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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히로미 GO! 1
아소우 미코토 지음, 최윤정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1. 이상한 제목: Go 히로미 Go(제목만 봐서는 내용을 간파하기 어려움)

2. 다소 이상한 그림: 대충 훑어보기에, 순정만화와 소년 만화 그 중간쯤의 그림체

이 두가지 사실 만으로도, 만화를 좋아하는 내게 이 만화책은 별로 흥미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집어들게 된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단숨에 주인공들을 사랑하게 만들고 말았다.

우수한 성적과 빼어난 미모를 가진 언니를 둔 히로미는 동경대학(추정-만화에서는 일본 최고의 국립대로 가정됨)을 가기로 결심하고 고등학교 내내 '위액'을 뱉어가며 공부를 한 처절한 공부벌레였다. 그녀가 도쿄대학에 입학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그렇게 자랑해 마지않던 '언니'가 지방의 은행(농협 정도?)에 취직했기 때문이다.  하하.

여기에서 우리는 바로 눈치챌 수 있다. 그렇게 재색을 겸비한 자신의 언니가 평범한 길을 걷는 것을 보고, 그녀는 '평범'와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삶을 살 것을 결심했다는 점이다.  그녀가 동경대생이건 아니건 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녀 자체가 비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를 동경대생으로 가정한 것은 지극히 범생적인 삶을 살아온 학생들을 배경으로 둠으로써 그녀를 더욱더 '탈' 평범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정도.

그리고 더욱 극적 효과를 만들어 내는 건, 동경대에서 볼 수 없는 그녀의 빼어난 외모.

결국 그녀는 "빼어난 외모 & 빼어난 성적(동경대생) & 큰 키(168) & 이해할 수 없는 성격"으로 아주 재미난 캐릭터로 거듭난다.  

이러한 그녀와 맘에 맞는 사람들도 평범할 수는 없다.

너무나도 착해 빠진 외모를 가진 '히데키'. 너무나도 착해빠지고 평범한 삶을 사는 히데키는 그러나 히로미와 맘이 맞는다. 이 사실만으로도 히데키 마저 비범한 존재로 만든다.

그리고 히데키가 좋아하는 남자. '고로'. 5수를 해서 동경대에 들어온 그는 '나는야 데이비슨'을 외치는 듯한 외양을 가진, 그러나 준수한 외모를 가진, 그러나 또한 그 준수한 외모를 깍지 않은 수염으로 가리고 다니는 '곰'과 같은 남자.

작가는 '그냥 화장실에서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고는 하지만, 독자인 나는 작가가 너무나도 겸손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침대 머리맡에 놓고,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보면서, '폭소'를 터트리는 것이다.

'천연소재로 가자'에서 본 작가의 '위트'와는 다른 '개그'를 감상 할 수 있다. ㅋ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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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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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셀러라는 코엘류의 책들은 ‘베스트셀러’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렇게 깊이있지도, 그렇게 현혹적이지도, 그렇게 비극적이지도 않은, ‘평범’과 ‘중용’과 미적지근한 감동을 주는 것 같다. 말 그대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별로 거부감을 주지 않는 다는 거다. 그리고 나도 그 ‘평범’한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아주 소소한 감동을 느꼈다고 한다면, 나는 돌을 맞을까?

 

‘섹스’를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다는 코엘류의 고백과, 남여간의 실질적인 정사는 단 11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용을 내포한 다소 선정적인 제목일 수 있는 “Eleven Minutes”의 스토리는 너무나도 우습게도 ‘아주’ 그리고 ‘아주’ 평범했다.

 

그럼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이런 '예상가능한' 그리고 '평범한' 소재와 스토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 '코엘류'의 작가적 능력에 박수를 보내자고.

