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요즘처럼 정치가 국민적 관심을 받는 시대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2012년은 총선과 대선이 함께 있는 흑룡의 해이다. 한마디로 향후 5년, 혹은 그 이상의 대한민국의 운명이 올해 결정되어진다.이런 점에서 정치가 국민적 관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핵심에는 지난 4년 동안 MB정권의 행보를 보고 실망한 국민들의 반응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국민들의 분노와 의견들을 듣고 살펴보면, 이전의 민주정권 특히 故 노무현 대통령의 향수가 짙게 느껴진다. 국민들은 지금 '사람 사는 세상'을 원하고 있다.

 

  얼마 전 우연히 TV 토크쇼에서 문재인 이사장이 나온 것을 보았다. 그 전에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나왔는데, 문재인 이사장이 나온 것을 보니 TV 토크쇼마저 정치 유세장으로 돌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문재인 이사장을 잘 모른다. 그가 참여 정부 시절에 핵심 인물로 요직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문재인' 이라는 사람 자체는 내게 무척 낯설었다.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최근 통합 민주당이 생기고 나서부터였다. 관심이 생기니 당연히 그의 생각을 살피고 말을 들어보는 것이 실천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기로 했다.              

 

 

  그때 썼던 '사람 사는 세상'을 그 후 줄곧, 심지어 대통령 재직 중에도, 그리고 퇴임 후에도 사인글로 썼다. 당신의 대통령 재임 중에도 '사람 사는 세상'이 여전히 멀었고, 따라서 그에 대한 염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72p>

 

  1982년 8월에 사법 연수원을 마친 문재인은 판사를 지망했으나 대학시절 시위 참가 이력으로 변호사로 법조계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을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 중인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공동 사무소를 사용하면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그는 노무현의 동지로서 같은 목적과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 나갔다. 

 

  88년 13대 총선에서 노무현 후보자가 선거 구호에 썼다던 '사람 사는 세상'. 당선되어서는 5공 청문회 스타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던 모습들을 문재인은 기억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멀기만 한 것 같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사인글로 쓴 것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라는 말이자, 공동으로 책임을 함께 나누자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문재인 스스로에게도 정치 입문에 있어서 상징적인 구호라고 생각한다.     

 

  오후에 출구조사 결과가 역전됐다. 확신이 섰다. 오후 6시 선대본부 사무실 TV앞에 모두 앉았다. 최종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예상대로였다. 우리의 승리였다. 모두 끌어안고 환호했다. 누구는 울먹이며 승리를 자축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 생애 가장 기쁜 날 중 하나였다.  <102p>

 

  2002년 12월,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와 같은 드라마는 없을 것 같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우리 정치계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받을 수 있는 깜냥이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아쉽게도 '노무현'이라는 인물은 지금 필요하다. 나는 2012년에 '노무현'같은 인물이 후보에 나온다면 주저없이 찍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국민들은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열광할 것이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 정치계는 오랫동안 인물난에 허덕이고 있다.   

 

  그리고 당선인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정치를 잘 모르니, 정무적 판단능력이나 역할 같은 것은 잘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리원칙을 지켜나가는 일이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을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를 쓰십시오." 그러면서 두 가지 조건을 말씀드렸다. "민정수석으로 끝내겠습니다", "정치하라고 하지 마십시오." 정치 이야기는 당선인의 후보시절 2002년 지방선거 때 부산시장 후보로 나서라는 압박을 강하게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당선인은 매우 기뻐하면서 그러자고 했다.  <201p>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정계에 입문한 문재인. 그는 분명 그때부터 정치인으로서 활동했다. 때문에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민정수석으로 정계에 입분한 문재인에게는 괜찮은 데뷔라고 생각한다. 노무현처럼 치열하게 투쟁한 정치인이 아니었고, 비록 대학시절 시위에 참가하고 구속 수감된 이력이 있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스마트한 이미지가 다분하다. 나는 이것이 앞으로 정치인 문재인의 한계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금 그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민정수석이나 비서실장 같은 참모형 이미지를 빨리 벗어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통령은 줄곧 '장사꾼 논리'를 강조했다. "100% 국익 기준으로 하라. 우리가 이익이 되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는 거다. 협상 과정에서 국익에 배치되면 안 해도 좋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 중단해도 좋다." 이 점을 늘 강조했다.  <347p>

 

  책에는 참여 정부 때에 있었던 주요 정책들을 돌아보면서 문재인 스스로가 평가한다. 어떻게 보면 해명내지 변명일 수도 있고, 언론에서 다루지 못했던 진솔한 이야기들과 전후 사정을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 중에서도 단연 한미 FTA에 대한 글들은 관심을 갖게 했다. 많은 분량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참여 정부가 한미 FTA를 어떻게 받아 들이고 추진했는지 대략적으로는 알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시절 '자주 국방'과 '자주 외교'라는 일념으로 전시 작전권 환수를 추진했던 것처럼, 한미 FTA 역시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추진하려고 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문재인은 당시의 상황을 말하면서,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한미 FTA와 참여 정부에서 추진했던 한미 FTA의 협상 방식과 취지는 근본적으로 달랐음을 역설한다.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깨지는 것을 아주 가슴 아파했다. 당신의 정치인생의 실패로까지 생각했다. 대통령이 가장 아프게 생각한 것은 대선 패배가 아니었다. "힘이 모자라거나 시운(時運)이 안 되면 패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패배하더라도 우리의 가치를 부둥켜안고 있어야 다음의 희망이 있는 법이다. 당장 불리해 보인다고 우리의 가치까지 내버린다면 패배는 말할 것도 없고, 희망까지 일게 된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당시 우리 진영이 열린우리당을 깨고 나간 일을 대통령은 그렇게 봤다. 대통령은 "계산하지 않는 우직한 정치가, 길게 보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길"이라고 늘 강조했다.  <366p>

