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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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수의 신작 <아불류시불류>를 발견해서 읽게 되었다. 개인적로 이외수의 소설보다 이런 소품집 같은 책이 좋다. 군 복무 중 <바보바보>를 읽었는데 지금도 몇몇 글귀들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이 책을 읽었다. 
  


  15  대한민국 정부가 진실로 녹색성장을 꿈꾼다면 먼저 갈색으로 변해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부터 녹색으로 바꾸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자연은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녹색으로 성장한다. <22p> 

  오늘날 젊은 세대들에게 익숙해진 딱딱한 의자와 책상으로 둘러싼 열람실과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유랑생활. 이외수가 말하는 녹색이란 자연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문화생활을 통해 잃어버린 낭만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웃음보다는 슬픔이, 기쁨보다는 냉정이, 만족보다는 끝없는 탐욕이 젊은 세대들을 겉늙게 만들었다.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인데.. 진정한 녹색성장의 첫걸음은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웃음을 잃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한편, 자연은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녹색으로 성장하는데 지난 정부들은 편의를 위해 자연을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이제야 녹색성장을 외치나 이미 생태계는 무참히 파괴되었다. 먹이가 사라진 야생동물들은 산 밑으로 내려와 먹이를 찾다가 지나가던 차에 치거나 사람들의 손에 잡혀 죽고, 물고기들은 폐수와 오물에 숨이 막혀 죽어간다. 나무들은 등산객들의 미처 끄지 못한 불과 벌목에 잘려나간다. 자연과 인간 모두 인간의 손에 신음하며 고통 받고 있다. 

  26  인간은 딱 두 가지 유형밖에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유형은 자기와 생각이 같은 사람, 한 유형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와 생각이 같은 사람은 좋은 놈,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나쁜 놈이다. 이상한 놈? 그런 건 없다. <29p>

  우리 안에 이분법이 생긴 것은 언제부터일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주변 사람들을 묶거나 나눠버리고 자기편과 반대편을 구별해두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쁜 놈이라 한다면, 그 옛적 폭군과 무엇이 다른가? 하물며 가까운 가족들도 항상 자기의 생각과는 다른데..

  68  믿음은 마음에서 만들어지고 오해는 머리에서 만들어진다. <62p>

  믿음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어지지만, 오해는 머리에서 시작해 행동으로 옮겨간다. 아무리 강한 믿음이라도 오해의 불씨는 거대한 믿음의 숲을 불태우고, 아무 것도 남지 않으면 믿음의 대상도 역시 없다. 오직 새로운 믿음의 대상만이 그 자리를 채운다. 

  157  담배 끊은 지 2년이 넘었는데 나를 만나면 담배를 좀 줄이라고 충언해주는 친지들이 많다. 내가 골초였던 기억을 미처 수정하지 못한 분들이다. 끊었습니다. 라고 말해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실재하는 이외수보다 자기가 만든 이외수를 더 신뢰한다. <125p>

  어린 시절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청소년 시절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청년 시절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그때와 지금의 나만을 기억하고 알고 있다. 내가 아무리 변했다고 말하고 행동해도 그들의 머릿속에는 항상 그들이 만들어 놓은 나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편견으로, 때로는 기대로 내게 다가오지만, 나는 항상 변화의 변화를 거듭하며 성장해가고 있다. 다만 부모님만이 나를 항상 어린아이로 보신다.

  207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언제나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는 아이에게 그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복이 오면 그때는 웃을게요. <165p>

  실없이 웃는 것만으로도 모든 고통과 불행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 지금은 어떤 조건이나 상황이 주어져야 웃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 같아 못내 아쉽다. 그런 세상을 만든 것도 우리고 그런 세상 속에 사는 것도 우리인데, 지금 웃지 않으면 현실이 절망적이라고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 같다. 나와 그대의 웃음이 필요할 때..

  244  사람들은 대개 프라이팬 위의 파전이나 빈대떡은 곧잘 뒤집으면서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은 좀처럼 뒤집으려들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인생은 한쪽 면이 타버렸거나 한쪽 면이 익지 않아서 맛대가리가 없다. <188p>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 세상에 답은 오직 하나 밖에 없다고 말하거나 아예 없다고 말하는 사람. 며칠 밤낮동안 장문의 글을 읽으며 인내함으로 마음속 깊이 깨달음이 없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남의 말과 생각에 귀 기울이지 않거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사람 등등.. 살면서 이런 사람들을 피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이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일지도 모르고, 내가 늘 말하듯이 사람은 무엇으로도 알 수 없기에 그저 인간 그 자체의 아름다움만을 보며 대화하련다.

