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 The housemai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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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한 주일날, 오후 늦게 잠이 들었고 일어나보니 밤이었다.

잠에 취한 의식을 깨우기 위해 운동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역시 달리기는 의식을 깨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운동 후 간단한 목욕과 휴식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근래에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하여 읽다보니,

컴퓨터에 저장해 두었던 영화를 보기가 만만치 않다.

책은 내 것이 아니기에 대여기간 내에 읽어야 반납할 때 기쁨이 있지만,

컴퓨터에 저장된 영화는 언제라도 볼 수 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유난히 영화가 보고 싶었고,

1960년의 故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리메이크한,

2010년의 임상수 감독의 <하녀>를 보았다.

 



 

"아줌마는 착해요. 불쌍하구."

 

식당일을 하던 이혼녀 은이는 부유한 집의 가정부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모든 것이 완벽한 주인집 남자 훈과 쌍둥이를 임신한 안주인 해라.

그리고 어린 딸 나미와 집사인 병식, 이들 앞에 나타난 은이.

성실하고 착한 은이는 차차 집 분위기에 적응하면서 일의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주인집 딸 나미를 돌보면서 더욱 행복해 한다.

그러던 중 주인집 남자 훈은 은이를 보며 호감을 느껴 불륜관계에 이르고,

은이 역시 감정에 이끌려 행동하다가 훈이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해서.. 아더메치."
 

<눈물>, <바람난 가족>의 임상수 감독.

난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뭔가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그가 사회를 바라보는 특이한 시각은 흥미롭지만,

그 시각을 영화로 제작할 때는 잔혹한 복수극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복수는 마치 일방적으로 당하는 전쟁에서

당하는 쪽이 마지막 반격을 시도하는 처절한 전투같다.

항상 그의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장면은 주연 배우가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이다. 

 

<접속>, <해피엔드>, <밀양> 등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여배우 전도연.

몇 편을 제외하고는 나는 그녀의 영화와 드라마를 거의 다봤다.

그래서일까? 젊었을 때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를 보면 감회가 새롭다.

항상 강한 여성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그녀지만,

최근에는 안타까운 결말의 주인공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매력은

언제 보아도 행복한 기분이 들게하는 그녀의 미소이다.

 

<불새>, <흑수선>, <오 브라더스>, <태풍> 등 원조 꽃미남 이정재.

내가 그를 처음 보았던 것은 드라마 <모래시계>였고,

다양한 영화를 통해 연기 변신을 시도한 그를 보며 내심 많은 기대도 했었다.

그러나 뭔가 그를 대표하는 강렬한 영화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정우성이나 장동건보다 더 뛰어난 연기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이정재는 그들보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정말 미스터리한 연기인생이다.

나는 그가 언젠가는 대종상, 청룡 영화제 등 대형급 영화제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파주>의 서우는 안주인 역을 맡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고 보지만,

특유의 시크한 목소리와 표정연기로 그럭저럭 소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녀의 성장이 별로 기대되진 않는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바람난 가족> 등 관록의 여배우 윤여정.

주로 영화에서 어머니, 할머니 등 중년 여성 이상의 나이대를 소화하지만,

그녀에게는 고두심, 김혜자, 김해숙, 박정수 등과는 다른 이미지가 숨겨져 있다.

어느 배역이든 담배를 피우며 우수한 찬 눈빛으로 스크린에 등장할 때면,

보는 것만으로도 부유층 안주인 이미지와 함께 연기인생이 느껴진다. 

 

<지구를 지켜라>의 순이역을 맡았던 황정민을 보게 되 반가웠다.

 

<장녹수>의 박지영은 이 영화에서 배역과 가장 잘 어울렸고,

<바람난 가족>으로 임상수 감독과 친분을 쌓은 문소리가 우정출연했다. 

 



 
"아줌마! 나 찍소리라도 내야겠다구요!"
 

나는 1960년에 제작된 원작 故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보지 못했지만,

리메이크작을 보니 영화 수준이 꽤 높은 영화라 짐작된다.

최근에 원판을 복원하여 DVD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구할 수만 있다면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리메이크작이지만 임상수 감독 특유의 연출력이 보인 영화였다.

이정재, 전도연을 제외하고는

성인 배우들의 배역을 바꿨으면 좋겠다는,

아니면 기존 배우들이 아닌 다른 배우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배우들의 연기력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배역에 어색함이 좀 있었다.

 

그리고 전도연의 캐릭터가 조금 애매하다.

수상한 백치미와 순종적인 착한 이미지가 겹쳐서,

마지막의 비장한 모습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반전이라고도 볼 수 없고 복수라고 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냥 자폭이라고 해야 되나?

 

이정재의 비중은 너무 담백하다.

기름기가 거의 없는 돼지고기는 상상 할 수 없는데,

그의 비중은 기름기가 완전히 빠져서 싱겁다고 해야 하나?

그의 배역은 남자 배우 중 누가 맡아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도 명품 돼지고기인지라 그 맛을 잃진 않았지만,

맛을 느끼기도 전에 영업종료된 꼴이 되었다.

 

오프닝을 비롯하여 몇몇 장면에서 사회 문제를 제기한 것 같은데,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으나 영화 자체가 산만하게 느껴졌다.

특히 전도연 허벅지에 있는 화상자국은 감독이 의도한 것과 다르게,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진짜 화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더 들지 않았을까?

조금 더 시나리오를 날카롭게 다듬어서 집중했다면 좋았을 것 같았다.

배경음악은 분위기에 잘 어울렸다.

 



 

"남이는 좋겠다. 천사같은 동생 둘이나 생겨서."

 

"그저 그래요."

 

"아줌마 뱃속에 애기는요?"

 

"내 애기? 죽었어."

 

"왜요?"

 

훈이가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고,

해라 역시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의 공통점은 사회 내 상위 1~3%급의 부유층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고상한 취미와 남들에게는 교양 있는 말과 행동을 하지만,

실상은 속물적인 인간 군상과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다.

더구나 집사는 자기의 일이 '아더메치' 라 생각하며

그들에게 어쩔 수 없는 복종을 하지만 이미 혜택은 톡톡히 받고 있는 상태이다.

즉 겉으로는 싫은 내색을 보이지만 속으로는 이미 어느 정도 만족해한다.

단적인 예로 아들이 대한민국 검사가 되었는데도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하녀인 은이는 훈의 아이를 임신함으로써 신분상승을 노렸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은이는 그냥 애가 좋았을 뿐이다.

이혼녀지만 열심히 일해서 돈을 저축하려는 은이가,

훈이와 해라가 모이처럼 던져주는 돈을 받으며

회의감이 드는 표정을 짓는 것으로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은이는 신변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다소 멍청하게 보이지만, 그게 어떻게 보면 서민들의 현실이다.

 

서민들은 부유층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속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실제로는 부유층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는다.

서민들이 받는 월급은 부유층을 위해 한 달 동안 일해서 낸 수익보다 현저히 적으며,

실생활에서도 차이가 나고 이 차이는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부유층들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언제라도 바뀔 수 있으며 정과 의리보다는 최대 이익과 철저한 계약을 중시한다.

이 얼마나 토사구팽(兎死狗烹)적인 삶인가?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나는 왜 전태일이 떠올랐을까?

은이가 마지막에 보여준 복수는 훈이와 해라에 대한 경멸이었을 것이다.

즉 사회적 약자들이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사회적 강자들에 대한 경멸인 것이다.

그리고 지위가 높더라도 인격마저 높은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인간답게 존중하고 권리를 보장 받으며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이 영화에 대한 평을 조금 비장한 표현으로 한다면,

 

"은이의 죽음을 헛되이 여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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