 

  노무현 대통령이 창당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열린우리당'은 그의 퇴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이것이 우리나라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당 쇄신을 위하여 다른 정당들과 통합을 하거나, 당명을 바꾸고 지도부를 바꾸는 것은 거의 정형화 되었다. 지금도 여야는 이것에 당과 총선, 대선의 운명을 걸고 있다. 아쉽게도 열린우리당은 친노계열의 반란으로 해체되었다. 그 주역들은 지금도 '노무현'의 이름을 팔아가며 정치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데,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스스로 회개하고 사죄한다 하더라도 주인을 팔아먹고 냉정하게 돌아선 사람들이 무슨 낯짝으로 '노무현'의 이름을 들먹이는가? 문재인 역시 그들에 대하여 섭섭함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정치란 권모술수와 물리적인 폭력으로 대변될 수 없는 것이다. 정치도 엄연히 사람이 주체가 되어서 사람을 살리는 정치를 해야 비로소 정치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우직하고 뚝심있는 정치인이 살아 남기에는 현실 정치판이 영악하지만, 국민들은 진정 그러한 성품을 가진 정치인을 바라고 있다. 문재인이 과연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정치 행보를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리틀 노무현이 될지, 정치인 문재인이 될지.. 시간이 지나면 분명해 질 것 같다.    

 

  대통령은 어쩌다 그런 곤경에 처하게 됐을까. 나는 대통령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가난했다. 가난이 그를 공부에 매달리게 했고, 가난이 그를 인권변호사의 길로 이끌었다. 그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자신처럼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을지 모른다.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돕겠다고 소박하게 시작한 일이 인권변호사였고, 민주화운동이었다. 정치는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정치에 대한 그의 진정성이 그를 대통령까지 만들었다.  <406p>

 

  나는 아직도 2009년 5월 23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토요일 아침에 인터넷 기사들을 보다가 속보로 보게 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굉장한 충격이었다. 서거의 계기는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벌어졌던 언론과 국민들의 지탄 때문이었고, 그로 인해 손상된 도덕성과 자존심이 그를 낭떠러지로 몸을 던지게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발표했던 문재인의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난다. 걸걸한 목소리로 서거 소식을 알리는 그의 모습에는 왠지 모를 담담함이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니 슬픔을 겨우 억누르고 공식적인 회견에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 평생을 함께 했던 사람이기에 누구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삶을 잘 알았던 그였다. 그때의 심정을 자세히 기록한 부분을 읽어보니 나도 마음이 울컥한다. 문재인과 나의 마음이 이때만큼은 동화되었다. 

 

  굴곡이 많고 평탄치 않은 삶이었다. 돌아보면 신의 섭리 혹은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한가운데 노무현 변호사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나보다 더 어렵게 자랐고 대학도 갈 수 없었다. 어려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나보다 훨씬 뜨거웠고, 돕는 것도 훨씬 치열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467p> 

 

  운명처럼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서 지금에 이르게 된 문재인. 그의 멘토이자 동지였던 노무현은 그에게 많은 숙제를 남기고 이 땅을 떠났다. 그리고 지난 4년 동안 재야 인사로 활동하다가, 2012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정치인으로 활동하려 한다. 이미 4월 총선에 부산에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후에 있을 일들은 아무도 모르고 추측성 기사만이 난무할 뿐이다. 스스로 변호사 체질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를 정치인으로 활동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는 그의 말대로 "운명이다"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나는 문재인이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 않는다. 일단 현재까지의 모습을 볼 때, 권모술수나 정략적인 제안에 호의적인 인물이 아니고, 원칙과 타협을 중시하는 인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만약 그가 이번 총선에서 당선이 된다면, 국회의원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다할 것이라 본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대선에 출마하려 든다면, 그것 자체부터 그의 정치적 이미지 훼손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현재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하나, 뭔가 그에게는 특별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믿는 '운명'을 조급함이나 사심 없이 인내와 긴 시간을 가지고 걸어 가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총선에서 낙선한다면, 그의 정계 은퇴가 빨라지거나 전면에 나서는 정치인이 아닌 후방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현재까지는 잘 어울린다. 그러므로 2012년 4월은 자신이 믿는 운명과 자신이 가진 한계를 확인하고 시험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참여 정부의 향수가 짙어지는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이 출간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이 정치인 문재인의 '출사표'라고 생각한다. 그가 현실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말처럼 운명일까? 냉정하게 본다면,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이'운명'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지지자들은 분명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그에게 투영시키고 있다. 이는 유시민 지지자들이 바라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냐? 지금 대한민국 정치계는 오랫동안 인물난에 허덕이고 있고, 문재인 같은 인물은 필요하다. 단적인 예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으로 박근혜가 임명된 것과, 통합 민주당의 대표로 한명숙이 된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이다. 두 정치인이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국민들이 보기에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인물군들이 없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아마 2012년에는 전, 현직 정치인들이 쓴 정치 관련 도서들이 많이 출판될 것이다. 국민들은 그 책들을 읽으며 자신이 가진 정치 기조를 다듬을 것이고,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 소신 있는 주권 행사를 할 것이다. 개인적인 소망이 있다면,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 후회없는 선택을 나를 비롯한 국민들이 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자신이 선택한 정치인이 위기에 처해 있다면 응원과 격려를 보내야 한다. 정치란 늘 변수가 있기 마련이고, 언론과 다수의 정계 X맨들은 선동과 연명을 위하여, 우리들이 선택한 정치인들을 공격할 것이다. 그때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지난 날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가 지지할 정치인을 찾고 알아보자. 그리고 그 정치인이 변절하지 않는 이상 끝까지 그를 돕자.

 

  정치인 문재인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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