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전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가끔 영화를 책보다 못한 매체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나도 한 때 그런 생각을 잠시나마 가졌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화나 책이나 똑같다고 본다.

둘 다 눈으로 보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 역시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는 상상력이 좀 제한되는 기분이 들지만 구체적인 분위기와 심정이 느껴지고,

책은 상상력의 제한은 없지만 구체적인 분위기와 심정까지 이해하기에는 어렵다.

결국 눈으로 보지만 어디를 집중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다.

 



 

"아니, 너 뭐냐?

 

"나? 몸종이야."

 

천한 몸종 신분인 방자는 몽룡을 따라 청풍각에 가게 되고,

청풍각 여주인의 딸 춘향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러나 방자뿐 아니라 몽룡도 반하고

이후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얻으려는 묘한 공방전이 시작된다.

마 영감의 도움을 받은 방자는 몽룡보다 더욱 적극적은 애정공세를 펼치고,

결국 방자와 춘향은 은밀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

 



 

"이런 문제는 예민하니까, 나서지 말랬잖아. 어?"

 

<싱글즈>, <청연>의 김주혁의 사극연기는 꽤 좋았다.

나름 연기변신을 시도했는데 괜찮은 느낌과 분위기였다.

영화보다 TV드라마계에서 박신양의 뒤를 이어 멜로 연기 전문배우가 될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생결단>, <부당거래>의 류승범은 어떤 배역이든 자연스럽다.

그리고 어떤 배역이든 자신의 연기스타일이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그의 연기는 늘 비슷하다.

그게 영화마다 강점이자 약점처럼 다가온다.

 

TV드라마에서는 간혹 보았지만 영화에서 본 것은 처음인 조여정은,

능숙한 연기를 했고 파격적인 노출연기도 선보였다.

우연히 그녀의 연예계 데뷔시절을 기억하는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얼굴과 목소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나 체형이 좀 변해 아쉽다.

 

<올드보이>, <그림자 살인>의 오달수는 마 영감역이 너무 잘 어울렸다.

그의 연기는 다른 명품 조연배우들과 다른 익살스러움이 있는데,

이 영화와 그의 연기는 환상적인 조화를 이뤘다.

 

<마더>, <부당거래>의 송새벽은 이 영화로 주목을 받았는데,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아마 관객들은 이런 배우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파이란>, <잘 알지도 못 하면서>의 공형진과 <강적>, <악마를 보았다>의 최무성,

나이들어도 아름다운 김성령과 오랜만에 본 섹시스타 정양을 볼 수 있었다.

 

<부당거래>의 오정세도 명품 조연이 될 재목이다.

 

<음란서생>의 김대우 감독은 사극을 통한 시대 풍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아직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평가하기 이르지만,

분명한 것은 색(色)의 미를 바탕으로 현대와 고전을 연결하려는 센스가 뛰어나다.

 



 

"양반의 여자가 아니고 원래 제 여자예요."

 

사극은 TV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고,

특히 TV에서 사극 드라마는 이미 고정적으로 제작되고 있다.

예전에는 주로 역사를 거의 그대로 살려가며 제작했다면,

요즘은 재구성의 범위가 넓어져 역사는 그저 모티브에 가까울 정도이다.

그래서 사극을 수단으로 현대 멜로와 액션이 난무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각과 해석에 감동 받고 박수를 보낼 수 있지만,

사극다운 맛이 사라진 것 같고 한편으로는 사극으로 어느정도 흥행을 보장 받으려는 듯 하다.

 

그렇다면 장점으로 지적한 새로운 시각과 해석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일단 원작이나 역사에 비추어 관객들이 

"그럴 수도 있었겠다" 정도의 반응을 이끌어 내면 성공이다.

이 영화는 내게 그런 반응을 이끌어 냈고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높다.

왜냐하면 어디까지나 민담(民譚)이기 때문이다.

춘향과 방자는 신분이 같았고 기생과 양반의 불꽃 같은 사랑은 거의 짧은 로맨스로 끝났다.

더구나 반상의 법도가 엄연히 있었던 조선시대에서 이런 일은

양반에게는 엄청난 손해이고 상놈에게는 엄청난 횡재였다.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나기에는 조선시대는 너무 약았다.

 



 

"못 이룬 거니까 해주고 싶어서요."

 

<춘향전>은 조선시대의 서민들이 좋아했던 소설들 중 하나였다.

왜 그랬을까? 혹시 현실에서는 극히 드물지만 가능성이 아주 없던 것도 아닌,

권선징악과 신분상승의 조화에 따른 합법적인 체감효과 때문이 아니었을까?

'엄청난' 일이 자신에게도 실제로 벌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 희망이 곧 조선후기에 평등사회를 위한 민중투쟁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비록 방자와 춘향이가 서로의 신분적 한계를 인정한 채 사랑했다 하더라도,

춘향은 몽룡과의 로맨스를 더 원했을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영화 결말부분에서 춘향이가 몽룡을 따라 나설 때,

춘향이 방자를 데려가겠다는 말과 몽룡이 그 말을 듣고 방자를 데려가는 것,

무엇보다 그 이전에 몽룡이 춘향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 자체가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그 이해가 어려웠던 점이 영화 초반부터 느꼈던 비극과 연결되어 다소 해결되긴 했다.

 

다른 시각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오늘날에도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을 바라는 여자들도 꽤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아직 우리 사회는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 했다.

여자와 하룻밤 자기를 원하며 작업을 거는 남자들에게 여자는 그저 물건일 뿐이다.

그러나 남자 역시 쉬울 수 있어도 때론 온갖 수치와 굴욕을 당하면서까지, 

기필코 한 여자를 얻으려는 열정도 어떻게 보면 사랑이다(거짓 사랑일지라도).

그래서 여자가 보기에 오늘날 '방자' 같은 남자를 찾기 어렵고,

'몽룡', '변학도' 같은 남자들은 널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남자가 보기에도 그렇다.

 

지금 진실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영화들이나 문학들 속의 연인들보다

더 아름답고 고결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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