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고객들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일주일이 정말 빨리 간다.

시간은 정확히 가고 있는데 왠지 빠르게 느껴지고,

여유 있는 식사보다 간단한 식사에 익숙해졌다. 

생각과 행동의 비율은 거의 비슷해졌고,

깨어있는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는 것이 잠이 많은 나에게는 유일한 해답이다.  

 

대학원 졸업반에 와서야 학문의 즐거움을 알았으니 나도 참 늦다.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지금까지 배운 것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즐거움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발전한다.

 

가끔 목요일 밤에 영화 보는 것을 이번 학기의 디저트로 정했다.

목요일 수업은 저녁 8시에 끝나서 대략 밤 10시 전후의 영화로 예매한다.

신도림CGV 6관에서 밤 9시 40분에 <수상한 고객들>을 보았다.

수업 후 오랜만에 만난 동기들 때문에 약간 늦었는데,

내가 예매한 자리만 남겨두고 양 옆을 포함한 한 열이 커플들이었다.

비극적인 상황이었지만 열 한 가운데인 내 자리에 앉았다.

 



 

"젊은 친구니까 반말하지, 그럼 늙은 친구한테 반말해?"

 

전직 야구선수였던 보험 설계사 배병우.

뛰어난 친교력과 탁월한 수완으로 보험왕을 차지하여 타 회사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는다.

그러던 중 자신의 고객이 보험금을 노린 자살을 하고,

병우는 경찰로부터 자살방조혐의를 받는다.

순간 몇 년 전에 평소에 알고 지내던 오부장의 부탁으로,

오부장을 비롯한 빈곤층에 속하는 3명을,

비밀리 생명보험에 가입해줬던 기억이 떠오른 병우.

이직을 앞두고 깔끔한 정리를 원했지만,

2년 만기 보험 납입금을 채운 뒤 그들이 의도적으로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들을 찾아간다. 

 



 

"형, 나 게임 끝났어!"

 

"그럼 연장 가!"

 

<용서는 없다>. <부당거래> 등 근래에 류승범이 출연한 영화들을 챙겨본다.

어느 영화에 출연해도 항상 비슷한 느낌을 주는 연기와 배역이지만,

연기의 자연스러움과 맡은 배역의 이해는 정상급인 배우라 생각한다.

이 영화는 류승범을 위한 영화였다.

 

<국가대표>, <아이들>의 성동일은 특유의 개성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드라마와 영화, CF 등 어디에서든 자신만의 스타일로 잘 풀어내고,

명품 조연 배우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화려한 휴가>,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박철민의 연기는 조금 어색했다.

진지한 '기러기 아빠'를 연기하기에는 그동안 쌓은 그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평소대로 연기하기에는 성동일과 배역이 겹칠테니 그것 역시 문제.

그냥 이 영화는 박철민의 외도(?)라 생각한다.   

 

일본 영화에 간간히 출연하던 가수 윤하는 좋은 연기를 보여줬고,

서지혜는 너무나 짧은 출연이 아쉬웠으며,

어느덧 중년 배우가 된 정선경을 보며 예전에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를 떠올렸다.

 

김수미와 정만식, 뮤지션 김형석이 특별출연했다.

 

조진모 감독의 데뷔작으로 무엇보다 주제와 그에 따른 소재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저 죽으면 돈 많이 나와요?"

 

보험 사기를 주제로 한 영화는 많지만,

보험 사기를 막기 위해 분투하는 보험 설계사의 이야기는 드물다. 

초반에는 재미있게 보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조금 고민이 되는 영화였다.

영화 내용이 실화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로,

분명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들 중 하나이다.

영화는 다소 진보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해석했고,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대다수 원하고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었다.  

 



 
"고객님의 꿈이 곧 저의 꿈입니다! 화이팅!"
 

TV나 인터넷 배너 광고로 늘 볼 수 있는 보험회사 광고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보험에 가입하면 마치 굉장한 혜택과 도움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보험은 '만약'을 대비하기 위한 대비책이지만,

'만약'이 현실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만약'이라는 조건들에 불안해 하고,

사람들의 불안은 보험회사와 점쟁이들이 돈을 벌기에 딱 좋은 심리상태이다.

 

내 주위에도 몇 명의 재무 설계사와 보험 설계사들이 있는데,

항상 내게 보험이나 재무에 관심이 있는 주변 사람들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고정 소득 없이 프리랜서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나는 당연히 열외이다.

그리고 이미 오래 전부터 어머니가 내 이름으로 필수 보험들에 다 가입시켰다.  

그래서 아무리 내게 보험과 재무 설계를 의뢰하여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예전에는 일명 "보험 아줌마"라고 해서

극성스러운 보험 아줌마들을 통해 보험 가입하는 것이 썩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요새는 많은 사람들이 재테크와 보험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재무 설계사와 보험 설계사들이 인기 직업이 된 것 같다.

이제는 주로 남자들로 매일 양복과 서류 가방을 들고 고객들을 만나며,

외모와 언변, 재치로 먹고 살아야 하는 그들은 오늘도 구라를 친다.

 

"고객님의 꿈이 곧 저의 꿈입니다!"

 

이 말이 구라가 되지 않으려면 가입부터 만기 또는 해약 때까지,

설계사들은 고객의 삶 전 영역에 진심이 묻어나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

물론 TV나 전단지 광고에서는 그럴듯 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포장이 아닌 현실에서도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실적 올리기에 급급한 수완이라면,

고객을 그나마 행복하게 만들어 줄 보험과 재무관리의 역할이,

설계사와 회사의 이익 챙기는 목적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그들이 맡은 고객을 고객(高客)으로 대우해야 한다. 

 

보험 사기의 목적이 아니라면,

보험 가입 후 의도적인 자살과 사고로 죽음을 택하려는 사람들을 누가 돌봐줄 것인가?

설계사들은 겉으로는 보험금을 주며 애도하지만,

속으로는 결별을 고하며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려 든다.

자본의 논리라면 사람 목숨은 상품에 불과하다.

내가 지금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건가?

 

진정한 복지는 돈과 정책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OECD 가입 국가들 중 연평균 자살률 1위(약 6%)인 우리나라가,

자살률을 2~3% 정도로만 떨어뜨려도 사회 복지가 향상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떨어뜨릴 것인가?

 

사람 사는 세상이 되어야지,

사람 죽는 세상이 되면 누가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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