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기세 - 지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용기
서울라이터 박윤진 지음 / 윌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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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은 줄 맞춰 오르는 산행 같았다. 모두가 정상을 향해 오르지만 그 끝에 펼쳐지는 건 꿈꾸던 무릉도원이 아닌 절벽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길은 좁아지고 공기는 희박해졌으며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했다. 나는 함께 걸으며 나아가는 게 좋았는데 올라갈수록 남을 밟고 올라서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결국 나는 그 길을 벗어나 나만의 길을 찾아나섰다. (p.12)



회사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선택한 한 카피라이터의 기록이다. 회사에서 배운 것들, 그리고 이후 혼자가 된 시간 속에서 마주한 마음들을 차분히 풀어낸다. 카피라이터답게 제목부터 시선을 붙든다. ‘다정한 기세’라니



“퇴사하기 딱 좋은 숫자가 됐다는 생각이 든 건 직장인 20년 차가 된 해였다.” (p.11)

이직도 아닌 퇴사. 이런 생각은 대체 언제, 어떤 이유로 드는 걸까. 마치 미혼자가 기혼자에게 “결혼할 사람은 딱 보면 알 수 있냐”고 묻는 질문처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마음에 도착하는 순간이 있는 걸까.



나 역시 내년이면 20년 차다. ‘20년 차’라는 숫자가 주는 묘한 어감이 있다. 무언가를 이뤘을 것 같은 시기. 그러나 나는 특별히 이룬 것이 없는, 아주 보통의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다만 앞으로 일할 날보다 이미 일해온 날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고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직장인의 최대 고민은 결국 은퇴 이후의 삶이다. 홀로서기는 용기만 있으면 가능한가. 아니, 과연 회사에서 했던 일이 프리랜서로도 가능한 일인가. 그렇다면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다, 그리고 할 수 있는가. 결국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촘촘히 생각해볼 일이다.


홀로서기에 적합한 일은 무엇인지, 혹은 직장에서의 배움을 바탕으로 전혀 다른 일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 직장에 있는 동안 나는 무엇을 더 시도해볼 수 있는지. 생각은 꼬리를 문다.


이 지점에서 내가 인스타그램에 처음 올렸던 책, <인디워커>가 떠올랐다. 2021년 12월 13일, 나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이 책을 읽고 회사를 어떻게 실험의 장으로 활용한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에게 쌓여가는 연차가 그 의미를 다 하려면 내가 하고있는 일이 의미있는지, 나라는 사람은 어떤 포지셔닝을 하고 있는지 미루지말고 생각해보자.”


내가 시도했던 것 중 하나는 ‘강의’였다. 회사 신입사원 교육 과정의 강사가 첫 시작이었다. 이후 대학교와 협회, 그리고 올해는 다른 회사의 승진자 교육 과정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가 공부하고 일하는 것에 관하여. 언제나 그렇듯, 시작이 반이다.


책을 읽는 동안 적잖은 위안을 받았다. 에세이를 읽으며 ‘다들 비슷하구나’라고 느끼는 바로 그 감정, 그것이 주는 위로가 있다. 특히 올해 나는 의도적으로 쉼을 선택했기에, 쉼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더 깊이 와 닿았다.

셀프 안식년 동안 스스로 안식을 찾는 법을 익힌 덕에 삶에 대한 새로운 안목도 얻을 수 있었다. 느슨하게 풀어진 시간 속에서 일에 파묻혀 지내느라 미처 보지 못한 것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소중함을 몰랐던 것들을 발견했다. 우리는 언제든 쉬어도 된다. 쉼도 성장의 일부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p.156)

아마도 우리가 이런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각자의 방식으로 일하고 성장해 나가면서도 일에 대한 애증, 관계에 대한 복잡한 마음, 삶이 주는 기쁨과 슬픔이 놀라울 만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하는 누군가에게 ‘다정한 기세’를 건네는 책.
결국, 언제나 그렇듯 기세가 전부다.
오늘도 화이팅!

기세를 높여 원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야말로 일을 잘하고 사람을 끄는 자들의 공통점이니까. 역시 일은 기세고 기세가 곧 능력이다. (p.44)

강렬한 자기계발서라기엔 온도가 낮고 엄중한 회고록이기라기엔 거창한 인생을 살지 못했다. 이 글들은 그저 지금 당신처럼 일을 사랑하고 잘하고 싶어 고민하는 마음에 대한 기록이다. 늦게 눈 뜬 아침에 막히는 도로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팀장님께 눈물의 카톡을 보내는, 인기 점심 메뉴를 먹기 위해 10분 일찍 엘리베이터로 돌진하는, 퇴근길 지하철 차창에 비친 다크서클을 바라보다 비슷비슷한 얼굴로 비슷비슷한 하루를 견뎠을 옆 사람에게 말없이 응원을 보내는 당신같은 누군가의 이야기다.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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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리학으로 세상을 다르게 본다 - 사소한 순간에 마주친 뜻밖의 물리학
하시모토 고지 지음, 정문주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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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가설을 도입하셨나요?” 난부 씨는 웃으며 답했다. “재미있잖아요.” 몸이 떨려왔다. 역사적인 가설 생성 순간을 목격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재미있으니까 해보는 거다. ‘이런 가설을 세우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까’에서부터 가설은 시작된다. (p.100)

물리학의 재미를 제대로 알 리 없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며 피식 웃게 되는 이유는, 저자가 온갖 일상에 물리학의 관점을 거리낌 없이 들이밀기 때문이다.