  284  남을 위해 살아가는 일이 곧 당신을 위해 살아가는 일이다. 숙고해 보면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겨우 자신의 밥그릇 하나를 부지하기 위해 온갖 발버둥을 치면서 한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인생이란 얼마나 불쌍하고 무가치한 것인가. <220p>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가족만 보아도 아버지와 어머니 나와 동생은 서로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기에 내가 있고 동생이 있으며, 동생 또한 내가 있음으로 내 동생이 된다. 친구들이 나를 친구로 인정하기에 친구로 존재하고, 내가 보고 사람들도 나를 보기에 나와 그들은 존재한다.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을 지금까지 몰랐다면 자신의 무지를 탓해야 한다.  

  293  작별 끝에 날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날이 갈수록 아픔이 선명해지는 인간이 있다. 전자는 괴로운 기억을 많이 남긴 인간이고 후자는 즐거운 기억을 많이 남긴 인간이다. 하지만 전자든 후자든 작별할 때 아프기는 마찬가지. <226p>

  작별의 순간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눈물을 보이면 다 잡았던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아서 나는 그저 고맙다는 말로 작별을 맞이했다. 뒤돌아서 가는 뒷모습도 보지 않았다. 나도 돌아섰기 때문에 볼 수 없었다. 그저 나는 앞만 보고 걸어갔다. 그리고 내 귓가에 음악만이 남아 나를 위로하고 공감해줬다.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많은 작별들은 지금의 나를 더욱 멋진 남자가 되게 했고, 추억들은 내 마음 방 곳곳에 오랫동안 남아 나를 사랑해주었다. 작별의 순간은 아프더라도 추억은 영원히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오래도록 고맙도록. 

  295  그래도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를 중시하던 옛날에 마누라를 만났으니 망정이지 요즘 같았으면 장가도 못 들어보고 노숙자로 살았을 터인즉, 아들놈들아. 그러면 니들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거룩한 시대의 거룩한 결혼에 경배하라. <227p>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있지만 자기 짝을 만나 결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가 마음의 확신이 들어 깊은 사랑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 않다. 평생을 함께 하며 같이 살 사람을 만난다는 것. 지금 세상에서는 만만치 않다. 결혼과 이혼은 가까이에 있고, 사랑과 이별도 쉽다. 사랑과 결혼이 거룩했던 시절.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의 연인을 만날 수 있을까? 마치 모래사장에 숨겨진 보석을 찾는 것처럼 지금의 나는 헤매고 힘이 부칠 때면 간절히 신께 기도한다. 그리고 나를 소중하게 가꾸며 기다린다. 

  310  세상 그 어디에도 기쁨과 행복만을 가져다주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은 언제나 그 크기와 깊이에 비례하는 고통을 수반하고 있다. <240p>  

  사랑은 아름답다. 만남과 행복, 믿음과 확신, 다툼과 오해, 불신과 이별 이 모든 것이 사랑이기에 아름답다. 그리고 사랑이 지나간 후에 오는 추억과 앙금 같은 그리움들도 아름답다. 살아가는 힘이 되고 삶의 의미를 알게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새삼 느낀다. 다만 헤어진 그대들이 나보다 행복하길 바랄 뿐.. 더 이상 아프지 말길.. 아무렇지 않은 듯.. 시간이 갈수록 사랑의 기억은 더 아름다워진다. 
  


  이 책의 페이지는 쉽게 넘기기가 어렵다. 한 구절을 읽고 또 읽다보면 새로운 의미가 계속해서 느껴진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가끔은 책을 덮고 눈을 감기도 한다. 마치 한 잔의 차를 마시는 듯 음미하는 것처럼 읽어야 이 책이 전달하는 내용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책 페이지마다 기분 좋은 향과 따뜻한 그림이 있으니 더 없는 감미로움이다.


我不流 時不流
내가 흐르지 않으면 시간도 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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