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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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평생의 주제가 그대로 솔직하게 분출되어있는 시리즈이다. 그 중 가장 분명한 형태로 드러난 작품은 '유리의 도시'. 이 작품에서 폴 오스터는 퀸이라는 관찰자를 통해, 스틸먼이라는 광기 어린 학자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는 사람(존재)과 인간(관계)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존재와 관계과 서로 얽혀 들어가면서, 외부적이고 물리적인 존재와 형이상학적이며 관념적인 존재에 대한 확장해나가기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두 번째 이야기 '유령들'은 내적 존재들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을 통해 우리는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먼저, 화이트. 말 그대로 백지이다. 아무 것도 채워져 있지 않은 또는 그 어떤 색으로도 채울 수 있는 존재. 블랙. 모든 빛을 그대로 흡수하는 자기 자신 외의 다른 것은 결코 될 수 없는 존재. 블루. 태양에서 들어오는 가시광선 중 외부의 영향에 의해 가장 많이 산란되는 색. 오스터는 이 세가지 색으로 상징되는 자아의 분리된 존재들 사이에 있어서 더욱 깊숙이 자신 속으로 침잠하는 내적 갈등의 절정을 어지러이 묘사하고 있다.

앞의 두 이야기에서 제시되고 갈등구조가 심화되던 이야기는 세 번째 이야기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내적 존재와 외적 존재의 화해 그리고 주변과의 관계 회복을 도모한다고 해야할까.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살아있는 매우 구체적인 인물이다. 반면에 팬쇼는 오로지 주인공 혹은 주변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묘사되고 존재하는 인물이다. 세 번째 이야기에는 앞의 두 이야기와는 달리 많은 주변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말을 한다. 그러나 앞에서 묘사되었던 상황이 주인공에게도 좀 더 간단히 다른 모양으로 반복되며 본질에 있어서의 변화는 없다. 다른 것은 결말이다.

주인공은 팬쇼로 대표되는 내적 자아와의 갈등, 그리고 자아로의 침잠에서 벗어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과의 관계로 시선을 돌린다. 스스로 잠겨있는 방문을 열고 나온다. 즉, 그는 존재에 대한 사유의 한계에서 벗어나 존재들에 의해 형성되는 관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 안에 깊숙이 내재되어있는 내적 자아는 여전히 갈등의 요소를 형성하고 때로는 불쑥 튀어나와 자신을 괴롭힌다. 그러나, 이제 그의 사회적 관계는 매우 탄탄하게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내적 자아의 혼돈에 휘말리지 않으며 스스로의 의지로 이를 극복해(힘겹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내가 마지막 장까지 다 찢어냈을 때는 기차가 역에서 막 출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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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에의 초대 - 엘리스 피터스 추모소설
맥심 재커보우스키 엮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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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집에 먹을 것이 없다.'는 옛말의 진가를 다시한번 확인하게 한 책이라 여러가지로 많이 아쉽습니다. 엘리스 피터스는 좋아하는 작가이고 그런 그녀의 이름을 걸고 많은 추리작가들이 일종의 헌정 단편집을 낸 셈인데, 여러가지 면에서 부족한 것이 많아 아쉽기만 합니다. 건질만한 이야기라고는 단 하나. 그 이야기 덕에 그나마 별 두개를 줄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은 기존에 이미 많이 나와있는 스토리를 단지 시대만을 바꾸어 쓴 것 같은 식상한 것들, 어이없을 정도로 기승전결이 없는 것들, 역사 추리 소설이라는 자랑이 마치 판매전쟁의 심리전의 양상을 띠는 것 같아 추리소설의 팬으로서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단편추리소설의 특징인 촌철살인적인 플롯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집중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안에 써 있는 글자들을 다 지우고 일기장으로나 쓰면 딱 좋을 듯 싶더군요. 제 평이 너무 혹독한 것인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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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 그림으로 읽기 명화 속 이야기 2
홍진경 지음 / 예담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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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이후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이것 저것 제법 많은 미술에 관한 책들을 탐독했습니다. 그 중에는 국내에서는 꽤 유명하지만 곰브리치 책의 단순 요약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책도 있었고 저자의 신선한 시선이 담겨있어 더욱 흥미를 돋구는 책도 있었습니다.

홍진경씨의 이 책은 제가 볼때는 후자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주제를 인간의 얼굴, 즉 초상화 혹은 작품에 나와있는 살아있는 역사적 인물에 맞춘 것이 책에 집중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포커스가 확실하기 때문에 그림 전체에서 어디를 봐야할 지 고민이 되는 일반 독자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며 미술에의 흥미를 유발하게 하는 도화선의 역할은 한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개성 넘치는 저자의 객관적이면서도 동시에 분명하게 주관적인 감상은 시중에 나와있는 외국 유명 저자들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다른 책들과 다른 확실한 차별성을 보입니다. 자신의 해석과 함께 과거 다른 미술사가들의 다양한 주장 또한 싣고 있기에 더욱 매력적인 미술 이야기가 된 것 같구요. 이런 점때문에 독자역시 저자와 견해가 다를 때 주눅들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는 자유가 다른책보다는 훨씬 많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미술 감상의 다양한 시각을 접해보고 싶으시다면 추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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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인생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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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인생이나 봉순이 언니의 공통점은 화자가 어린 아이란 점, 배경이 육이오 이후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는 시점이라는 것, MBC가 추천도서로 선정했다는 것, 그래서 역시 왠지 잘 손이 안가던 책이였다는 점, 결국 다른 사람의 책장에서 발견해서 돈 안들고 읽어보자고 했던 점 등등 많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일단 짤막해서 읽기 편하고 아홉살의 인생에서 나름대로 인간사 전체의 보편적인 사상을 끌어내려고 노력한 점이 애쓰지만 한마디로 너무 가볍다. 그래서 읽기는 정말 쉽다. 별 무리 없이 그다지 집중하지 않아도 쉽게 술술 읽힌다. 어찌보면 이솝우화나 다른 어린이 동화처럼 쉬우면서도 나름대로의 철학을 담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하지만, 이런 소설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건방진 말일지는 모르지만 박경리씨의 토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던가 하는 같은 성장소설들이 왜 걸작인지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괜찮은 책이라고 말한다면 돌 맞을까?독서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되는 입문자나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수준의 권장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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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순이 언니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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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읽으려고 했다가도 남들이 다 관심을 가지면 갑자기 애정이 식어버리는 모난 성격 탓에, 다른 사람 책장에서 발견하고 화장실에서 읽기 시작한 봉순이 언니.전체적으로 몹시 마음에 든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와 그리 멀지 않은 세대의 이야기 탓일까... 조금은 호기심이 생긴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게다가 참으로 불쌍하고 청승맞고 혀차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만한 여인네의 삶에 있어서 함께 감상에 빠지지 않고 현실에는 있지도 않을 법한 발라당까진 다섯살짜리의 화자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여성 작가들 특유의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지지리 궁상의 이미지가 없었기에 나름대로 맘에 들었다고 할까...
하지만 종반부에 치달을 수록 공지영씨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다한 탓인지, 부러 그런 것인지... 마치 놀이동산에서 마지막 낙하를 끝내고 어이없이 시작점으로 돌아온 듯한 허무한 느낌을 주는 것은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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