 

이건 정말 사실이다. 연금술사를 읽을 때에도,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을 때에도, 그리고 이 'Eleven Minutes'를 읽을 때에도, 이런 진부한 스토리라니... ...라고 입을 삐죽대면서도, 나의 손은 다음 페이지, 그 다음 페이지, 그리고 그 다음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으니 말이다. 대단한 문장력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코엘류의 책이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특별한 소재'가 아닌 '아주 평범하고 귀에 익은 소재'와 '예상가능한 스토리 전개'를 통해서 '극단적이지 않은, 소소한, 평범한 감동'을 느끼고 싶다는 욕구의 표출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든다.

 

매춘부 Maria(상당히 모순적인 이름)와 그녀의 연인이 된 Ralf Hart의 다소 평범하면서도 억지스러운 스토리. 그리고 그들의 사랑. 그리고 Maria가 겪는 그 모든 여정과 경험과 생각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느끼는 별로 격하지 않은 감정과 감동. 결코 격하지 않은 감정

 

그런데도, Maria와 Ralf Hart가 서로간에 만들어낸 감정이 내 안에 계속 존재하고 있다. 지워지지 않는다.

 

이건 뭘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극도의 절망감, 극도의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갖고자 하는 감정은 극도의 기쁨과 행복이 아닐 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지속되는 행복', '지속적인 감정', '지속적인 떠오름'일 터.

 

코엘류의 책의 스토리가 설사 극단적인 설정을 한다해도,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극단', '격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코엘류가 그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Maria의 매춘부로서의 삶 역시 '극단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직업'으로서 매춘부의 일을 해내는 Maria는 상당히 객관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Maria는 스스로의 삶을 통제한다.

 

우리는 통제하도록 교육받았다. 평범한 '현재'와 모험과 욕망으로 가득찬 '미래' 사이에서 우리는 '안정'과 '위험'이라는 두 요소를 이리 재보고 저리 재보고 하여 통제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것일지라도 우리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인간'으로서의 Maria. 매춘부가 아닌 스스로의 삶에 고뇌하는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Maria는 이미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Maria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삶의 희노애락을 똑같이 보여준다.

 

설령 Maria의 삶이 소설 속 주인공으로서는 다소 진부하다해도, 설령 평범하다해도, 설명 초극단적이지 않을지라도,

 

그래도 좋다. 진실은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바로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Maria는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는 평범한 우리 자신과 같은 것이다. 어쩌면 자아를 찾아가는 그 행로에 있다는 점에서 우리 자신보다 좀 더 적극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하게 된 Ralf Hart.

 

Maria와 Ralf Hart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순간

또 하나의 존재들로 내 안의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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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차 12 - 완결
요시다 아키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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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의 존재의 의미는 현재진행형인가, 아니면 과거진행형인가, 그도 아니라면, 미래지향적인가?

평범한 존재. 그리고 범한 존재. 거기에는 신이 부여한 불공평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은 누구나 그 ‘불공평함’에 매달려, 자신의 현실과 존재를 부정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불공평성에 대한 인식 속에서 그나마 가슴 아프게 웃음 지을 수 있는 것은 그 ‘평범’과 ‘비범’이라는 우리의 태생적 불공평 속에 진실로는 바로 ‘그’ ‘공평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그 사실이란, ‘비범’함을 타고난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누리는’ 그 ‘평범’함을 죽도록 갈구한다는 사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갖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 ‘단순한’ 진리를 ‘기나긴 고통의 경험’을 하고서야 인식하게 된다. 즉 발길에 차이는 쓰레기통마냥 무시해 버리던 ‘단순한 진리’가 바로 인생의 ‘꿀’과 같은 ‘진리’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은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정말 기나긴 시간이 지나버린 순간과도 같다. 마치 어린 시절의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부모님으로부터 들을 때는 별로 중요치 않게 여기다가도, 공부를 하지 않고, 기나긴 인생을 돌고 돌아서 그 나이가 든 어느 순간 ‘그래, 그 때 부모님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어’라는 후회를 하듯이 말이다. 80이라는 기나긴 그리고 동시에 짧은 인생을 통해서 우리가 안고 가는 것은 결국 하나의 ‘단순한’ 지혜 또는 ‘진리’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인생은 참으로 허망하디 허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가 결국 도달하게 되는 사실 하나는, 인생은 되도록 ‘현재진행형’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양한 군상과 기나긴 호흡의 스토리로 이루어진 ‘요시다 아키미’의 작품. ‘야차’. 우리는 이 기나긴 작품을 통해서 결국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삶을 대할 때,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그 무엇도 아닌 최선의 ‘현재진행형’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 단순한 하나의 사실을 12권의 만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참으로 안도한다.

