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 심리학 입문
캘빈 S. 홀.버논 J. 노드비 지음, 김형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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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학기 대학원에서 칼 구스타브 융에 대해 공부하다가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쉽게 읽을 수 있었고 융의 생애와 그의 주장들을 잘 요약했다. 다만 입문에 충실한 책이라, 구체적인 융의 사상들을 알려면 이 책을 읽고 본격적으로 그의 저작들을 읽는 것이 좋다. 나 역시 이 책과 더불어 융의 저작 몇 권을 더 구입했다. 참고로 내용에 비해 책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사실’을 알아내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이론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추측이나 단산(斷産)일 뿐이었고, 이론이 현실의 확고한 사실들과 모순될 경우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41p>


  프로이드와 함께 융은 정신분석학계에서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다. 젊은 시절 프로이드에 영향을 받아 그와 함께 연구 활동을 하면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1912년 융은 <무의식의 심리학>을 출간하여 프로이드와는 다른 이론들을 주장한다. 당시 프로이드는 융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줄 것을 당부하고 <무의식의 심리학>에서 융이 주장한 이론들을 철회해 줄 것을 부탁하나 융은 거절한다. 

  몇몇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융이 프로이드와 결별했다”는 표현을 하는데 나는 오히려 융이 프로이드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정서상 제자가 스승의 이론을 반박하면 ‘패륜아’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데, 반박을 통해 스승의 사상을 보완하거나 발전시킨다면 이것만큼 ‘청출어람’(靑出於藍)과 잘 맞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나는 융이 프로이드의 사상들을 보완하여 더욱 발전시켰다고 생각하고, 방법론적인 면에서 프로이드의 획일적이고 단정적인 이론에 비해, 개방적이고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며 이론을 구축한 것이 융의 정신분석학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이라 본다.



  집단 무의식은 융이 일반적으로 ‘원시적 이미지’라고 부르고 있는 잠재적 이미지의 저장고이다. <62p>


  집단 무의식은 융이 주장한 이론들 중 하나이다. 개인의 경험에 의존하는 개인 무의식과는 달리 집단 무의식은 개인이 삶에서 경험된 적이 없었던 것들이다. 다만 조상들이 이미 경험한 것들과 그에 따른 반응들이 후손들에게 지속적으로 유전되어 후손들도 비슷한(절대 그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경험들과 반응들을 할 가능성이 잠재적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책에서 예를 든 것처럼, 어느 세대 또는 일련의 세대에 의해 학습된 뱀이나 어둠에 대한 공포는 다음 세대로 계속해서 유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전 세대들이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반응들을 축적할수록 후세대들에게는 잠재적 무의식이 더 많이 표출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그래서 인간에게 만족스러운 환경과 체계적인 교육, 다양한 학습기회가 무척 중요하다.



  융은 프로이드처럼 리비도를 성적 에너지만으로 국한하지는 않았다. 사실상 이것이 두 사람의 이론이 본질적으로 다른 점 가운데 하나이다. 융에 따르면 리비도란 정서적인 것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배고픔, 갈증, 성적 욕구라고도 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리비도는 목표 지향적이며 갈망하고 추구하는 형태가 된다. <96p>


  프로이드의 ‘성적 에너지’ 리비도를 융은 ‘정신 에너지’로 확장했다. 이 에너지의 양은 수치상으로 측정할 수 없지만, 지속적으로 축적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평형의 원리). 그래서 리비도는 인간의 인격 체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일정한 양의 에너지(잉여 리비도)는 사용되지 않고 남아,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원형을 구체적인 의식으로 발현(개성화)시킨다.

  융은 리비도의 역류를 ‘퇴행’이라고 주장했는데, 인격의 발달은 의식적인 자아가 환경의 실재를 정신 전체의 여러 욕구와 조화시켜 ‘전진’ 할 수 있지만, 환경적인 요인에 의한 좌절이나 박탈감으로 인해 이 조화가 깨지면 리비도는 환경의 외향적 가치에서 후퇴하여 무의식 속의 내향적 가치로 ‘퇴행’ 된다고 주장했다. 리비도는 욕구의 발현과 축소를 통해 성장하고 빼앗기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융은 인격의 발달이 이러한 ‘전진’과 ‘퇴행’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결국 융에게 있어서 인간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말하자면, 그림자인 동시에 이데아인 것이다.



  앞서 융의 이론들이 개방적이고 다양하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장점은 융 이외의 다른 이론들과 적절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명확하고 단적인 이론들이 부족하여 다른 이론들과 비교할 때, 자칫 독자성이 결여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융의 이론들은 대부분 스스로 임상실험을 통해 체득한 경험의 산물이고, 경험만을 내세워 자신들의 이론에 권위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을수록 잘 정리된 융의 이론들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융 심리학에 관심이 있다면 곧장 그의 저작들을 차근차근 읽는 것도 좋지만, 입문서를 통해 개론적으로 융의 사상들을 먼저 살펴보고 그의 저작들을 읽는다면, 어렵지 않게 융 심리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로 이 책의 역자인 김형섭은 역자 후기에서 융의 이론들과 개념들을 간략하게 정리하는데, 짧은 단락이지만 핵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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