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나는 가수다> - 알라디너, 당신의 선택은?

 

   군 전역 이후 주말 예능프로그램을 본방 사수하며 본 적이 없는데, 최근 MBC에서 하는 <나는 가수다>를 즐겨보고 있다. 가수가 가수라는 것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는데, 이런 프로그램을 만든 것을 보면 한국 가요시장이 예전보다 더욱 한쪽으로 편중된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가수다>의 절대 매력은 출연 가수들이다. 어떤 가수보다 ‘국민가수’라는 닉네임이 잘 어울리는 김건모, 특별한 음색과 진한 감동을 가진 이소라, R&B의 여제 박정현, 가장 대중적인 로커 윤도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남자 가수라 생각하는 김범수, 마치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것 같은 백지영, “또 한명의 나얼”이라 불리는 정엽. 다소 장르가 겹치는 가수들이 있지만 이 7명이 노래하는 것을 매주 한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시청자들과 팬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행운이다. 또한 장기호, 윤일상, 남태정 등으로 구성된 포함한 전문 평가단도 마음에 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서바이벌 형식으로 매 공연 시마다 청중평가단의 투표와 전문가들의 평가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가수가 교체된다는 점이다. <아메리칸 아이돌>, <슈퍼스타K>와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당연하다고 보겠지만, 출연한 가수들 중에는 이미 대중가요계 내에서 어느 정도의 입지와 상당수의 올드팬들을 데리고 있고, 가수들 스스로도 누구보다 큰 자부심과 타협할 수 없는 개성이 워낙 강하다. 그런 가수들을 모아놓고 단기적 인기 측정에 국한된 순위 선정 방식의 음악프로그램이나 연말 가요대상 같은 이벤트 형식이 아닌, 예능프로그램에서 매 공연 시 평가하고 ‘탈락’과도 같은 교체를 인정하라는 것은 굉장히 무리수이다. 그리고 그 무리수는 방영 3회 만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20일에 방영된 공연에서 김건모는 7위로 교체가 결정되었지만, 출연 가수들과 제작진의 회의, 김건모 자신의 의지 끝에 재도전으로 번복되었다. 

  방영 후 일부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의 분노는 폭발했고, 담당PD의 경질까지 이어져 프로그램 진행 자체가 부담스럽게 되었다. 서바이벌 형식에 익숙한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에게는 “가장 낮은 점수는 탈락”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당연한 것이고, 그 원칙은 <나는 가수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세히 다시 보면 처음부터 <나는 가수다>는 시청자보다는 출연한 가수들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예를 들어 이소라의 특이한 사생활과 녹화 도중에 일어난 괴벽스러운 언행들은 그동안의 이미지들과는 확실히 다르고, 김건모 역시 7위가 발표 직후 소감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와서 마음이 아프고..”라고 말 할 정도로 지나치게 솔직하다. 그리고 출연 가수들마다 음악에 대한 생각들과 해석, 언행, 연습방식들이 편집 없이 방영되기 때문에, 논란이 된 가수들의 열성 팬들이 아닌 이상, 시청자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무례함과 불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별다른 조치가 없다면, <나는 가수다>는 출연 가수들의 솔직한 언행과 개성으로, 매주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외 유명 가수들 역시 자신들만의 특별한 괴벽과 개성을 이해해 줄 것을 바라며 공연 기획팀에 난감한 요구들을 하고, 정시에 공연하기보다는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1시간 정도 지체하면서 관객들의 원성을 받아도 당당히 자신만의 공연을 하는 것처럼, <나는 가수다>의 출연 가수들도 그들만의 괴벽과 개성이 오늘날 ‘가수’가 된 힘이라 볼 수 있다. 

  이런 특징들을 이해한다면, 처음 기획과는 달리 출연 가수들과 일부 출연 개그맨들이 ‘서바이벌’의 룰을 깨가며 교체 위기의 김건모에게 재도전을 주려는 이유도 공감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가요계의 엄격한 선후배관계를 말하는데 그런 영향도 없지 않아 있었겠지만, 이 프로그램은 오디션이 아닌 진짜 ‘가수’가 나와서 공연을 하는 것이고, ‘가수 김건모’를 포함한 ‘가수’라는 명칭의 큰 의미를 가진 출연 가수들에게 이런 방식의 퇴장은 인정할 수 없다는 항의일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김건모를 비롯하여 앞으로 교체 위기의 가수에게 똑같이 재도전의 의지를 묻는 것은, 자신의 공연과 평가단의 평가에 스스로가 만족하느냐, 아니냐의 냉정한 질문이 될 것이고, 재도전을 결심한 가수는 탈락과도 비슷한 이미지 타격과, 누구보다 열심히 공연준비를 하더라도, 다음 공연 때 청중평가단과 시청자들의 사늘한 시선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은, 재도전에 대한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의 격한 반응에 출연 가수들 역시 재도전을 선택하기가 많이 부담스럽게 되었고, 한 번의 공연에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에 출연 가수들이 즐기는 것이 아닌, 필요이상으로 예민해져 논란거리가 더욱 많아질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담당PD의 경질은 프로그램의 존폐에 영향을 줄 것이고, 계속 진행이 되더라도 프로그램 제작진과 출연 가수들 및 출연 대기 가수들 모두 매회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녹화에 임할 것 같다. 

  <나는 가수다>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예능프로그램이다.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가수들의 공연과 공연 준비과정, 가수들의 사생활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선하다. 얼마나 많은 ‘가수’들이 2000년대 이후부터 공정한 경쟁보다는, 소속기획사와 언론매체의 과도한 상업성과 선정적인 물량공세에 밀려 설 곳을 잃고 퇴장했던가? 또한 변덕스럽고 냉정한 일부 대중들은 먼지 쌓인 예전 음반들을 싼값에 팔아넘기거나 창고에 넣어버렸나? 대중들은 ‘가수’의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지만, 쉽게 잊거나 추억으로만 남긴다. <나는 가수다> 1회 방송 때 이소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점점 나이가 들고 그러니까, 너무 뭘 가리면 노래를 많이 할 수가 없더라고요. 혼자 하는 건 또 재미가 없잖아요.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또 제 노래를 듣고 어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내 마음도 움직이고 노래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라 생각해요.”

  안타까운 현실이다. 왜 출연 가수들은 동료 가수의 교체 위기 순간에 눈물을 흘렸을까? ‘가수’들이 설 곳이 없는 것은 그들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데뷔하고 전성기를 누렸던 시절과는 사뭇 달라진 주변 환경과 대중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나는 가수다>를 통해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가수’들의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어 기쁘고, 논란이 수습되어 그들이 함께 공연 하는 것을 보기 원한다. 또한 앞으로도 ‘가수’들이 설 수 있는 공중파 방송에서의 무대가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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