유럽의 다양한 문화와 예술과 역사를 깊게 꿰뚫고 있는데다가 유럽의 웬만한 언어는 모두 구사하니, 어떤 의미에서 유럽인보다 훨씬 더 유럽인이다."라고 말할만큼 반 유럽인인 그가 30년 동안 유럽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를 담아냈으니 두고 두고 보아도 좋을 책임에 분명합니다.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내가 여행할 장소에 어떤 역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어떤 예술가가 살아 숨쉬었었는지, 어떤 음악을 배경이 되었는지 기억해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반짝 반짝 작은 별을 노래하던 쉰부르 궁전의 정원, 루트비히 2세의 좀 유별난 취미 덕분에 황금알을 낳아 주는 백조의 성, 템즈 강 남쪽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와 북족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잇는 밀레니엄 브리지, 수압을 이용하여 연주되기도 했다는 오르간 분수가 있는 빌라 데스테, 성모 마리아 교회의 오르간, 스키보니아 해안의 곤돌라까지 발자국을 찍고 싶은 장소가 손에 다 꼽기 어려울 만큼 많습니다. 하지만 p. 101 아는 것이 힘이 될 때도 많지만 모르는 게 약이 될 때도 많으니 말이다. 라던 작가의 말을 빌어 나는 책을 덮습니다. 마음이 여유로와 무엇에도 즐거운 날에 다시 한번 찬찬히 걸음을 옮겨봐야겠습니다. 당분간은 다시 꺼내들지 않을 힘겨운 여정이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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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이해인 산문집
이해인 지음, 황규백 그림 / 샘터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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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깊어 침대를 창가 밑으로 옮겼습니다. 요 며칠은 비까지 내려주어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책읽기가 더욱 달콤합니다. 가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는 책이 있는데 이해인 수녀님의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가 그러했습니다. 여기저기 인용된 글은 수없이 보았으나 이렇게 제대로 이해인 수녀님의 글은 접한 것은 처음인데 생각했던 마음 그대로 글은 소박하고 정갈합니다. p.23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더 잘 보이듯이 누군가 내 곁을 떠나고 나면 그 사람의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꽃이 지는 통증을 지나고 나야 열매를 맺듯이 소중함을 간과하기 쉬운 본질적인 것들에 대하여 따뜻한 음성으로 전해주는 이야기를 나를 몇번이나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그자리를 맴돌며 읽고 또 읽어봅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3년간의 암투병의 고통과 잇따른 지인들과 이별으로의 슬픔을 통하여 삶의 한가운데에서 깨닫게 되는 삶의 의미, 기쁨과 감사를 일상의 언어로 담담히 고백합니다. p.129 "자신의 삶이 어떻게 꽃피었는지, 또 꽃필지를 알기는 쉽지 않다. 식물의 생명이 물을 요구하듯이 우리에게는 눈물이 요구된다. 흘린 눈물의 양이 사람을 승화시킨다." 그 마음의 맑음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니, 나도 그 마음을 닮아야겠다는 무리한 욕심도 내어봅니다. 그리고 나는 유독 시가 어려워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이해인 수녀님을 통해 시를 만나니 한결 가볍고 즐거움이 동합니다.

p. 60 
커피
설탕을 넣고
크림을 넣었는데
맛이 싱겁군요.

아-
그대 생각을 빠트렸군요.
 - 윤보영. 커피

수녀님이 가장 좋아한다는 윤동주님의 서시도 다시 읽어봅니다. 어린 기억 교과서 안의 지문으로 읽었던 밋밋했던 글자에 깊은 호흡이 담아집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 싶은 선한 마음은 어디에서 얻어지는 것일까요. 아마도 하늘에서 미리 점을 찍어두지 않을까, 하고 쿡 웃어봅니다. p. 221 1998년 9월 17일 목 행여라도 편견을 갖고 사람들을 대하지 않도록, 무심결에라도 무시하는 말이나 몸짓으로 상처를 주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누구라도 단죄하거나 함부로 비난하는 독선을 범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저입니다. 저는 약해서 두려우니까요. 자주 실수하니까요. 콧날이 시큰하고, 글씨가 흐릿해집니다. 타고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수녀님의 모습에서 발견한 약함은 이만큼의 깨달음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도와 묵상이, 수행과 노력이 필요했을지 하고 짐작하며 감히 그 마음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장은 그리움으로 꽃을 피운 추모일기인데, 나도 그만 마음이 멍울멍울 하여 잠시 쉬어 갑니다. 피천득 선생님, 김수환 추기경님, 김점선 화가님, 장영희 선생님, 김형모 선생님, 법정 스님, 이태석 신부님, 박완서 선생님 많은 이들의 마음에 별로 새겨진 이름에 그리움이 깊어 집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그리운 사람이었을까요? p.60 가까운 이들과 화해하기 힘들다고 고백하는 이들에겐 '백년 살 것 아닌데 한 사람 따뜻하게 하기 어찌 이리 힘드오."라고 표현한 김초혜 시인의 <사랑초서>의 일절을 들려주면 다들 좋아한다. 늘 '시간이 너무 빨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내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정인듯 살아갑니다. 그리 긴 세월도 아니었는데 등을 돌리고 걸어 온 사람들이 하나, 둘 떠오르며 부끄러움에 한숨이 깊어집니다. p.74 마음에 드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마음에 안 들고, 성격도 안 맞고, 하는 일마다 못마땅하게 생각되는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서 그것이 사랑으로 변할 수 있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승리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아직 승리할 그릇이 못되니까 조금 더 기다려야 겠습니다. 억지로 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니까요.

시간이 마음처럼 나지 않아서 토막토막 읽는 시간 내내 다음 장을 읽고 싶어 얼마나 조바심을 냈는지, 그래도 읽는 시간 동안 마음이 따뜻했더랬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품고 사시는 이해인 수녀님 닮은 고운 글씨가 너무 많아 읽는 내내 메모를 하며 감탄도 하고 찔림도 얻습니다.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 부디 건강하세요. 늘 수녀님의 삶이 좋아하시는 봄날 같기를 멀리서 기도합니다. 
 

+) 밑줄the 

p.24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못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p.113
행복의 얼굴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나에게 고통이 없다는 뜻은
정말 아닙니다

p.128
누가 나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한다 해서 들뜬 마음을 갖지 않고 담담해지기……. 누가 나에게 근거 없는 험담이나 비난을 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말고 담담해지기…….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p.131
"성공하려면 반복된 생활을 계속하면 된다. 돈에 대한 욕심, 인기에 대한 욕심, 사람에 대한 욕심 다 버리고 '생활의 달인'처럼 살아가면 그게 성공인 거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근육이 생기는 것처럼 똑같은 패턴으로 생활하며 어느 순간 '내가 발전했구나'라는 걸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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