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절규 - Retribut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일본 호러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상적으로 본 것도 없고 대부분은 엽기나 고어(gore)물로 빠지게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본 특유의 연출은 공감하기 어려웠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장르는 모르고 그냥 제목만 알았다.
그리고 익숙한 배우들이 나오길래 흥미를 가졌을 뿐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내 방에서 불을 모두 끄고 자기 전에 보았다.
주변이 고요하고 시계 분침 소리만 분명할 만큼 분위기는 최적이었다.
"우리 둘이서 어디론가 가자."
간척사업이 한창인 공사장에서 한 남자가 저항하는 여자를 물웅덩이에 질식시켜 살해한다.
현장검증을 하던 요시오카 형사는 자신의 옷단추와 똑같은 단추를 발견하고,
감식반의 지문검사 결과, 시신에서도 자신의 지문이 나오자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후 죽은 여자의 유령이 그를 찾아와 괴롭히고,
연이어 같은 수법의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요시오카는 애인 하루에와도 멀어지고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다.
그러나 죽은 여자의 유령은 계속 그를 찾아왔고,
그러던 중 15년 전에 있었던 기억이 떠올라 문제의 실마리를 찾으려 든다.
"영원히 거기 갇혔어요. 그리고 오래 외로웠어요."
일본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장르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나는 이제서야 그의 첫 영화를 보았다.
간단한 느낌은 일단 영상의 색감과 특이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몇 편 더 보아야 할 것 같은데 기회가 된다면 볼 생각이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야쿠쇼 코지는 중후함이 느껴지는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내면적인 갈등과 심리 묘사는 영화를 보는 동안 잘 몰입이 되었다.
많은 영화에 출연했는데 영화를 그를 본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카세 료와 일본의 국민배우 오다기리 조가 특별출연했다.
"난 당신을 용서해요. 오직 당신만을."
일본 호러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령은
그저 보는 사람들의 비명을 위한 도구로 밖에 이용가치가 없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공포를 주기보다,
뭔가 부자연스러움 속의 섬뜩함이 있다.
더구나 이 영화에서 유령은 인간의 내면적 불안감을 형상화 한 것 같다.
즉, "귀신에 홀렸다" 는 말처럼 이성과 감정을 초월한
일종의 무의식과 빙의와 같은 것이랄까?
다른 한편으로는 오래된 기억 속의 트라우마가
어느 순간에 기억이 나면서 그로 인한 자책감과 후유증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면에서 외면으로 발현될 때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인간의 내면적 불안감이라 볼 수 있다.
영화 중간 중간에 작은 지진들이 발생하는데,
공통점은 집 밖이 아닌 집 안에 있을 때만 발생한다.
나는 이것이 감독이 만든 의도적인 장치라 생각한다.
즉 지진이 어느 순간에 발생하게 될 지 모르듯이,
어떠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위험과 죽음은 삶에 늘 대기 중이다.
"나는 죽었다. 그래서 모두가 죽어야 한다."
영화를 다 본 후 내용이 쉽게 정리가 되진 않았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한데,
나는 영화의 배경을 실마리로 잡았다.
간척사업이 벌어지는 공사장과 허름한 아파트, 재활용품 공장, 낡은 정신병원들과.
정신병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 이혼과 재혼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엘리트 층의 남자,
가정이 파괴된 의사 아버지와 비행 청소년이 된 아들.
이 모든 것들은 영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요소들이다.
바닷가 근처에서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벌어지는 공허감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불안감과 소외감.
개인적으로 아니면 집단적으로,
사람들은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내면적 불안감과 소외감을 키워나간다.
이 불안감과 소외감은 타인과 자신이 속한 사회와 단체를 파괴시킬 것이고,
언제가는 자신도 원치않는 손에 이끌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그 원치않는 손이 가족이거나 믿었던 친구가 될 수 있고,
생면부지의 사람일 수도 있다.
내면적 불안감과 소외감.
우리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지금 이것들과 싸우고 있고,
한 사람만의 문제가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
내가 불행하다면 모두가 불행해야 하고,
내가 행복하다면 모두가 행복하든 불행하든 상관없다.
내가 죽었다면 모두가 죽어야 하고,
내가 살아있다면 모두가 살아있든 죽어있든 상관없다.
이게 우리 시대의 공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