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스 오브 뉴욕 - Gangs of New York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매일 주말과 같은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아쉽게도 원칙적으로는 유효기간이 있는 행복이지만,

필사적으로 뭔가를 하지 않으면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 된다.

그러나 하루 24시간 중에 3시간 정도 영화를 보는 것은 나쁜 투자가 아니다.

어떤 영화를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화는 내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알려주고 깨닫게 한다.

 

이 영화는 미국 영화계의 레전드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감독이

1977년부터 2002년까지 기획하고 제작했다고 한다.

런닝타임은 164분이나 되어서 저녁부터 보았는데 다 보고 나니 밤이 되었다.

 



 

"파이브 포인츠에서 가능한 일이다.

 아침에는 사람을 목 매달고 그 날 저녁 춤을 추다니.."

 

1846년 미국 뉴욕시의 파이브 포인츠에서는

개신교 토착민들과 가톨릭 이주민들 간에 대규모 싸움이 벌어졌다.

장 시간의 유혈 충돌은 토착민들의 승리로 끝이 나고,

이후 영국과 백인계 토착민들은 아일랜드와 흑인계 이주민들을 차별하며 강압한다.

그렇게 16년의 세월이 지나고 나타난 암스테르담 발론.

그는 16년 전 가톨릭 이주민들의 우두머리였던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개신교 토착민들의 우두머리이자,

현재 뉴욕시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빌 커팅 밑에서 일하게 되고 그의 신임을 받는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며 아버지가 못 이룬 일들을 준비한다.

 



 

"당신은 대단한 싸움꾼이지만 계속 싸울 수는 없어."

 

<블러드 다이아몬드>, <셔터 아일랜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는

<타이타닉> 이후 하락세였던 자신의 입지를 이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 회복한다. 

지금은 명배우로 자신의 경력을 화려하게 쌓아가고 있지만,

이때도 지금만큼이나 준수한 연기를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마스크>, <미녀 삼총사>의 카메론 디아즈(Cameron Diaz)는

주연도 아니고 조연도 아니었다.

내 생각에는 조연에 가까운 단역이었다.

또한 출연한 여배우들 대부분이 몸과 마음을 다해 열연했지만,

그녀의 연기는 열연했다고 볼 수 없었다.

다만 감독이 상투적인 로맨스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넣은 캐릭터였다.

 

<E.T.>, <가을의 전설>의 헨리 토마스(Henry Thomas)를 오랜만에 보았다.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 그 모습 그대로다.

 

<트로이>, <그린 존>의 브렌단 글리슨(Brendan Gleeson)은

강력한 포스를 보여 주었던 영화 초반에 비해, 후반에 너무 어이없게 죽었다.

 

<빌리 엘리어트>의 과묵한 아버지 게리 루이스(Gary Lewis)가 조연으로 출연했고,

<테이큰>, <러브 액츄얼리>의 리암 니슨(Liam Neeson)이 단역으로 출연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Daniel Day-Lewis)는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발견한 인상적인 배우였고 가장 돋보이는 연기를 했다.

 

<셔터 아일랜드>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 영화가 그의 2000년대 첫 영화였고,

긴 시간 준비한 흔적들이 영화 곳곳에 보였다.

특히 배경 세트는 정말 최고였다.

그러나 그의 특징이지만, 영화 내용면에서는 뭔가 화끈한 면이 부족했다.

 



 

"피는 칼날에 묻어 있어야 된다."

 

영화는 19세기 중, 후반의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무법천지의 혼란한 사회상을 표현한다.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억눌렀고 조직의 우두머리가 죽으면

더 강한 조직의 우두머리 밑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영화를 보면서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별 다른 차이를 못 느꼈다.

우리나라도 해방 전후로 많은 조직 폭력배들이 생겨나 활동했고,

틈만 나면 지, 구역 확장을 위해 유혈 충돌을 벌였고 정치 세력과 결탁했다.

 

세월이 흘러 그들의 무용담은 전해 내려오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지금은 국사 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을 만큼 존재감이 적다.

하지만 분명 그들은 존재했었고 공통적으로 "이 나라를 위해 싸운다"라고 외쳤다. 

그것이 전쟁이든 한낱 조직 폭력배들 간의 싸움이든,

근현대 미국의 뉴욕과 한국의 서울은 많은 사람들의 피와 고통으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여기 존재 했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 같다."

 

무법천지의 혼란한 생활이 오랫동안 지속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반란이나 민란은 시일이 걸리더라도

공권력에 의해 진압 되거나 내부 분열로 와해 되었다.

하지만 시대적으로 반란과 민란이 발생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파악하려는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없다.

그저 반란과 민란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볼 때 사회적 잡음(雜音)에 불과하다.

 

오늘날 소통이 부재하거나 무시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화와 타협은 이상적인 협상의 도구들이 되었다.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상태에서 감정에 치우쳐 당긴 방아쇠는 순식간에 총격전이 되고,

모욕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차분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인내가 필요하다.

 

어디까지, 언젠까지 이해하고 용서해야 할 지 고민 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쟁보다 평화가 나으며 싸움보단 화해가 더 낫다는 것은 명백하다. 

당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때로는 옳다고 믿는 신념 하에 투쟁도 필요하겠지만,

나는 소통이 부재하거나 무시되는 시대가 계속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느 시대든 사람들이 소통을 통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시대가 정한 법과 질서를 지켜준다면,

유혈충돌은 많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연히 알고 있는 것들을 현실로 실천하지 못했고,

현실에서 실천하지 못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적인 방법들이 이상적인 방법들로 둔갑한다.

 

평화와 안정은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만들어지거나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 지를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만약 사람들 간의 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분열과 분쟁만 일으킨다면,

기회를 엿보는 악의 무리들에게 있는 것마저 다 뺏기게 될 것이다.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이미 우리 사회 문제들의 해답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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