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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동생이 보던 책이 내 책장에 꽂혀 있었다. 이름은 들어 봤지만 한번도 읽어보지 않았던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일본 작가는 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작들만 보기 때문에 다른 작가들의 책들은 집중있게 본 적이 없다. 단순히 오고 가는 대중교통 안에서 읽을 생각과 얇은 분량이 마음에 들어서 읽었다. 한편으로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학세계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한 권의 책에 세 편의 단편소설 <키친>, <만월 - 키친2>, <달빛 그림자>로 구성되었다.
나는 지금, 그를 알게 되었다. 한 달 가까이나 같은 곳에 살았는데, 지금 처음으로 그를 알았다. 혹 언젠가 그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을 하게 되면, 항상 전력으로 질주하는 나지만, 구름진 하늘 틈 사이로 보이는 별들처럼, 지금 같은 대화를 나눌 때마다, 조금씩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42p>
상처 입은 세 사람이 한 집에 모였을 때는 서로가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만 느낄 뿐, 진지하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일찍부터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극적인 순간이 일어나야 알게 된다.
미카게, 유이치, 에리코는 한 집에 같이 있었지만 서로가 잘 몰랐다. 같이 있고 대화는 많이 했지만 다가서지 못하는 어색한 관계, 결국 누군가는 떠나야 했다. 자의적 결단이든 운명적 죽음이든 그들은 원치 않는 상황으로 인하여 흩어진다.
운명같은 사랑을 믿지만, 나에게 있어서 사랑은 늘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때로는 순수하게 때로는 정열적으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서로가 헤어져야 할 순간이 찾아왔을 때, 원치 않더라도 둘 중에 하나, 아니면 서로는 사랑의 멍에를 지고 떠나야 했다. 사랑은 달콤한 말들을 해가며 어렵게 시작됐지만 이별은 짧은 말들로 너무나 쉽게 끝났다. 오래 만나든 짧게 만나든 적당히 만나든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은 같았다.
책에서는 친구도 아닌 연인도 아닌 미카게와 류이치가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 서로의 소중함을 알고 사랑을 시작할 듯 보였지만, 나는 헤어진 사람들을 다시 만나더라도 안부를 물을 수는 있겠지만 다시 사랑할 수 없다. 행여나 서로가 어디에서든 마주치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내가 만나고 싶어해도, 그가 만나고 싶어해도 끝까지 참으며 서로 마주치면 안 될만큼 행복해져야 한다. 그래야 잊을 수 있다.
우리는 심한 싸움도 했고, 잠시 바람을 피우기도 하였다. 욕망과 사랑의 균형에 괴로워한 적도 있고, 너무 어려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 일도 더러 있었다. 그러니까 늘 그렇게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품이 많이 든 세월이었다. 그래도 4년이다. 그중에서도 그날은 끝나는 게 두려울 정도로 완벽한 하루였다. 겨울의 아름답고 투명한 대기 속, 모든 것이 너무도 아름답고 부드러운 하루의 여운처럼, 돌아본 히토시의 검은 재킷이 어둠에 녹아드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이 장면은 울면서 몇 번이나 되새긴 장면이다. 아니 생각날 때마다 눈물이 나왔다. 다리를 건너 쫓아가서, 가면 안 된다고 데리고 돌아오는 꿈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꾸었다. 꿈속에서 히토시는, 네가 못 가게 말린 덕분에 죽지 않았어, 라며 웃었다.
한낮에 이렇게 문득 떠올리면서도, 울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 왠지 서글프다. 한없이 먼 그가, 점점 더 멀리로 가버리는 것만 같다. <172p>
<키친>, <만월 - 키친2>와 함께 실린 요시모토 바나나의 졸업작품작 <달빛 그림자>는 앞서 소개한 소설들과 달리 판타지적인 소설이다. 교통사고로 죽은 히토시와 그를 그리워 하는 사츠키의 회상. 서로 사랑하다고 싸우지 않을 수 없고 위기가 없을 수 없다. 책의 말처럼 욕망과 사랑의 균형에 괴로워하며 스스로를 자책한 적도 있고 상대에게 횡포를 부린 적도 있다. 너무 어려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서로의 상처를 덧나게 하며 괴로워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서로에게 실망하더라도 사랑으로 이해하고 덮어야 했다. 하지만 덮으면 덮을수록 치유되지 않는 상처들은 그 틈이 벌어져 피를 쏟아냈다. 결국 기억만을 남긴 채 돌아서야 했다.
사츠키는 환상처럼 죽은 히토시를 만나 작별인사를 했지만, 나는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 나는 왜 내가 보았던 책이나 영화, 아니면 내 친구들처럼 멋진 작별인사를 못하는 것일까? 나는 담담했고 냉정했다. 속으로는 나 자신에게 "너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냐?" 하며 물어가며 이별을 맞이했다.
멀리 떠나간 사람들을 그리워 하며 애태울 필요는 없다. 이별의 슬픔은 극복해야 하고, 마음이 두근거린다면 죽을 때까지 사랑은 계속 해야 한다. 다만 다음 사람에게는 이전 사람들에게 저질렀던 실수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성숙해야 하는 것처럼, 몇 번의 이별 속에 다시 사랑이 찾아왔다면 소중함 속에 행복으로 만들어야 한다.
세 편의 소설들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초기작들로 연애소설이다. 마치 청소년기에 잠깐 보았던 일본 순정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었던 내용이었지만, 그럭저럭 공감하며 읽었다.
누군가의 상처를 내가 이해하고 치유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멋진 외모와 돈 잘 버는 능력 등 서로가 마음에 드는 조건을 가진 연인을 만나는 것이 시대의 연애일지 몰라도, 사람이 이 땅에 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사랑이 아름답고 애절할 수 있는 것은 서로가 가진 연약함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시작과 끝은 연약함에서 완성으로 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