여름철 교토에서는 언제 절대 외출하지 않는 게 좋을까.
비에 젖지 않는 방법은 과연 있을까.
복숭아를 가장 공평하고, 가장 낭비 없이 자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붐비는 버스를 피하고, 지하철에서 앉을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사소해 보이는 질문들에 물리학적 사고를 얹는 순간, 재밌어진다.

같은 현상을 보고도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이유는 각자가 쌓아온 경험과 앎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내 안의 생각들이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해석을 만들어내는 순간이다.

아마 같은 장면을 보아도 경제학자, 물리학자, 법학자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고, 그 차이를 나눌 때 우리가 재미를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한때 알쓸신잡 같은 교양 프로그램이 사랑받았던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

사람마다 다른 관점과 시선. 그 출발점이 무엇이었든, 그렇게 각자의 스토리가 만들어질 때 세상은 훨씬 흥미로워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내 안에는 어떤 관점이 자리 잡고 있을까.’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암묵지 같은 경험과 앎이 있다. 마치 우리 엄마가 뚝딱 끓여내는 김치찌개의 비법을 아무리 물어도 내가 쉽사리 따라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책은 물리학을 알려준다기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을 건네준다. 그리고 그 시선을 통해, 나만의 질문을 던져보게 만든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는 그렇게, 각자의 관점에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 나는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까.

다정한 과학에세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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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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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엘리엇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관해 아는 것은 오직 우리가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 대한 우리의 기억일뿐이라고 썼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과 함께 있지 않을 때 그들은-사람들은- 변한다고. (p.202)

이 소설은 기억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다.

소설 속 ‘나’는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스티븐과 진을 다시 만나게 한다. 40년이 지난 뒤에도 사랑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설정은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에까지 이른다. 이후 이들은 번갈아 가며 상대방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고, 나는 그 말을 다른 쪽에 전하지 않은 채 묵묵히 들어주는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끝내 그들의 결혼은 파국을 맞는다.

스티븐과 진이 떨어져 있던 40년 동안 각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시간을 건너뛰고 과거와 같은 사랑을 다시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자체가 얼마나 로맨틱한 상상이었는지, 소설은 조용히 드러낸다. 감정에 다시 불이 붙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지만, 그 불이 식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공백의 시간 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상대방의 삶과 변화. 화자는 결국 자신이 “삶과 픽션을 혼동하고 있었다”(p.184)고 고백한다.

_ 그의 비극은 사랑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비극은 사랑을 할 수는 없는데 그녀가 주고자 하는 것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p.182)

사람은 모든 기억을 붙잡을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한 사람과 한 순간은 사실 찰나에 불과하다. ‘나’라는 정체성은 편집된 기억 위에 세워진다. 타인은 나와 모든 시간을 공유하지 않기에, 나 역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회사에 처음 입사하던 순간은 또렷이 기억나지만, 그 이후 몇 년간의 일상은 흐릿하다. 오히려 대학원 진학을 위해 휴직했던 시기의 기억이 더 선명하고, 복귀 후의 시간은 다시 희미해진다. 지금의 휴직 또한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또렷한 기억으로 남게 될까.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정작 남아 있는 기억은 이토록 적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으로 남기고, 무엇을 잊는 걸까. 어제와 같은 오늘은 잊히고, 그렇지 않은 날들만 기억에 남는다면,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가 오히려 행복한 시간은 아닐까. 아니면 그 평범함을 깨뜨리는 날들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일까.

줄리언 반스가 스스로 마지막 소설이라 말한 작품. 기억과 사랑, 그리고 삶의 공백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면, 읽어보시기를.

_ 사람들 말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잊고 있던 어린 기억이 자주 돌아온다. 동시에 중간에 낀 세월을 쥐는 힘이 약해진다.(중략) 우리 삶은, 다시 말해서, 중간에 커다란 구멍이 있는 이야기로 축소될 것이다.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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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
키코 야네라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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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직관은 유사성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중략)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사건의 빈도를 판단할 때, 사건과 고정관념의 유사도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p.322)

이 책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판단의 오류에 빠지는지를 보여주며, 이를 경계하기 위한 8가지 사고 규칙을 제시한다.

- 세상의 복잡성을 인정하라.
- 수치로 사고하라.
- 표본의 편향을 막아라.
- 인과관계의 어려움을 수용하라.
- 우연의 힘을 무시하지 말라.
- 불확실성을 예측하라.
- 딜레마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라.
- 직관을 맹신하지 말라.

세상은 복잡하고, 우리는 모든 사안을 매번 깊이 고민할 만큼의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다. 그 결과 외부에서 빌려온 의견에 쉽게 의존하고,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하며,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도 빠르게 패턴을 만들어 판단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가 발생한다.

