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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 음악과 함께 떠나는 유럽 문화 여행 ㅣ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정태남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휴우~"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큰 호흡을 몰아 쉽니다. 빨리 읽고 서평을 써야한다는 부담감과 어그러진 컨디션, 조각 시간을 채워가며 넘긴 책장은 늘 동경의 대상이였던 유렵의 아름다운 풍경과 클래식 음악을 무딘 감흥으로 발목을 잡았습니다. 책읽기는 늘 즐거워야한다고 고집하는 내게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는 음악사를 공부하는 것처럼 사실은 조금 버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저자 정태남님의 깊은 학식(學識)에 감탄을 거듭했습니다.
저자 정태남은 실로 감탄을 자아내는 분이셨습니다. 중앙고, 서울대를 졸업한 후 이탈리아 정부장학생으로 도이, 로마대학에서 건축부문 학위(dottore in architettura)를 받았고, 현재 이탈리아 건축사이며 범건축의 파트너(해외지사장)로 일하며, 유럽에 대한 동경과 열망으로 30년 이상 이탈리아 로마에서 지내오고 있으며 2007년에는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건축 분야 외에도 역사, 음악, 미술, 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그는 80년대 중반 해외필자로서 음악전문 월간지 <음악동아>에 칼럼을 5년 이상 연재했으며, 스페인에서 클래식기타 독주회를 가졌고, 로마에서는 독일, 프랑스, 스칸디나비아 합창단에서 활동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이 주관한 코소보 난민을 위한 자선 오페라 공연을 기획·제작하고 연출에 관여했고, 세계식량기구FAO 본부에는 그의 미술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기도 합니다. (알라딘 제공) <음악동악> 칼럼을 연재하고, 클래식기타 독주회를 열만큼 클래식에 대한 조예(造詣)가 깊은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유렵의 구석구석 명소와 더불어 조금 더 가까이 예술가들의 삶과 음악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p.236 고속열차가 서서히 역을 떠나기 시작할 때 나는 라벨의 <볼레로>를 듣기 위해 MP3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귓속에는 드럼 소리와 현악기의 이치카토 소리가 아주 약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아라비아 마술사의 피리소리 같은 플루트 선율이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는 드럼의 리듬 위에 올라탄다. 내가 탄 TGV는 마치 <볼레로>의 리듬에 맞추려는 듯 천천히 달린다. 나도 그를 따라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합니다. 클래식이라고 하면 사실 고상하고 점잖아서 내 몫이 아닌듯 조금은 거북스러웠던 것이 사실인데, 생각보다 귀에 익은 음악이 많아 콧노래를 흥얼이기도 합니다. 단조롭고 밋밋하던 활자가 생동감을 찾아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읽는 동안 내내 박성일님의 <노르딕라운지>가 떠오릅니다. QR코드를 책에 삽입해 책읽기를 도와주었던 그 마음을 되짚어 감사해봅니다. 하나하나 음악을 찾으며 듣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언제나 가장 가고 싶은 나라로 스페인을 꼽아던 내게, 그 이유를 한가지 더 보태주었습니다. '지중해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환상의 섬 마요르카에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님의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p. 229 팔마 데 마요르카의 해변에는 '안익태 거리'가 있다. 지중해의 파도 소리가 들리고 남국의 꽃향기가 그윽한 이곳에는 호텔과 조용한 주택지가 몰려 있다. 여기에는 스페인어 거리 표지판 위에 한글로 된 화강석의 거리표지판도 있다. 이에 대해 레오노르는 "일신그룹의 김영호 회장님이 만들어 이곳까지 손수 들고 왔습니다. 마요르카에서 다른 나라 문자로 표시된 도로 명은 이것이 최초이며 또 유일합니다." 하면서 흡족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애국가를 불러 본 것이 언제였더라, 하고 되짚어 보니 정말 까마득합니다.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고, 음악적으로 뛰어나지 않다고 비판하며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일본의 작곡가 단 이쿠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가는 한국의 애국가'라고 말했으며, 2002년 월드컵 스페인의 아나운서도 우리 나라의 국가가 멋지다고 감탄했습니다. 물론 몇사람의 생각으로 전체를 논하는 것에는 일반화 오류의 위험이 커다랗지만 이렇게 타국인의 부러움을 사는 애국가에 우리는 아니, 나는 얼만큼의 애정을 갖고 있었을까요? 부끄러움이 저만치 앞서 버립니다.
저자는 머릿말에서 " 이 책은 여행에 관한 것이지만 여행정보 서적은 아니며, 또 음악에 관한 것이지만 음악해설서나 명반해설서는 아닙니다. 또 내가 건축가라고 해서 이 책에서 음악과 건축과의 관계에 대한 학술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이 책에서 나는 오로지 유럽 여행을 꿈꾸고 또 음악을 가까이하는 독자들과 함께 여행과 음악이 주는 삶의 기쁨과 앎의 기쁨을 나누려고 할 뿐입니다." 라고 겸손히 말합니다. 하지만 M. 레제리 전 주한 이탈리아 대사가 " 사실 그는 유럽의 다양한 문화와 예술과 역사를 깊게 꿰뚫고 있는데다가 유럽의 웬만한 언어는 모두 구사하니, 어떤 의미에서 유럽인보다 훨씬 더 유럽인이다."라고 말할만큼 반 유럽인인 그가 30년 동안 유럽에서 보고 느낀 이야기를 담아냈으니 두고 두고 보아도 좋을 책임에 분명합니다.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내가 여행할 장소에 어떤 역사가 기록되어 있으며 어떤 예술가가 살아 숨쉬었었는지, 어떤 음악을 배경이 되었는지 기억해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반짝 반짝 작은 별을 노래하던 쉰부르 궁전의 정원, 루트비히 2세의 좀 유별난 취미 덕분에 황금알을 낳아 주는 백조의 성, 템즈 강 남쪽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와 북족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잇는 밀레니엄 브리지, 수압을 이용하여 연주되기도 했다는 오르간 분수가 있는 빌라 데스테, 성모 마리아 교회의 오르간, 스키보니아 해안의 곤돌라까지 발자국을 찍고 싶은 장소가 손에 다 꼽기 어려울 만큼 많습니다. 하지만 p. 101 아는 것이 힘이 될 때도 많지만 모르는 게 약이 될 때도 많으니 말이다. 라던 작가의 말을 빌어 나는 책을 덮습니다. 마음이 여유로와 무엇에도 즐거운 날에 다시 한번 찬찬히 걸음을 옮겨봐야겠습니다. 당분간은 다시 꺼내들지 않을 힘겨운 여정이였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