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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소금 - Hindsigh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무척 더웠던 하루였다.
셔츠에 넥타이만 매고 주어진 일들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나른했다.
8월의 마지막 날 늦은 밤에 나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가는 도중에 들었던 음악들은 기분 전환 할 수 있게 도와줬다.
낮보다 밤이 더 좋았다.
밤 10시 10분에 구로CGV 2관에서 <푸른소금>을 보았다.
평일이고 늦은 밤이라 관객들이 별로 없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많았다.
그래도 나 같이 혼자 영화 보러 온 관객들이 조금 있어서 다행이었다.
가장 좋은 자리에서 편안하게 보았고,
예매로 인한 혜택으로 음료수를 500원에 사서 마셨다.
이제 구로CGV의 극장 구조는 거의 파악했다.
"세번째 금은 지금입니다. 지금!"
조직 칠각회의 중간 보스였던 두헌은 조직에서 은퇴를 하고,
어머니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와 요리학원을 다니며 식당을 개업하려 한다.
그러나 칠각회 보스 만식은 의문의 사고로 죽게 되고 후계자로 두헌을 지목한다.
은밀히 칠각회 내부에서 두헌을 감시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세빈은 두헌을 감시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의도적으로 두헌에게 접근한 세빈은 두헌에게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두헌 역시 세빈에게 연민의 감정이 생긴다.
그동안 칠각회는 검찰의 정치권 비리수사로 인하여 위기를 맞고,
두헌을 제거함으로써 무마하려고 한다.
결국 세빈에게 두헌을 암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원조교제는 순수하지 않습니다."
<박쥐>, <의형제>의 송강호는 내 기억에 첫 멜로 연기를 한 것 같다.
어색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괜찮았고 오랜만에 그의 액션 연기 또한 볼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흥행이 보증된 배우이기에 영화에서 그의 존재감은 확실하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신세경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배우이다.
일단 아직 배우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고,
언론 플레이가 심한 연예인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영화를 통해 배우에 대한 가능성을 볼 수 있었고,
그녀 스스로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강적>의 천정명은 진지하면서도 코믹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의 연기는 영화에 출연한 어떤 배우들 보다 자연스러웠다.
<다모>의 김민준과 <말죽거리 잔혹사>의 이종혁은
평소 맡았던 배역들과 비슷한 느낌의 연기를 보였고,
윤여정, 이경영, 김뢰하, 오달수 역시 비슷했다.
특히 최근 본 영화들에서 이경영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드라마<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잠깐 보았던 이솜의 연기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대 안의 블루>, <시월애>의 이현승 감독이 오랜만에 만든 신작이다.
그의 장점은 영상미인데 이번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시나리오와 연출은 여전히 날카롭지 못하다.
오히려 초호화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
길진 않았지만 실감나는 액션 연기가 있어서 살펴보니 무술감독에 정두홍이었다.
"음식도 말을 한다."
송강호, 이경영, 이종혁, 천정명, 김민준 등등.. 배우들만 보면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급이다.
송강호, 신세경이 확실한 주연이었지만 단역이 없을 정도로,
출연 배우들은 영화에서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연기를 보였다.
아마 근래에 볼 수 없었던 수준 높은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였다.
오랜만에 발표한 이현승 감독의 신작이었지만 시나리오와 연출에 있어서 아쉬웠다.
일단 상황 설정이 어색했고 유치한 순정 만화에서 볼 수 있었던 스토리였다.
배우들의 열연이 없었다면 몰입도나 완성도 면에서 형편 없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영상들과 OST가 괜찮은 것 외에는 순수 영화 자체가 주는 감흥은 없었다.
차라리 곽재용 감독이나 허진호 감독에게 한 수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눈물로도 염전을 만들 수 있을까?"
예전에 내게 시나리오를 쓰는 방법을 가르쳐 줬던 선생님이 한 말이 생각났다.
"비극이 희극보다 쉽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되었는데 의외로 간단한 설명이었다.
극 중에서 배우가 죽으면 관객들은 집중하고 빨리 그 상황을 공감하려 한다.
특히 반전이 가미되면 공감과 그에 따른 극적인 효과도 커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게 된다.
반대로 희극은 아무리 계획적이더라도 특별하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들고,
관객들이 원하더라도 쉽게 희극으로 결론 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희극은 현실적이기 보다는 이상적이라고 관객들이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는 희극보다 비극이 상대적으로 많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극과 희극은 교차되지만 비극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와 싸워 심하게 얻어 맞거나,
진학이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사랑하는 이성에게 고백을 했는데 거절 당하거나,
서로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들이 이별을 하거나,
가족과 친구들에게 큰 실망을 하거나 등등..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희극보다 비극적인 기억들이 더 많다.
누구나 자신만의 이상적인 삶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은 가까운 가족부터 생판 모르는 남들까지 나를 괴롭힐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괴로운 삶에 도피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 이후의 삶을 알 수 없기에 죽음은 어디까지나 삶의 끝일 뿐이다.
영화에서처럼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접근하더라도,
그 누군가를 피해 도망다니거나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 속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면 예상되는 비극은 현실의 희극으로 바뀔 수 있다.
결국 삶의 희극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인정과 이해 속에서 사랑의 의미를 찾을 때 가능하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가을 바람이 부는 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보았다.
갑자기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떠올랐다.
기억 나는 몇 구절을 읊으며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