저자는 데이터 분석가답게, 이러한 오류를 줄이기 위해 정량적 사고를 훈련하고 정보와 잡음을 구분하라고 말한다.

원제는 <Think Clearly>지만, 한국어판 제목인 <직관과 객관>이 저자의 핵심 메시지— 직관에서 한 발 물러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것 —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다만 인공지능보다 더 나은 인간의 역량으로 ‘직관’이 다시 주목받는 요즘의 분위기 속에서 보면, 이 책은 다소 고전적인 데이터 리터러시를 강조하는 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불확실성을 예측하라> 장이다.

✍️
최근 예측 산업은 하나의 독립적인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치, 스포츠, 경제, 기후, 문화까지 전 분야를 대상으로 예측하고 베팅할 수 있는 폴리마켓, 칼시와 같은 플랫폼이 금융의 영역으로 빠르게 편입되고 있다.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레코드상을 누가 받을지를 두고도 베팅이 열린다. 현재 켄드릭 라마의 Luther가 49%, 로제의 APT가 15%다. (로제 화이팅!)

다루지 않는 주제가 없다. 2026년 서울시장이 누가 될지에 대한 예측 시장도 이미 열려 있다.

특히 스포츠 베팅처럼 도박과 다름없는 영역이 금융화되면서, 사람들의 도파민을 자극해 전 세계의 유동성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정보가 곧 돈이 되는 세상’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 불확실성 그 자체가 거래 대상이 되는 시대다. 그렇다면 정보를 더 많이 쥔 사람들은 예측 시장에서 압도적인 차익을 얻게 될까?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과연 이전보다 더 쉽게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명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글쎄. 그냥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을까. 마치 원래 내 생각이었던 것처럼)

저자는 스페인의 예측 사이트 메타큘러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메타큘러스 이용자들은 정보에 근거해 명확하게 판단했고, 정확도를 높이려는 의지가 확고했다. 그들의 결론은 내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었다. 그들의 예측을 읽는 데는 5분이면 충분했다는 것이다. 이와 다르게 나는 그들과 같은 결론에 이르기까지 언론 보도 자료를 샅샅이 뒤지고, 소셜 미디어를 살펴 보면서 군사 전문가의 분석 의견을 읽느라 몇 시간이 걸린다. (p.277)

객관적 판단을 위해 더 많은 정보와 분석을 했는데, 결론은 동일하다는 아이러니함이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예측 플랫폼이 진정한 집단지성을 구현하는지, 아니면 밴드왜건 효과로 다수의 선택에 더 쉽게 쏠리게 만드는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정보와 잡음을 구분하는 일이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데이터 해석은 단순하지 않다. 정량적 관점과 인본주의 관점을 함께 통합해 사고해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은 타당하지만, 실천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태도는 비판적 사고일 것이다. 세상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너무 빠른 판단을 경계할 것.

이 책은 정답을 주기보다, 우리가 어떤 질문을 붙들고 생각해야 하는지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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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을유사상고전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사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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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들은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지금까지의 모든 존재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창조했다. (p.20)


인간은 과거 신을 믿고 의지했다면, 이제는 AI를 통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의지하려는 것 같다. 젠슨 황과 같은 인물이 시대의 우상으로 여겨지는 것도, AI를 통해 지금껏 가보지 못한 길을 가게 되면서 그를 일종의 미래 예언자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AI를 통해 초인이 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한 점은 인간이 AI를 통해 초인이 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순간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만든 도구가 인간을 넘어서는 순간, 주객이 전도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진짜 위험은 AI가 인간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의지를 상실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AI가 계산과 판단, 실행을 인간보다 더 잘할수록 우리는 인간에게 묻지 않는다. 그리고 더 깊게 사유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인간은 더 이상 극복해야 할 존재가 아니다. 불편함을 감당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니체가 말한 초인은 인간보다 뛰어난 타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존재이기에.

만약 AI가 인간을 대신해 판단하고 선택하는 자율성을 갖게 된다면, 인간은 초인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니체가 경멸한 ‘마지막 인간’에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 “오, 차라투스트라여, 우리에게 마지막 인간을 달라, 우리가 그 마지막 인간이 되게 해 달라! 그러면 우리가 그대에게 위버멘쉬를 선사하겠다!” 그러면서 모든 군중이 환호성을 지르며 그를 놀려 댔다. 차라투스트라는 참담한 기분이 되어 자신의 마음에게 말했다. 저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귀를 위한 입이 아니다. (p.26)

✍️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한 편의 시처럼 느껴졌다. 너무 많은 상징과 은유로 가득해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위키를 찾아 상징의 뜻을 하나씩 확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니체의 철학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주변 환경과 공허한 울림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니체는 단호하게 말한다. 자기 자신을 넘어설 것을.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광장에 설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여전히,
“마지막 인간을 달라”고 외치게 될까.


쓰여 있는 모든 것 가운데 누군가 자신의 피로 쓴 것만을 나는 사랑한다. 피로 글을 써라. 그러면 피가 곧 정신인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p.57)

어려운 고전, 연초부터 벽돌깨기한 기분.
물론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도전했다는 것에 의의를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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