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 The Man from Nowher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아침의 압박감 없이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것,

매일 주말과 같은 시간들이 주어진다는 것,

오늘 밤늦게까지 작업을 해도 내일 아침 걱정이 안 된다는 것은,

방학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방학이 이렇게 삶을 아름답게 만들다니!

새삼 흐뭇한 것은 그만큼 이번 학기가 만만치 않았음을 의미한다.

 

오전에 액션영화를 보는 것은 오후나 저녁에 보는 것보다 낫다.

특히 잔인한 액션영화는 밝을 때 봐야 좀 더 덜 충격적이다.

어두울 때 액션영화를 보면 왠지 기분이 찜찜해진다.

그리고 액션영화는 절대 생각하면서 보면 안 된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이해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익숙해서 별 상관없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조언한다.

 

2010년 하반기에 화제였던 <아저씨>를 이제서야 봤다.

몇 번 극장에서 보려고 망설였지만,

포스터와 시놉시스만 보아도 대충 스토리가 연상되었다. 

이 영화가 장기간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무래도 원빈의 힘이 컸다고 본다.

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편안한 옷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보았다.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 대지마!"

 

전직 특수요원인 차태식은 특수요원 시절 괴한에게 임신한 아내가 살해 당하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전당포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그의 유일한 말벗이자 이웃은 전당포 옆에 사는 미혼모의 딸 소미뿐이다.

둘은 서로의 처지에 공감을 느끼지만 태식은 소미에게 차갑게 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미와 그녀의 엄마가 괴한들에게 납치되자,

태식은 순간 소미에게 묘한 보호본능을 느끼고,

소미를 찾으러 괴한들을 추적한다. 

 



 

"내일만 보고 사는 놈은 오늘만 보고 사는 놈에게 죽는다."

 

<가을동화>, <태극기 휘날리며>, <우리 형>, <마더>의 원빈.

그는 이 영화에서 여심을 사로잡는 연기를 보여주었고,

성장을 거듭하는 배우임은 확실하다.

한 가지 유감이라면 군생활 도중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의병전역한 그가,

1년 반 동안의 재활치료를 통해서 특수요원 연기를 할 만큼의 몸이 만들어진 것이 놀랍다.

역시 강력한 인기와 흥행성공은 작은 의문도 잠재우는 것일까? 

특히 민감한 이 때에도..?

 

<전우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송영창이 출연했지만 비참한 배역을 맡았다.

 

이정범 감독의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이지만,

그 전작이 <열혈남아>인 것을 비추어 보면

보호본능에 입각한 남성미 넘치는 연출을 좋아하는 것 같다.

 



 

"오지마, 피 묻어."

 

"아저씨, 아저씨가 저 구하러 온 거 맞죠? 그쵸?"

 

이 영화는 여느 1인 사기캐릭터 액션영화들과 거의 비슷하다.

대표적으로 <코만도>, <레옹>, <테이큰> 등이 있다.

특수요원이나 킬러의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재수 없는 악당들은 그의 여자나 가족을 납치하거나 죽이고,

복수심에 폭주한 주인공은 인간병기로 돌변하며 자신이 죽으면 죽었지,

자신과 관계되거나 관계되지 않은 여자나 가족은 반드시 살리려 한다.

그 결과 주인공은 죽을 수도 있지만 여자나 가족은 살고,

만약 여자나 가족이 죽으면 죽인 악당은 반드시 죽는다.

 

솔직히 출연진 중에서 아는 배우는 원빈과 송영창 밖에 없었다.

다들 처음 보는 배우들이었고 연기도 특별하지 않았다.

좀 과장하면 원빈 한명이 영화 전체를 먹여살린 영화였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비슷한 연출과 구성에 식상했다.

그것이 감독이 의도한 것이라도..

 



 

"너무 아는 척하고 싶으면 모른 척 하고 싶어져."

 

"그게 무슨 말이예요?"

 

"나도 몰라."

 

"처음 봐요, 아저씨 웃는 거."

 

이런 영화들을 보고 난 후에 드는 느낌들도 비슷하다.

그 느낌들 공통점은 통쾌하면서 마초적(macho)이다.

만약 나와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불의한 또는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살인 충동이 들 정도로 때리고 싶은 상대가 있는데, 

막상 한 대도 때릴 수 없거나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누군가가 나와 당신의 울분과 아픔의 보상을 해주길 바랄 것이다.

실제로 우린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그때 옆집 아저씨, 그것도 원빈 같은 이웃이 우리의 굴욕적인 모습을 참지 못하고,

정의의 수호자나 지구 끝까지라도 추적 할 청부업자처럼 그 모든 일과 상대를 찾아,

우리를 대신해 응분의 대가를 치룬다면 아마 영웅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런 분들은 많지 않다.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들도 가끔 분통 터지는 수사와 

여론의 눈치를 보며 사건을 빨리 종결 지으려 애쓰고,

검찰은 경찰보다 더 심할 뿐만 아니라 주체성 없는 권력의 하수인들이다.

그럼 설움에 찬 서민들은 누구를 의지해야 할 것인가?

 

결론은 같은 시대를 사는 보통 시민과 이웃들이 서로를 의지해야 한다.

어느정도 한계는 있겠지만 불의와 불법에 분개하면서

학교 때 도덕윤리 시간에 배운 정의를 구현해 나가면,

나와 당신이 바로 '아저씨'이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서 있다면 정의의 '아저씨'가 찾아 갈 것이다.

지금은 그럴 일 없고 "어디 와 봐!"라고 말하겠지만,

막상 나타나서 온 몸에 칼집을 낸다면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월드투어 비매너자,

안하무인 궤변론자,

피곤해서 잠 자고 있는데 깨우는 생면부지 남자,

분위기 파악 못하고 기분 나쁠 정도의 농담과 월권 행위를 하는 자,

내가 보기에 참을 수 없는 불의와 불법을 저지르는 자,

 

혹시 나는 그들을 족치기 위해 잠시 '아저씨'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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