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 시대의 지성, 청춘의 멘토 박경철의 독설충고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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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은 가고 겨울이 왔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지난 가을 불안과 안일함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때만큼은 책을 읽는 것이 시간을 허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다시 책을 읽기로 했고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그동안 너무 법칙과 가설에 시달리고 필요 이상으로 민감했다. 지금도 역시 그러고 있지만, 이전보다 덜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우선 저자 박경철에 대해 좋지 않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의사이지만 주식 투자와 재테크에 관련된 서적을 다수 썼고 그 책은 여전히 주식 투자자들과 재테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다. 물론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별 다른 불만이 없지만, 그러한 테마는 근 몇 년 동안 국내외 경제 위기와 가계부채가 극에 달했던 시대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잘못된 소비와 투자를 불러 일으키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가 경제학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사실 일반 경제론이 아닌, 투자나 재테크의 비법을 알려주는 것은, 일부 독자들로 하여금 헛된 상상을 하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요즘은 그는 청년들의 멘토로서 활약하고 있다. '자수성가'한 의사이자 경제 전문가, 게다가 뛰어난 언변으로 많은 청년들이 그의 강연에 참석하여 도전을 받고 비전을 발견한다. 이미 안철수 대선 후보와 전국적으로 여러번 청춘특강을 함께 했으니, 그가 청년들의 멘토로서 활약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청년들의 멘토"라고 불리는 명사들이 말하는 담론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에서 비롯된 소위 "부르주아"적 담론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열심히 외치지만 사회 분위기와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고, 청년들의 멘토라지만 대다수의 청년들은 지금 시대에서 자신들의 노력에 대비해 얻어지는 성과들은 멘토들이 이루어 낸 성과에 비해 큰 차이가 있다. 결국 "청년들의 멘토"라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시대의 청년들이 만들어 낸 선망의 대상들이자 허상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저자의 경험적, 지적 수준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이 책을 읽기가 망설여졌었고, 큰 흥미는 없었던 터라 그냥 두려 했으나, 저자에 대한 나의 이런 시선들을 검증받고자 읽게 되었다.  

 

 

사회(타인)에 대한 나의 의존을 극복하고 홀로 서려는 자아는 초월이지만, 무조건적으로 사회를 부정하고 도전하는 것은 독선이다.  <166p>

 

  사실 '이상 사회'에 대한 열망은 청년들만 갖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괴리와 불만,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 열망한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은 청년들이 아니라, 기성세대 즉 사회의 지도층들이다. 청년들이 아무리 변화를 바라고 원해도, 사회는 현재 기득권을 가진 각 분야의 지도층들이 사회 분위기와 구조를 형성한다. 만약 그 분위기와 구조가 청년들을 비롯한 다수 시민들에게 참을 수 없는 불편과 불만을 일으킨다면, 장기간 촛불을 들거나 파업 투쟁을 해서라도 자신들의 불편과 불만을 해소하거나 보상받고 싶은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그러한 동기로 인해 태동하고 발전했다      

 

  무조건적으로 사회를 부정하고 도전할 수는 없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우리들은 'in the world'에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나는 'the world'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초월적 자아를 가지고 있다면, 'the world'에 우리를 가둘 수 없다. 초월적 자아라면 사실상 이 세계는 'one of the world'이고 'the world'를 위해, 그리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청년들을을 포함한 그러한 세계를 바라는 누구든지, 이 사회가 자신들에게 주는 불만과 불편에 대해 고민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침노할 수 밖에 없다.

 

돌아보니 그랬다. 청춘은 특권이다. 실패는 경험이 되고 기회는 늘 손에 닿는 거리에 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청년의 도전은 미숙하기 쉽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어떤 좌충우돌도 용인된다는 말이 아니다. 치열하게 뜻을 세우고 뜨거운 열정으로 내달리다가 자신의 노력이 자신을 감동시키는 순간, 일거에 함성을 지르며 벼락처럼 쪼개는 것이 청년의 도전이다. 행운의 여신은 바로 그런 도전에만 깃드는 까다로운 수호신이다.  <173p>

 

  이 책의 장점은 저자가 말하는 '청춘론' 이다. 나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젊다는 것은 특권이고 실패는 쓰리지만 극복할 수 있다면 인생의 보약이다. 처음부터 자신의 인생이 성공의 항로에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우리가 그러한 사람들을 소위 상위 10%라고 묶어 둔다면, 90%는 거의 비슷하게 인생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겉모습과 생활 환경만이 다를 뿐이다.