우리의 한 명의 주인공. 세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보통 사람보다 세 배 이상의 지능 수준을 가지고 태어나게 된 ‘인간’이되 ‘보통’ 인간을 넘어서서 태어나게 된 자. 세이. 어린 시절 그는 어머니와 함께 12살까지 오키나와의 섬에서 행복한 삶을 산다. 다만, 매년 두 차례 씩 도쿄에 있는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것 외에는 특별함이 없던 세이.

그러나 어느 축제가 열리던 어느 날 밤, 친구와 함께 집에 돌아온 세이가 발견한 것은 무장괴한들에 둘러싸인 어머니. 그 괴한들이 노리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 그리고 겪은 것은 자신을 납치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살해된다는 것.

이 평범함의 극치를 달리던 소년에게 발생한 이 사건을 시작으로, 우리는 점차 거대한 국제사회의 음모와 추악한 현실에 발디디게 된다.

세이는 IQ 160 이상의 정자와 난자의 수정을 통해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존재. 그의 지능, 신체, 감각 등은 정상 수준을 넘어서는 인간이되 또한 그 인간 이상의 ‘존재’. 유괴 후 약 7년간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 제네틱스와의 계약을 통해 그는 분자생물학 박사이자, 노벨 화학상을 수여받을 정도의 지식을 겸비한 존재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다. 옛 친구들과 지인들과 다시 만나게 되지만, 세이는 옛날의 평범한 연약한 세이가 아니다. 그는 강력한 지능과 체력을 겸비한 하나의 내적?외적 무기로 무장한 새로운 ‘세이’로 나타난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존재인 ‘세이’가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순수한 인간’으로 비치는 것은 다름아닌 그의 ‘인간적인 정’에 의거한 인간관계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나의 존재’를 잊어버릴 정도로 그 사람을 위해 싸워준다면, 그는 이미 ‘성스러운 존재’. 그리하여 그는 마치 사람들이 인자한 그러나 완벽한 ‘신’을 섬기듯, 스스로 아름답고도 완벽한 존재로서 그려진다.

그런 그가,

일본에서 또 하나의 ‘자신’을 발견한다.

‘린’.

실험실에서 행해지던 유전자 조작에 의한 인간 프로젝트에서 하나의 수정체가 ‘신의 장난’인이 아니면 ‘신의 섭리’인지도 모르게 두개로 분열된다. 그러나 그 분열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란성 쌍둥이’ 이상의 ‘동일한 분열’이었다. 99%의 동일한 유전자 조직. 그리고 한 사람의 감정이 다른 한 사람에게 전이되는 관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이 한 사람의 눈으로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것.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 대에 존재하는 둘은 그러나 ‘동일한’ 감정을 갖을 수 있다는 이 설정은, 인류의 과학기술이 빚어낸 하나의 ‘실수’이되 또한 하나의 ‘영광’이었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둘의 어린 시절은 아주 상반된 삶을 보여준다.

오키나와의 섬에서 대리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햇빛 쏟아지는 바닷가에서 순수한 삶을 살았던 ‘세이’는 그 ‘비범’함에 의해 추악한 세계에 발을 디디지만, 그 내적 순수성을 지켜 나간다. 비록 자신의 존재가 특이성을 가질 지라도, 그냥 세계에 받아들여지고 녹아드려 하는 것이다.

반면,

대리모와 연인이었던 양부하에서 컸던 ‘린’은 양부의 아버지 즉 양할아버지의 성적 학대와 폭행 속에서 암울하고 분노에 휩싸인 거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린’은 자신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부정당하고,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세상에 대해 예리한 복수의 칼날을 갈았던 것이다.

