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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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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은 올 봄이었다.

2011년도에 개봉할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12월로 확정되었을 때, 나는 무조건 개봉 당일 날 볼 것이라 다짐했다.

 

하지만 개봉 당일인 21일에 내 평생 처음 극장에서 희안한 일을 겪게 되었다.

오전 11시 20분 표로 구로 CGV 3관에 예매했고 왔으나,

상영관 사정으로 인하여 10분 전에 입장할 수 없었고 정시에 입장했다.

정시에 입장했기에 빠른 상영을 할 줄 알았는데 상영 전 선전 광고들을 다 보여줬다.

 

뒤이어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했는데,

상영 5분이 안 되어서 디지털 영사기의 문제로 버퍼(buffer) 현상이 생겼다.

영사실에서 상황을 파악하여 상영을 종료하고 재생하기를 세 번 반복했고,

어떤 특정한 장면들 때문이 아니라 영사기 자체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네 번 정도 반복되자 매니저가 달려나와 지금의 상황을 해명했고,

환불을 원하는 관객들에게는 환불을,

상영을 원하는 관객들에게는 8관으로 이동할 것을 말했다.

반성의 뉘앙스가 아닌 굉장히 사무적인 뉘앙스였다.

시간은 오전 11시 58분이었다. 

 

아줌마 관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원성을 다 그 분들이 내었고,

결국 대거 환불 사태가 벌어졌다.

그 와중에 8관으로 이동하는 관객들은 나를 비롯하여 소수에 불과했다.

8관에 대한 좌석 배치도 지정하지 않았기에 관객들은 아무데나 앉았다.

나는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려 1시간 가까이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 제대로 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종료 시간도 1시간 가까이 늘어났다.

 

3관과 8관의 차이는 일단 음향과 스크린의 차이에 있다.

즉 질적으로 3관은 메인이고 8관은 서브에 가깝다.

그동안 구로CGV를 이용했던 나에게 이런 처사는 아주 불쾌했다.

상영 이후 매니저의 사과 전화를 받았고 사과의 선물을 증정하려 했지만,

나는 선물보다 재발 방지를 당부했다.

이런 일은 참 난감하면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내 눈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마라! 내가 널 죽일 수도 있다."

 

일제 강점기 때 경성에서 어릴 때 만난 타츠오와 준식.

둘은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 운동 선수들이었지만,

국가적, 신분적 차이 때문에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였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여 준식과 그의 친구들은 강제 징용을 당하고,

몽골 일대를 지나 소련 침공 작전 부대에 배치되어 혹독한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타츠오가 새로운 부대장으로 나타나고,

준식은 타츠오와 자신의 운명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게 되고,

계속되는 전쟁을 통해 사선을 넘나들자, 

서로를 의지해야 하는 사이가 되어간다.  

 

 

"여기서는 내가 대좌이고, 내가 천황이야!"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동건은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발전된 연기는 아니었다.

"좋은 연기라고 할 수는 있지만 정체된 연기"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배역은 너무 비 현실적인 캐릭터라 흥미롭지 않았다.

 

<절규>, <풍산개>의 오다기리 조는 꽤 열연했다.

개인적으로는 장동건보다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깊이 있는 내면 연기와 분위기에 따른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신주쿠 사건>의 판빙빙은 짧은 출연 시간이 아쉬웠다.

 

<아나키스트>, <말죽거리 잔혹사>의 김인권은 조연 중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였다.

원래부터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오랜 기간 준비된 연기자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알 포인트>의 오태경을 오랜만에 보았다.

 

<아저씨>의 김희원은 신선한 연기를 보여줬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윤희원, <백만장자의 첫사랑>의 이연희, <비열한 거리>의 천호진,

<마왕>의 곽정욱, <태극기 휘날리며>의 김수로. KARA의 니콜 등등..

어디선가 한 번쯤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보았던 배우들이 출연하여,

짧지만 다양한 배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은행나무 침대>,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은,

이번 신작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보여 주려고 했던 것 같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전 부분을 한 영화에 다 담아내려는 시도는,

너무나 큰 욕심이었다.

물론 화려하고 발전된 CG는 인상적이었고 특유의 물량 공세는 돋보였다.

하지만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이해하기 쉽고 단순한 스토리가,

이번에는 개연성이 부족하여 조금 어색하다.

배경음악도 <태극기 휘날리며>의 틀에서 크게 달리지지 않은 느낌이다.

 

 

"우리 둘 중에 하나는 죽었어야 했다"

 

전체적으로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분명 화려하고 놀라운 CG와 엄청난 물량, 리얼한 영상들은 강점이지만,

스토리적인 면에서 개연성이 약하다.

또한 여느 전쟁 영화들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 보는 동안 계속 겹쳐졌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태극기 휘날리며>보다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볼 거리가 많아서 좋지만 영화는 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영화를 통해 "강제규 식의 영화"라는 상투적인 컨셉이 생긴 것 같아 아쉽다. 

나는 <쉬리>와 같은 구성에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감동을 그에게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그는 자기 과시를 강하게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는 지금부터 김준식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제규 감독의 꼼수가 돋보인 영화였다.

그게 지금의 현실과 영화 내용이 맞물려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강제규 감독은 한일 관계를 조심스럽지만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게 해석한다.

 

위안부나 강제 징용(처벌적 징용이 아닌) 같은 논란의 요소들은 거의 다루지 않았고,

오직 두 남자가 느끼고 바라보는 주변 세계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든 자신의 주변 인물이든,

시대가 자신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듯 하다.

좀 더 나아간다면 한국이든 일본이든 어느 나라든지,

제국주의 시대에는 어느 한 쪽으로 상황이 유리하게 진행되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기 위하여 포악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타츠오와 그의 주변 인물들이

황군의 지휘관으로 준식과 그의 친구들을 대하는 모습이,

준식의 친구가 소련에 넘어가서 작업 반장이 되어,

포로 잡혀 온 타츠오와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행하는 모습과 미묘하게 겹친다.

그래서 서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어떻게 보면 두 남자의 우정은 거기에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우리는 서로의 의지와는 다르게 살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 전제를 한일 관계로 확대하려는 경향이 엿보인다.

 

물론 어디까지나 영화이고 어떻게 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른 차이겠지만,

한일 관계가 좋은 관계로 나아가려면,

양국이 지난 과거사를 어떻게 보고 해석해야 하는 가가 중요하다.

이제는 아주 오래된 역사가 된 듯 하지만,

아직도 양국의 과거사에 피해 받는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에서 매주 수요일이면,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가 열릴 정도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

 

타츠오와 김준식이 격동의 시대에 서로를 의지한 친구가 아닌,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짜 친구가 되려면,

이전부터 지금까지 한일 관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들을 냉정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대등하게 경쟁하며 달릴 수 있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

 

한일 관계가 동반자적 관계가 되고 싶으면 그런 관계가 될 수 있게,

일본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요구하는 과거사 문제들과,

독도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외면과 왜곡을 앞세우면 안 된다.

단순히 영화만 보면 그런 문제들은

시대가 낳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감추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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