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 평생의 주제가 그대로 솔직하게 분출되어있는 시리즈이다. 그 중 가장 분명한 형태로 드러난 작품은 '유리의 도시'. 이 작품에서 폴 오스터는 퀸이라는 관찰자를 통해, 스틸먼이라는 광기 어린 학자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는 사람(존재)과 인간(관계)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존재와 관계과 서로 얽혀 들어가면서, 외부적이고 물리적인 존재와 형이상학적이며 관념적인 존재에 대한 확장해나가기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두 번째 이야기 '유령들'은 내적 존재들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을 통해 우리는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먼저, 화이트. 말 그대로 백지이다. 아무 것도 채워져 있지 않은 또는 그 어떤 색으로도 채울 수 있는 존재. 블랙. 모든 빛을 그대로 흡수하는 자기 자신 외의 다른 것은 결코 될 수 없는 존재. 블루. 태양에서 들어오는 가시광선 중 외부의 영향에 의해 가장 많이 산란되는 색. 오스터는 이 세가지 색으로 상징되는 자아의 분리된 존재들 사이에 있어서 더욱 깊숙이 자신 속으로 침잠하는 내적 갈등의 절정을 어지러이 묘사하고 있다. 앞의 두 이야기에서 제시되고 갈등구조가 심화되던 이야기는 세 번째 이야기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내적 존재와 외적 존재의 화해 그리고 주변과의 관계 회복을 도모한다고 해야할까.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살아있는 매우 구체적인 인물이다. 반면에 팬쇼는 오로지 주인공 혹은 주변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묘사되고 존재하는 인물이다. 세 번째 이야기에는 앞의 두 이야기와는 달리 많은 주변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말을 한다. 그러나 앞에서 묘사되었던 상황이 주인공에게도 좀 더 간단히 다른 모양으로 반복되며 본질에 있어서의 변화는 없다. 다른 것은 결말이다. 주인공은 팬쇼로 대표되는 내적 자아와의 갈등, 그리고 자아로의 침잠에서 벗어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과의 관계로 시선을 돌린다. 스스로 잠겨있는 방문을 열고 나온다. 즉, 그는 존재에 대한 사유의 한계에서 벗어나 존재들에 의해 형성되는 관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 안에 깊숙이 내재되어있는 내적 자아는 여전히 갈등의 요소를 형성하고 때로는 불쑥 튀어나와 자신을 괴롭힌다. 그러나, 이제 그의 사회적 관계는 매우 탄탄하게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내적 자아의 혼돈에 휘말리지 않으며 스스로의 의지로 이를 극복해(힘겹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간다.'내가 마지막 장까지 다 찢어냈을 때는 기차가 역에서 막 출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