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딱딱하고 무거운 책들을 읽고 있다보면 지식을 아는 즐거움도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아프고 때로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더이상 읽고 싶지 않다. 그래도 학생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불로 몸을 덮은 채 잠만 잘 수는 없으니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택하여 읽어야 한다. 그러던 중 도서관 신착도서에 이 책이 보여서 읽게 되었다. 

  책 안쪽 표지에 나이를 잊은 공지영 작가의 모습이 부담스럽다. 또한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라서 그녀의 발랄한 문체가 깊이 있게 다가오진 않았다. 아마 베스트 셀러가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쓴 책들에는 여성의 자유분방함이 묻어나서 가끔 흥미롭기도 하다. 전통적인 여자가 아닌 신세대 여자들의 삶을 알고 싶으면 그녀의 책들을 권한다. 어떻게 보면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 칸짜리 그의 집에는 없는 게 없다. 거실 침실 그리고 사랑방에 연못과 정자까지! 그는 오늘도 그가 담근 산복숭아술을 우리에게 내놓고 취기가 오르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하곤 한다. "벽소령 넘어 백두대간을 탄다고 여기 온 지가 벌써 10년이야. 돈 없이 살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필요 없었는데 요즘 1년에 돈 1백이라도 생기니 왜 이렇게 필요한 게 많은지 몰라. 언제 다시 다 버리고 빈손으로 벽소령을 넘어야 하는데! 꼭 넘어야 하는데." <69p>


  돈으로 흥한 자들이 아닌, 돈으로 망한 자들이 모인 지리산 자락.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풍류의 삶을 누리고 있다. 때때로 찾아오는 도시 이방인들의 횡포와 위정자들의 무분별한 개발계획에 맞서 피해를 받거나, 비폭력 저항운동을 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드넓은 지리산만큼이나 넓다. 폐가를 개조해서 집으로 사용하고, 소유보다는 나눔으로써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그들의 삶이 마치 선인(仙人)과 같다.


  "보수가 뭔 줄 아니? 잘못된 거 수리하는 게 보수야. 진보는 뭔 줄 아니? 다른 사람보다 부지런히 보수하는 진짜 보수가 진보야." <75p>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보수와 진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이미 보수와 진보에 관련된 책들과 그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니! '최도사'는 진짜 도사가 맞다!  

  
  악양, 그것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 그것은 경쟁하지 않음의 다른 이름, 그것인 지이(智異), 생각이 다른 것을 존중하는 이름. 그것은 느림을 찬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이름……. 공연 도중에 소주가 나누어지고 구수한 돼지고기 냄새 퍼지는…… 그런 악양에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313p>


  지리산 자락에 모여 풍류를 즐기던 사람들이 뜻을 세워 만든 '지리산 행복학교' 지역 주민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여 작은 음악회를 열고,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 서로 힘을 모아 추진하는 일들과 계획들은 훈훈하다. 자신들이 배운 것들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문 용기이다. 이런 공동체들이 많이 생겨야 돈으로 해결하려는 물량적 복지사회가 아닌, 정감있는 복지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도 잠깐 언급되었는데, 삭막한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전원생활을 꿈꾸지만 막상 전원생활을 하게 되면 불편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전원생활을 하려고 낙향한 사람들이 다시 도시생활로 되돌아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은 도시생활에 찌든 몸이 정화되는 기간인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전원생활을 하려면 자연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버들치 시인, 낙장불입 시인, 고RPM 여사, 최도사 등등.. 책을 읽으면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리산의 넓은 산세만큼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차가운 겨울 얼음을 녹이는 봄바람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공지영 작가는 정말 좋은 친구들을 두었다.

 지리산 자락에서 일어나는 그들의 에피소드들이 바쁜 나의 일상에 작은 여유를 가져다 주었다. 책을 다 읽고나니 오랜만에 지리산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머니의 고향 남원에서 보았던 지리산은 은은한 구름 속에 끝을 알 수 없는 산등성이가 어린 나를 내려다 보았었다. 다시 가게 된다면 어머니의 집과 지리산 행복학교에 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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