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영화 - Enlightenment Film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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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은 비가 왔었다.

언제부터인가 주말에는 비가 자주 왔다.

비 오는 날은 집에서 음악 들으며 책을 보거나 잠 자는 것이 하루일과지만,

예매된 영화 때문에 몸을 일으켜 옷을 입고 집 밖을 나갔다.

 

상암CGV까지 가는 길은 평소보다 멀게 느껴졌다.

내 곁을 스치는 사람들을 주의깊게 보았는데,

유독 연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같은 우산 속에서 서로를 의지한 채 걷고 있었다.

다행이 내 우산은 초췌한 나의 모습을 가리기 충분했다.

사람들은 즐겁다.

 

5관에서 오후 4시 5분에 <계몽영화>를 보았다.

예상대로 관객들은 10명도 채 안 되었다.

가장 좋은 자리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한 가족의 3대 속에 숨겨져 있는 과거사.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손녀는 알게 모르게 씻을 수 없는 과거를 가지고 있다.

과거의 흔적들은 현실에서 문제로 발생되고,

그들의 남편과 아내, 자녀들은 고스란히 그 피해자가 된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결국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서로가 궁금해 한다.

 



 

"정태선, 너희 집 안 되게 웃겨."

 

박동훈 감독의 영화는 처음이었는데 괜찮았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대극을 연상케 할 만큼 복잡한 구성이었는데,

수준있는 연출력을 보여주었고 소재도 참신했다.

 

<바람의 화원>, <의형제>의 박혁권만이 내가 아는 유일한 배우였다.

평범한 외모이지만 정제되어 있는 연기는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에서 실속인 조연급으로 활약하고 있다.

 

<거미숲>의 정승길은 뒤늦게 알았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처음에는 못 알아봤다.

이 영화에서는 주연급으로 비중있는 배역을 맡았는데,

탄탄한 연기실력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내가 살면서 가장 싫은 사람이 누군지 알아? 경상도 출신에 예수 믿는 사람!"

 

3대를 통해 어쩔 수 없이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동양척식회사의 직원으로 일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는 동족에 대한 미안함과 괴로움이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동족을 배신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부유한 유산을 이어받고 

사회 내 영향력을 가지며 겉으로는 기세등등하지만,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폭군이자 알콜 중독자이다.

그리고 겁이 많고 나약한 인물이다. 

 

손녀는 아들을 데리고 미국에서 생활하고

남편은 한국에서 매형 회사에서 일한다.

하지만 부부관계는 명목 상으로 존재할 뿐,

순정파 남편을 두고 미국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남자가 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어눌함과 어리석음을 탓하지만,

정작 자신도 그 부류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3대로 이어지는 트라우마는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한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은 기억에서 사라진다.

남는 것은 자신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자기합리화이다.

 



 

"너 사진을 왜 이리 찍어? 왜 이렇게 구석에 서 있냐고?

 야 임마! 가운데 서 있어야지! 가운데!"

 

감독은 1931년, 1965년, 1983년 등 구체적인 연대를 기록하며

아버지, 아들, 손녀가 살았던 시대상황을 설정한다.

그들은 철저히 시대의 중심에서 삶을 살았고,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서로 자신의 혈육들을 비판하지만 자신도 똑같은 부류이며,

말년에는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과거의 추억을 그리워 한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살아남았지만 그들이 저질렀던 불법행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조상들의 불의의 트라우마는 지속적로 전이되어 언젠가는 드러난다

그리고 당신도 그런 상황이라면 그들처럼 비슷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평가된다.

불의에 대한 단죄 역시 살아남은 자들의 것이고,

정의에 대한 칭찬 역시 살아남은 자들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낱낱이 구별하여 처벌과 보상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독립운동을 하거나 불의에 항거했던 사람들은

그에 따른 보상도 받지 못한채 지금도 가난과 울분의 삶을 살고 있다.

반면에 친일파는 친미파로 변모하여 권력을 계속 유지했고,

부패한 정치인이나 기업인, 그의 자손들은 지금까지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이들 중 아무도 자신들의 과거행적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도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간다.

 

과거사가 완벽히 청산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역사는 그들의 만행을 기억하고 있고

분명 그 단죄는 어떤 방식으로든 받게 될 것이다.

보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그것이 어떤 방식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희망고문일지도 아니면 실제 고통 받고 일지도..

신이 있다면.. 공의는 그의 의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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