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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선물 - 커피향보다 더 진한 사람의 향기를 담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히말라야 커피로드 제작진 지음 / 김영사 / 2010년 12월
평점 :
Starbucks, Hollys, Coffee Bean 등등..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는 커피문화가 새로운 도시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시내 어디서든 커피전문점을 찾을 수 있고 사람들로 북적인다. 적게는 200원부터 많게는 10000원에 가까울 정도로 가격차이가 나지만, 제조법이 각기 다른 다양한 커피들은 사람들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평소에 커피를 즐겨 마시지는 않지만 커피만의 부드럽고 진한 향을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외식을 하고 난 후 마시는 커피 맛은 고소하면서도 달았고, 서로 간의 대화는 즐거웠다. 그러나 내가 마시고 있는 커피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고, 생각을 했더라도 남미나 아프리카를 떠올리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적은 임금으로 커피농사를 하는 모습을 연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마셨던 커피가 짐작과는 달리 같은 아시아 나라인 네팔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 한잔에는 네팔 사람들의 꿈과 눈물, 감동이 녹아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커피 생산지로는 흔히 대규모 농장이 있는 브라질, 혹은 에티오피아 같은 아프리카를 떠올린다. 그런데 우리가 마시고 있는 커피 중 네팔, 그것도 히말라야 고지대에서 온 커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험난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세계의 지붕’, 등반가들의 끊임없는 도전의 대상, 그런 히말라야 자락에서 커피가 자라고 있고 많은 양이 우리나라로 들어오고 있다. 게다가 어떤 화학 농약이나 화학 비료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커피이며, 생산지의 농부들에게 정당한 몫의 이윤을 돌려주는 공정무역 커피라는 점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13p>
이 책은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있는 말레 마을을 배경으로, 마을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사연들과 그들에게 있어서 커피농사가 가져다주는 삶의 의미들을 소개한다. 실제로 EBS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방영했었기에, 책을 읽는 동안 내레이션 대본을 읽는 기분이었다. 또한 컬러사진들을 삽입하여 현장감을 더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말레 마을 사람들의 사연들은 안타깝다. 네 자녀의 어머니이자 젊은 과부인 미나는 네 자녀의 양육을 위해 커피농사를 시작하지만 의욕만 앞세워 어려움을 겪고, 움나트는 커피농사를 통해 큰돈을 벌고자 했지만 뜻밖의 자연재해로 인하여 열심히 심은 커피나무들이 피해를 받는다. 좌절을 느낀 움나트는 인도로 이주노동을 떠나고 동생 수바커르가 형을 대신하여 커피농사를 이어받는다. 부지런한 커피농부 이쏘리는 품질개량을 위해 직접 유기농 비료를 만들고 자신만의 독특한 농사법으로 커피를 재배한다. 이외에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인도나 두바이로 이주노동을 떠나는 사람들과 돈이 없어 상급학교를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말레 마을 사람들의 애환과 커피농사가 가져다주는 꿈과 기쁨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오늘도 말레 마을의 커피는 서울 시내 카페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연인들의 달콤한 대화에서, 점심시간 직장인들의 잠깐의 휴식 속에도, 말레 마을 커피는 우리와 함께하고 있었다. 우리가 말레 마을 사람들의 그 많은 사연을 다 알 순 없어도, 커피의 진한 향기가 우리 가슴에 남는 것으로 커피 농부들의 사랑과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325p>
한해 커피농사를 통해 버는 돈은 우리나라 돈으로 20만원도 안되지만, 말레 마을 사람들에게는 큰돈이자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재배한 커피열매는 화학비료나 농약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낸 천연 양식이자 마을 사람들의 정성과 염원이 담긴 작품이다.
재미있는 것은 커피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말레 마을 사람들이 커피 만드는 법을 몰라 EBS제작진들이 취재하기 전까지 아직 마셔보지 못했고, 만드는 법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커피를 즐겨 마시게 되었다는 글을 읽으면서 순박한 그들의 삶에 미소가 지어졌다. 또한 한해 수확한 커피를 등에 지고 걸어서 6시간이나 걸리는 굴미커피협동조합으로 가는 걸음은 설레임과 기쁨의 순간이었다. 1년 동안 자신들이 노력하여 거둔 수확을 평가받고 그에 따른 돈을 받는 것과 그 돈으로 자녀들의 학비와 생활비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먼 길이지만 힘들지 않고 걸어가게 하는 힘을 주었다.
말레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으로 ‘아름다운 가게’의 브랜드인 ‘아름다운 커피’에서는 2006년부터 네팔과의 커피공정무역을 체결하여 커피생산자들과의 공정한 이익배분을 하면서 커피원두를 수입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말레 마을 사람들의 삶이 우습거나 미개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커피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농부의 진실한 노력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근래에 뉴스나 신문을 보면 식료품에 이물질이 발견되거나 유효기한이 지났는데도 판매하는 유통업체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먹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비상식적인 일들을 되풀이 하게 되면, 판매자와 소비자 간의 불신만 쌓이고 앞으로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미개하고 우스운 것일까? 오히려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커피 한잔의 여유”라는 말처럼 커피는 사람들에게 생각 할 수 있는 시간과 대화와 휴식의 시간을 준다. 그리고 커피를 다 마시면 여유보다는 바쁨이 찾아온다. 그러나 커피 한잔에 담겨져 있는 진실은 아는 사람만 안다. 커피는 마시는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지만, 사람들의 손에 쥐어지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이 진실하기에 지금 내가 마시는 커피가 큰 힘이 된다. 오늘 마시는 커피는 유난히 따뜻하고 맛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