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베트남 견문록 - 외교관 임홍재, 베트남의 천 가지 멋을 발견하다
임홍재 지음 / 김영사 / 2010년 11월
평점 :
어릴 때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과 에릭 웨스턴 감독의 <트라이앵글>에서 본 베트남은 처절한 전쟁과 빈곤한 사람들의 나라였다. 프랑스와 미국은 1946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을 자신의 나라로 만들고자 했으나 모두 실패했고, 국제적인 망신과 지탄을 받았다. 그리고 베트남인들은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처럼 허약해보였고, 아직 문명화가 덜 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디까지가 진실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처음 접한 베트남은 어쨌든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이런 베트남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된 것은, 무엇보다 고등학교 때였다. 나는 그때 월남전의 발생배경과 의미를 배웠고, 베트남 역시 아시아의 약소국으로 우리나라와 같이 강대국의 식민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근래에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한 <굿모닝 베트남>을 보고 베트남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나 그 궁금증은 어디까지나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기는 일시적인 궁금증과 같은 것이었고, 금방 사라졌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처음 받아본 순간, 예전에 가지고 있던 궁금증들이 다시 몰려왔고, 약간의 흥분감을 느꼈다. 前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로 오랫동안 있었던 저자가 소개하는 베트남은, 내게 있어서 미지의 땅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시간 개념과 박자는 우리와 다르다. 베트남 사람들은 얼리 버드(early bird) 즉, 새벽을 깨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연과 역사를 통해 그들 나름대로의 시간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인내이다. 인내로 자연재해와 전쟁을 극복한 사람들인 그들은 죽창을 가지고 프랑스를 이겼고 재래식 무기를 가지고 미국을 이겼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현대기술이 없어도 얼마든지 생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기다리는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247p>
이 책은 관광을 목적으로 써진 책이 아니다. 마치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보고서처럼 작성한 기분이 느껴졌다. 초반부에는 저자의 강점을 살려서 우리나라와 베트남 간의 국제교류에 대해 자세히 적었고, 중반부에는 베트남의 역사, 후반부에는 베트남의 문화에 대해 적었다. 개인적으로 중반부는 다소 지루하게 다가오는데, 왠지 저자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다른 베트남 관련 서적들을 잘 정리한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베트남인들의 소박한 생활의식과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모습들이었다. 그들은 발달된 문명 속에서 살진 않았지만, 무엇이 인간과 자연에게 좋은 것인지 알고 있었고 후대에 전했다. 또한 외세의 침입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나라를 빼앗겼지만, 다시 찾는 과정은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지금 살펴봐도 미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승산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는 그들이 전쟁의 승리자라고 되어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베트남인들은 약해보이지만 무척이나 강한 민족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언제부턴가 베트남 음식점 특히 쌀국수집이 많아졌는데, 나도 몇 번 먹어본 적이 있다. 그게 진짜 베트남 음식일지는 모르겠지만, 베트남 음식을 베트남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신기함을 느꼈다. 또한 많은 베트남 처녀들이 우리나라 남자들과 국제결혼을 하여 ‘사돈의 나라’가 되었다. 그만큼 베트남 문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보거나,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베트남이 미개한 나라이고 베트남인들의 낮은 문명화를 우습게 볼 수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베트남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결코 그런 말을 할 수 없다. 또한 이 책을 읽는다면 베트남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질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