세이와 린의 형제간의 만남은 린의 감추어진 음모 속에서 불안한 ‘우애’ 속에서 이루어졌으나, 그 음모는 이내 나타나고 만다.

치사율 90%의 바이러스 확산을 통해, 인간대량살상을 일으키려 하는 것이다. 바로 다름 아닌 ‘린’이.

‘세이’는 이를 저지하려 한다.

린과 세이는 형제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형제가 아니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형제다. 동일한 외모. 비슷한 능력. 그리고 감정의 일체적 교감. 그리고 자라온 환경이 두 사람의 기질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 마치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갈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 양.

서로를 비판하고, 서로를 공격하고, 서로를 미워하되, 그러나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서로를 사랑한다.

애증 속에서, 가장 친밀해진 순간, 가장 서로를 느끼고, 가장 서로에 대해 ‘형제애’와 ‘피의 진함’을 느낀 순간, 그러나 한 존재가 사라지게 된다. 죽음으로써.

그리고 이 순간, 우리는 가장 절망하는 슬픔을 느끼게 된다.

단순히 ‘죽음’에 의한 슬픔이어야 하는가?

우리가 ‘죽음’에서 느끼게 되는 슬픔은 우리가 앞으로의, 미래의 ‘추억’, ‘아름다운 경험’을 쌓아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 사람이 살아있음에 의함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시에 함께 교감함으로써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함에 의해, 경험을 만들어 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결국, 현실에, 현재에, 바로 지금에 우리의 경험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떤 실천도, 그 어떤 생각도, 그 어떤 노력도, 그 무엇도 바로 지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진실되고 진정으로.

‘세이’와 ‘린’이 호흡을 맞추고 교감을 하며 서로의 인간애를 느꼈을 때, 그들은 ‘평범한’ 형제로 돌아간다.

평범함. 그것은 평범한 자에게 내려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아닐지. 

‘진정’ ‘비범하게’ 태어난 자는 스스로의 ‘비범함’을 자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비범’함에 의해 군중 속에 묻혀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그 ‘비범’함을 이용하려는 자들의 손에 의해 자유롭지 못하게 살아가는 것에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분노’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책망하게 된다.

평범함 속의 자유로움과 비범함 속의 속박 사이에 우리는 그 어떤 것을 소망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범함 속의 자유로움’을 바로 지금 진실되게 느끼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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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천재패밀리 애장판 1
토모코 니노미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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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학교 시절,

'주식회사천재패밀리'를 읽고서, 많은 '감명(?)'을 받고,  다시금 읽으려 했을 때, 이 만화를 보유한 만화방이 사라지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야, 다시금 이 책을 읽고 싶어,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닌 끝에(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전권을 구입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책장에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는 '주식회사 천재 패밀리'.

이 책의 낱권 낱권을 읽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또는 '별로 재미 없다'라는 등의 생각은 사람마다 다양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문학비평, 문화비평, 많은 비평문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해석과 논리들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내가 바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 끝까지 한 번 따라가 보세요'라는 것이다. 그렇게 '비판적인 논리'를 내세우고 싶은 욕망이 선다면, 그것은 2회독이나 3회독에 해도 늦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스토리'를 얘기하는 것은 상당히 주저된다.

다만, '가족이란 무엇인가', '천재와 범인이 다양하게 섞이어 살아가는 사회', 그리고 '결국은 휴머니즘'이라는 강한 '메세지'는 결국 '슬픔'과 '유머'가 섞인 스토리에서 생생히 살아나게 된다는 것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봤으면 하는 만화이다.

다만, 전권이 출간되었을 때, 한꺼번에 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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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apagos55 2005-11-14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1권만 봤을때는 역시 노다메의 전작이라 그런지, 그림도 연출도 살풋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주인공의 고행이 계속되는 3권까지 보고 나니까 완전 반해버리겠더군요^-^ 특히 가족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재밌으면서도 통찰력이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노다메보다 더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애장판으로는 몇 권이 완결일질 모르겠는데, 어서 빨리 다음권이 나와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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