 

  1000원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지금 내 손에 1000원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가능성이 숨겨져 있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하잖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시대에 1000원으로는 일반 버스도 못 탄다. 하지만 1000원을 10000원으로 불리는 사람들도 있고, 1000원 2000원으로, 1000원 1010원으로 불리는 사람도 있다. 좀 더 극단적으로 1000원을 수십억으로 불리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러한 예들에는 그 반대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단순한 진리를 알 수 있다. 우리 손에 돈이 얼마가 있든지 간에 그것을 불릴려고 생각한다면, 불릴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소비하려 한다면 소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모든 책임은 그 돈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이 가지고 있을 뿐이다. 지금 당신이 청춘이라면 좀 더 불리기 용이할 수 있다. 그게 특권이다. 그것이 돈이든, 재능이든, 무엇이든.      

 

청년의 공부는 늘 그렇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기초적인 학문과 사회의 기본질서는 낮은 단계의 기초지식을 형성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외적 환경에 대응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질적인 상황을 만나면 불편한데 이는 습관처럼 해오던 태도로는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새로운 대응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유사한 다른 상황에서 이때의 고민을 다시 응용함으로써 보다 쉽게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데, 이것이 지혜이다.  <226p-267p>

 

  근래에 나는 "공부는 평생해야 한다"는 격언이 진리처럼 느껴진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 역시 쌓아지는 것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조금 더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이든 알아야 생각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으며, 기뻐할 수 있고 괴로워 할 수 있다. "모르는 것이 약"이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사람들은 알고 싶어하고 알고 있는만큼 생각하고 반응하며 살아간다. 특히 청년의 공부는 치열해야 하고 치열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꿈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겠지만, '청춘'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누구라도 자신이 공부한 것을 삶에 적용할 수 없다면, 그것보다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무엇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와 항상 연관되어야 한다. 만약 스스로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시대의 선각자"라 불릴만 하다. 지혜는 결국 인간의 삶 속에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지금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이고,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지혜라 할 수 있다.   

 

관념이 나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해오던 습관이 관성이 되고, 관성이 태도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태도의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게 사실은 더 실효성이 있는 실천의지인 것이다.  <248p>

 

  생각만으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은 변화를 위한 재료는 될 수 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재료에만 머물러 목표에 이를 수 없다. 음식 하나를 만드는 것에도 사실 여러 가지 재료가 필요할 때가 있고, 그 재료들을 적절히 섞어야 맛과 향을 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념들을 현실에서 적절히 적용하거나 공유 내지 실현시키지 못한다면, 결국 본성적이고 습관적인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welfare(복지)가 되고 있지만,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논쟁하는 복지보다는 wellbeing(참살이)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다. 이때 wellbeing은 단순히 유기농 음식을 먹고 피톤치드를 마시며 숲길을 걷는 개인화된 것이 아니라, 정신적 위안과 연대의 회복과 같은 사회적 wellbeing에 대한 자각을 말한다.  <321-322p>

 

  아주 훌륭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과 대선 후보자들이 외치는 "복지"라는 것이 결국 개인의 삶으로 옮겨지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계층 간 소통이 단절되고 양극화를 넘어서 자멸의 시대에 살고 있는 소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상처나고 찢겨진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특별한 '힐링'이다. 건강한 사람보다 아픈 사람들이 더 많다면, 의사는 이해득실을 떠나 아픈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본연의 의무일 것이다. 사회 내에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거나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정부나 정치인들은 그들을 살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자생할 수 있도록 돕고 사회 구조 역시 그렇게 개편되어야 한다.

 

  "따뜻한 집에서 살고 싶고, 매일 세끼의 식사를 먹고 싶고, 주어진 일터에서 일하고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고 싶다" 누구에게나 평범한 일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진짜로 눈 앞에서 평범한 일상이 되어져야 한다. 그것이 복지이고 'wellbeing'이다. 정치인들이 복지를 논한다면 지금 소시민들이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좀 더 깊이 있게 살펴야 하고 적극적으로 그들의 삶에 감정 이입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나오게 될 복지 정책들이 소시민들에게 있어서 사는 것이 진정 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드는 생각은 읽기 전의 나의 생각과는 어느 정도 달라졌다. 저자는 이 책에 자신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과 경험들을 쓴 것처럼 보이고, 그 지식과 경험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삶에 적용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이 책의 주된 독자인 청년들과 소통하려 한다. 이 책에는 당연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저자 스스로 체득한 지식과 경험들에 대해서 자신만의 주관적인 판단과 결론들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렇게 크게 논란이 될 만한 것들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저자는 지금까지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었고, 앞으로도 할 것이라는 흔적과 의지들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는 청년들에게 좋은 교양서적이다.

 

  누군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희망적인 일이다. 그 누군가는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먼저 갔을 수도 있고, 내가 겪지 못한 경험들을 겪었을 수도 있으며, 내가 모르는 지식들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책은 단순히 간접적인 도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감정 이입과 함께 개개인의 삶에서 실제로 다가올 여러 상황들에 대해 "직접"에 가까운 적극적인 간섭을 한다. 나는 저자가 이 책을 쓴 궁극적인 의도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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