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 Paju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예전부터 봐야겠다고 했던 영화였는지 이제서야 보았다.

2009년 12월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약간의 사정으로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2010년 4월에 장소는 달랐지만 그때 보기로 한 사람과 같이 보았다.

그냥 서로가 언젠가 이 영화를 같이 볼 것이라는 생각만을 염두한 채 시간만이 흘렀다.

나른한 오후였지만 난 감기에 걸려있었고,

서초구와 동작구 경계에 있는 카페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오빠, 저 불교신자거든요? 교회 봉고는 절대 안타요."

 

신학생이던 중식은 운동권에 가담하다가 피해다니는 신세가 된다.

평소에 좋아하던 결혼한 여선배의 집에 피신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식은,

선배의 아이가 자신으로 인해 화상을 당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파주에 있는 목회를 하고 있는 형의 교회에서 공부방을 열어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러던 중 은수와 은모 자매를 만나게, 되고 중식은 은수와 결혼하게 된다.

언니 은수와 결혼한 중식을 마음에 안들어했던 은모는,

돈을 벌어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친구와 함께 집을 떠나고, 그 날 은수는 사고로 죽게된다.

언니의 사망소식을 들은 은모는 내키지 않지만 중식과 같이 살게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호감을 갖게 되지만, 은모는 그런 자신이 두려워 파주를 떠난다.

그리고 3년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은모는 철거대책위원장이 되어있는 중식를 만난다.       

 



 

"성경에도 아흔아홉 마리에 양보다 잃어버린 한마리 양이 더 중요하다고 했으니까요."

 

<알포인트>,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이선균은 섬세한 내면연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선균이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한 표현으로 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 때문에 '잘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배우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는 그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졌고, 선한 이미지가 잘 어울렸다. 

서우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봤는데 수준급의 연기실력을 가진 배우라 생각한다.

중학생부터 성인을 오가는 설정이었는데 각 설정마다 어색하지 않은 연기를 보여줬다.

그의 냉소적인 말투는 보는 나도 기분이 나쁠정도로 좋지 않았지만, 그것도 연기의 일부다.

현재 TV드라마 <신데렐라의 언니>에 출연하고 있는데 연기 호평도 좋은 것 같고,

많은 경험이 필요하겠지만 앞으로가 기대되는 배우라 생각한다.

특별출연한 이경영은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줬고,<똥파리>의 정만식을 보아서 좋았다.

 



 

"이런 일 왜 하세요? 이 일이 형부한테 무슨 보람이 되죠?"

"글쎄. 처음에는 멋져 보여서 한 것 같고, 

 그 다음에는 내가 갚을 게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 그냥 늘 할 일이 생기는 것 같애. 끝이 안나."

 

묘한 끌림에서 시작한 중식의 일들은 항상 비극으로 종결되었고,

처음에는 비호감이었던 중식을 점점 사랑하게 된 은모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

그 두려움을 미움으로 바꾸고자 언니의 사고에 대해 진실을 은폐하려는 듯한 중식을 음해한다.

이 두 사람의 묘한 긴장관계는 영화 내내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결정적으로 중식은 은모에게 헌신적이지만, 은모는 중식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한다.

 



 
"은모야. 난 한번도 널 사랑하지 않은 적 없어."
 

언뜻 보면 이 영화는 기독교의 값없는 사랑을 말하고 있는듯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충동적이고 앞날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는 중식은,

스스로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에 자신의 정체성을 느끼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들은 성공할 가능성이 극히 적고, 자신도 그런 현실에 익숙하다.

그 현실에 대한 삶의 의미로 사랑을 찾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은모 역시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도피하지만 번번히 실패하는, 중식과 비슷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둘은 서로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고,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안개 속을 걷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안개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되고,

그 후에는 서로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있다.

 

영화에서 '파주' 는 마치 김승옥의 <무진기행>처럼 잠시나마 이상실현의 공간 같이 보이지만,

그 공간은 현실 속의 또 다른 현실인 것이다.

안개가 자욱하여 그 현실이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점점 안개가 걷혀지는 순간이 다가오면

그 안개와 함께 사라지는 자와 안개 속을 탈출한 자가 엇갈린다.

그러나 안개를 탈출해도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기에, 안개 속 현실과 같이 불안하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대상이나 소망이 자신의 삶 속에서 

지속적인 삶의 의미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지치고 불안해 한다.

그 피곤함으로 인해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안개 속 현실의 불안감은 그 곳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무언가를 붙잡는다.

그 무언가를 붙잡는 순간,

자신 외에 누군가는 그 안개 속 현실의 일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현실의 처벌을 기다려야 한다.

그 누군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